터널 끝나면 들어간다

<부산행>의 기세가 대단합니다. ‘전대미문 재난 블록버스터라고 내걸며 좀비물이라는 장르적 위험을 피하려던 의도가 무색할 만큼 영락없는 좀비물로 지금까지의 한국영화 역대 흥행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그간 후들거리며 또 낄낄거리며 이런저런 좀비 영화도 많이 봤겠다, 대충 영화마다 좀비의 특징도 어렴풋이 기억나겠다, 영화 속 좀비의 변천사를 정리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점점 헷갈려만 가고 또 좀비 영화가 워낙에 다양한 변주를 해대는 통에 계속 미궁에서 헤매었습니다. 결국 방구석에서 피떡칠의 좀비영화에 피곤해진 퀭한 눈으로 몇 가지 좀비별 특징을 찾아서 정리해보았습니다. 하여튼 시작합니다.

좀비 영화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두 작품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좌), <28일 후>(우)

좀비는 어떻게 생겨났나요?
먼저 좀비 영화의 역사적 경계에 선 이 두 작품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 작품은 좀비 영화의 아버지 격인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고, 두 번째 작품은 <트레인스포팅>(1996)으로 일약 스타 감독 반열에 오른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2002)입니다이 두 감독이 서 있는 곳이 바로 영화 속 좀비의 모습이 새롭게 결정되어지는 변곡점이 됩니다. 조지 로메로 이전의 영화들에선 주술에 걸려 시체가 부활하여 좀비가 되고, 영혼이 없는 노예처럼 다른 이의 통제를 받습니다. 좀비가 주는 공포보다는 좀비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죠.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이르러 드디어 좀비는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영화에서는 금성에서 누출된 방사능 때문에 좀비가 탄생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결국, 조지 로메로 이전에는 주술이나 마법 같은 초월적인 힘에 의해 좀비가 되었지만, 조지 로메로에 들어서는 방사능이라는 구체적 원인이 언급됩니다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 이후 현대 좀비물에는 바이러스가 그 원인으로 등장합니다. 바이러스가 좀비의 감염 원인이 되면서 이제 상호접촉이라는 국지적 한계를 벗어나 전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엄청난 공포를 심어주게 됩니다.

이봐요 멀더! 도대체 '금성 방사능'이 뭐죠?

걷는 좀비 vs 뛰는 좀비
저는 뛰는 것보다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만, 좀비도 그런 취향이 있을까요? 뛰는 좀비의 시작은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 입니다(물론 이탈리아나 스페인 좀비물은 오래 전부터 뛰어 다니긴 했습니다만 워낙 마니아 위주라). 대니 보일은 이동진 평론가가 평하듯 달리는 장면을 가장 잘 찍는 감독이라 하는데, 그에 걸맞게 그동안 어기적거리며 느릿느릿한 모습의 좀비를 소위 뛰는 좀비의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이후 등장하는 좀비들은 <새벽의 저주>(2004), <나는 전설이다>(2007), <월드워Z>(2013) 등을 거치면서 점점 더 빨라지고 집요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뛰는 좀비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좀비 영화의 아버지 조지 로메로 감독은 "사체는 사후경직이 오고 더욱이 시신이 부패하며 훼손되기에 당연히 움직임이 느릴 수밖에 없다"며 최근 등장하는 빠른 좀비들에 대해 혹평을 했습니다. 
영화
<28일 후>부터 대세로 등장한 뛰는 좀비는 사실 시체라기보다 감염된 환자이기에 가능합니다. 인간의 신체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빠른 좀비의 등장으로 영화는 더욱  더 박진감을 지니게 되었지요.

잭 스나이더 감독의 <새벽의 저주>는 하위 장르로 여겨지던 좀비 영화를 할리우드에서 부활시켰습니다. 여기도 뜁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우리가 바로 오리지널 좀비

이 시대에도 걷는 좀비를 그리워하신다면 <도쿄 좀비>(2005) <워킹데드>(2010)를 보시면 됩니다. 여전히 뚜벅뚜벅 당신의 숨통을 조여올 겁니다.

<도쿄 좀비>. 유독성 폐기물로 인해 검은 후지산에 묻혀 있던 시체들이 좀비로 부활하는 이야기

왜 사람을 공격하나요?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은 왜?라는 생각도 하기 전에 좀비들의 어마무시한 공격을 피해 달아나기 바쁩니다. 영화 내내 사람들이 쫓기는 것을 보면서도 그 이유를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면 일단 영화는 성공이네요. 왜 사람을 공격하는지도 역시 조지 로메로 감독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계속 설명해드렸지만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부터 좀비는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이 좀비는 살육을 하기 때문이지요. 인간이 포식의 대상이 됩니다. 이후 좀비의 발생 원인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바뀌며 좀비의 목표는 바이러스를 전파하려는 형태로 변하게 됩니다

<28일 후>. 이봐 거기! 나와서 좀비되자!

좀비 퇴치 가이드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대충 좀비들의 특징을 구별할 수 있을 텐데요. 걷는 좀비는 대부분 원인 모를 이유로 인해 살아난 시체로 인간을 포식하는 류입니다. 이미 시체이기 때문에 웬만한 공격으로는 무력화할 수 없습니다. 느릿느릿하지만 쉽게 제압할 수 없고 신체 일부만 남아도 공격을 멈추지 않기에 대응하는 자에게 오히려 더 확실한 절망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이런 종류의 좀비는 뇌를 파괴하거나 불로 태워버리면 된다고 해요. 하지만, 일단 달아나는 게 최우선이죠
반면 뛰는 좀비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으로, 바이러스 성향에 따라 더욱 빠르고 공격적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맷집도 인간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총 같은 개인화기로 쉽게 제압되기도 합니다(마동석이 곁에 있어도 됩니다). 다만 너무 빠르니 방어 또한 재빨라야겠지요.

그럼요. 죽을 힘을 다해 뛰고 또 뛰어야죠.

지금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들의 특징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았습니다. <부산행>으로 시작된 좀비 영화에 대한 관심이 이후 한국영화의 장르적 풍성함으로 발전하길 기대합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다스베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