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스타일로 전세계 관객을 매혹시킨 왕가위 감독이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1980~90년대 홍콩 영화 뉴웨이브를 이끌며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해온 그의 인터뷰집 <왕가위-영화에 매혹되는 순간>(씨네21북스 펴냄, 이하 <왕가위>)이 때맞춰 출간됐다. 왕가위 감독의 필모그래피 속 모든 영화의 뒷이야기를 미국의 영화평론가 존 파워스가 세세하게 파헤쳤다. 왕가위 감독 최초의 인터뷰집 <왕가위>에 실린 무수한 이야기들 중 15가지만을 골라 간략하게 나열해봤다.

<왕가위-영화에 매혹되는 순간> 왕가위, 존 파워스 지음 / 성문영 옮김 (씨네21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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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는 스스로가 완성된 시나리오에 촬영계획표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말하자면 알프레드 히치콕처럼 준비된 감독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데뷔작 <열혈남아>의 첫 촬영 때 확실히 깨닫는다. 그는 히치콕이 될 수 없다는 걸. 촬영계획표를 쓰지도 못한 채 촬영장에 도착한 그를 보고 현장 스탭들은 경악했다.

<열혈남아>의 장만옥(왼쪽)과 유덕화


2

왕가위는 액션을 흐릿하고 툭툭 끊기게 찍는 걸 좋아했다. 그의 오랜 동료인 미술감독 장숙평은 “그 친구는 흐릿한 걸 너무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왕가위는 움직임이 극대화된 동시에 비현실적이면서도 매혹적인 느낌을 원했다. 어쩔 수 없이 길에서 촬영해야 할 때 숨기고 가려야 할 것들을 영화에서 감추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고.

<일대종사> 액션 신


3

왕가위는 ‘무엇’(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만큼이나 ‘어떻게’를 중요시했다. 이는 그가 아끼던 남미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마누엘 푸익의 소설에서 받은 영향이 크다.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보여 주고 싶었다.

(왼쪽부터) <콜레라 시대의 사랑>(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하트브레이크 탱고>(마누엘 푸익 지음)


4

왕가위가 <아비정전>에 그를 캐스팅하기 전까지, 장국영은 가식적이고 자아도취가 심하다는 이유로 미움을 사던 대중가수였다. 일례로 장국영은 첫 콘서트 도중에 객석을 향해 모자를 던졌는데, 객석에서 그 모자가 도로 무대로 날아왔다.

<아비정전>의 맘보춤 장면 속 장국영


5

왕가위는 자신의 영화에 출연할 배우들의 걸음걸이부터 손댔다. 그는 배우들에게 오롯이 영화 속 그 인물이 돼 걸을 것을 주문했는데, 배우들은 “일주일을 그냥 걷기만 했네!”라며 하소연하곤 했다. 왕가위 감독은 특히 장만옥과 왕페이의 걸음걸이를 좋아했다.

<열혈남아>의 장만옥


6

무협영화 <동사서독>은 최고의 인기를 누린 김용의 무협 대하소설 <사조영웅전>을 대담하게 각색한 영화였다.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70대였지만 왕가위는 캐릭터만 데려와 그들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 영화에 담았다. 감독의 자의적인 해석이 담긴 <동사서독>을 김용은 좋아하지 않았고, 당시 관객들도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동사서독>의 양조위


7

<중경삼림>은 <동사서독>을 만들던 도중 재정적으로 궁지에 몰린 회사를 일으킬 방편으로 급하게 찍은 영화였다. 왕가위는 당시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 영화는 학교 졸업 작품 같은 느낌이 나야 해. 카메라 동선도 많이 넣을 수 없고 복잡한 조명도 못 넣어.”

<중경삼림>의 왕페이(왼쪽)와 양조위


8

<동사서독>과 <중경삼림>을 찍느라 바쁠 때 왕가위 감독의 부인 에스더는 임신 중이었다. 하루는 아내가 혼자 거울을 보며 말하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라고 했다. 그 말에 억장이 무너진 왕가위는 이를 외로움에 관한 한 가장 강렬한 표현이라 여겼고, <중경삼림>에서 사물과 대화하는 남자의 내레이션을 구상했다.

<중경삼림>의 양조위


9

<중경삼림>에서 금성무가 임청하의 신을 벗기고 방을 떠나며, “엄마가 항상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말을 남기는 장면은, <아비정전>의 반적화(아비의 양어머니 역)가 실제로 했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여자를 침대로 데려갈 때는 꼭 신을 벗겨줘야 해. 안 그럼 발이 붓는다고.” 이 말을 직접 들었던 왕가위는 그녀를 가끔 어머니처럼 느꼈다.

<중경삼림>의 임청하(왼쪽)와 금성무


10

왕가위는 왜 선글라스를 쓰는지를 묻는 질문에 완전히 질렸다. 왕가위에게 분신과도 같은 선글라스는 단지 ‘반응할 시간을 벌어주는 도구’였다. 촬영장에 그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고, 그때마다 1,2초라도 대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왕가위는 선글라스 속에서 단 몇 초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왕가위 감독


11

<화양연화>는 왕가위에게 <아비정전>의 정신적인 후편이었다. <아비정전>은 속편 제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으나 대중에게 철저히 외면당한 비운의 작품이었다. <화양연화>에서 장만옥은 <아비정전>에서의 인물과 같은 이름을 부여 받고 양조위와 협연한다. 왕가위 감독 나름으로 이어준 일종의 재회였다.

<화양연화>의 양조위(왼쪽)와 장만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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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의 결말은 전혀 다르게 예정돼있었다. 원래 계획에 따르면, 양조위는 장만옥에게 이별을 고하고 싱가포르로 떠난다. 그녀는 싱가포르에 가 그를 찾아내고 둘은 함께 밤을 보내는데 양조위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복수다. 당신도 내 아내와 다를 바 없는 여자다.” 몇 년 후 지인의 결혼식에서 둘은 마주치고 양조위의 아이를 키우던 장만옥은 그 사실을 숨긴다. 양조위는 후회한다. 이 결말은 칸영화제 출품에 시간이 쫓기는 바람에 실행되지 못했다.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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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게더>를 찍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을 때, 왕가위는 가벼운 뇌졸중을 앓았다. 얼굴 반쪽이 마비돼 먹을 때도 음식이 입 밖으로 줄줄 샜다. 한 달간 일을 쉬라는 의사의 소견대로 할 수 없었던 왕가위는 운 좋게 중국인 침술사를 만나 회복할 수 있었다.

<해피투게더>


14

<해피투게더>는 ‘양조위가 이과수 폭포로 가던 길에 수수께끼 같은 여자를 만난다’는 아이디어가 추가될 뻔했다. 약 3주간 홍콩배우 관숙이를 데려와 양조위와 함께하는 장면을 찍었지만, 게이가 나오는 영화에 여자가 등장하는 순간 주제가 바뀌는 느낌을 받은 왕가위는 해당 분량을 모두 들어냈다.

<해피투게더>의 탱고 신


15

왕가위 감독의 기억에 남은 장국영은 스스로 전설로 남고 싶어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생각에 완전히 빠져있었고, 장국영에게 최고의 우상은 일본의 배우겸 가수 야마구치 모모에였다. 그녀는 인기 최절정일 당시 결혼해 은퇴하고 다시는 연예계에 발을 딛지 않았다. 장국영이 생각한 전설은 그런 것이었고 왕가위는 내리막길을 겪지 않겠다던 장국영의 선언을 기억한다.

<아비정전>의 장국영


씨네21 심미성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