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의 ‘노처녀’였던 브리짓 존스가 50대의 ‘싱글맘’으로 돌아왔다. 시리즈 누적 흥행 수익 8억 달러(약 1조 400억 원)을 돌파하며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원조 로맨틱 코미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세 번째 속편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이다. 지난 2월 영국을 포함해 75개국에서 개봉한 후 놀라운 흥행세를 보이며 한국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특히 영국에서는 개봉 첫 주만에 1,549만 달러(약 225억 원)의 수익을 올려 영국 로맨틱 코미디 역사상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20여 년이 흘렀지만 브리짓(르네 젤위거)은 꼬이는 상황에서도 어딘가 어색하게 당당하다. 그 곁의 인물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때의 애인이자 악명 높은 바람둥이였던 다니엘 클리버(휴 그랜트)는 여전히 그의 곁에 있고, 주변 인물들은 나이를 먹었을 뿐 ‘브리짓 존스 유니버스’의 톤을 고스란히 유지한다. 세계는 달라졌지만, 그가 살아가는 세계는 여전히 브리짓의 어투와 리듬으로 굴러간다. 낡았지만 온기 있고, 진부해 보이지만 묘하게 유효하다.
이번 신작의 원제는 <Bridget Jones: Mad About the Boy>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한국식 부제목 '뉴 챕터'에 더 마음이 간다. 남자를 향한 열정보다, 인생의 다음 장에 발을 들인 한 사람의 여정이 이 영화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사실, 브리짓이 남자에 빠지지 않았던 적이 없기도 하다. 이번 영화에서 그가 진짜로 갈망하는 건 누군가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이다. 영화는 브리짓에게 필요한 것이 ‘남자’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유쾌하게 던진다.

마크(콜린 퍼스)의 사망 이후 그는 두 아이, 빌리와 메이블을 홀로 돌보고 있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지 4년, 세상은 여전히 무심하고, 아이들은 그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절망 속에 주저앉기보다, 특유의 낙천성과 허술한 유머감각으로 늘 그래왔듯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영화는 주변 사람들의 “이제 연애 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잔소리에서 시작된다. 브리짓 존스는 그저 오늘을 버티는 데 급급한데도, 결국 다시 사랑 앞에 선다. 그리고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진다. 얼핏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전개는, 오히려 시리즈가 견지해온 정서의 연속이다.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언제나 현실과 동화, 유머와 상실 사이의 애매한 틈에서 탄생한 이야기였다. 변화의 키워드는 ‘파격’이 아니라 ‘결’에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이러한 감정을 무리하게 현대화하지 않는다. 요즘 유행하는 키워드나 설정에 기대지 않고, 브리짓이라는 캐릭터가 왜 사랑받았는지를 정확히 짚어낸다. 어딘가 모자라고, 다소 감정적이며, 늘 중심에서 살짝 비껴 있는 존재. 영화는 그 위태로운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국면으로의 진입을 유연하게 이끌어낸다.

이번 영화에서 중심축이 되는 것은 단지 연애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잠시 물러서는 순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중년의 상실과 회복으로 흘러간다. 물론 로맨스는 여전히 중요하다. 브리짓은 여전히 사랑에 서툴고, 여전히 감정의 과잉 속에 빠진다. 하지만 그가 살아내는 관계는 이제 연애 이상의 복잡함을 품고 있다. 자녀와 친구, 동료 등이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실질적인 구조로 작용한다.
배우 르네 젤위거는 이번에도 브리짓을 생생하게 소환한다. “지금의 시선으로 브리짓을 다시 풀어볼 수 있다는 것이 특별했다”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다니엘 클리버 역의 휴 그랜트 역시 이번엔 로맨틱한 긴장감보다는 오랜 우정의 미묘한 거리감을 연기하며 새로운 매력을 더한다. 브리짓과의 관계성을 달라졌지만 작품 곳곳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다니엘 클리버가 존재만으로 원작의 향취가 느껴지는 듯하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낡은 이야기를 지나치게 포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그 안에서 지금의 삶과 감정을 꺼내보인다. 이것이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이다.
씨네플레이 이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