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선은 쉬지 않는다. 영화와 드라마를, 연기와 연출을, 책과 그림을 동시다발적으로 쓰고 그리고 찍는다. 그녀가 연출한 최신작 <미스터리 핑크>는 기획 회의 하루, 촬영도 하루, 후반작업도 하루, 총 3일 만에 걸쳐 완성한 단편영화다. “제작비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3일을 넘길 수 없었다”지만 첫 단편영화 <유쾌한 도우미>(2009) 이후 지난 십 년 동안 꾸준 히 메가폰을 잡은 결과, 이제는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스태프들 덕분에 진행 가능했던 스케줄이기도 하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 사람인데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마음이 아프다.(웃음)” 몸과 마음이 괴롭다고 느껴질 때 병원에 누워 시나리오를 구상했다는 <미스터리 핑크>는 열린 결말을 넘어 관객이 자유롭게 이야기와 주제를 해석해볼 여지를 남기는 영화다. 극중 주인공의 상황, 대사, 화면을 구성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요소가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가족애, 죽음, 사랑, 애증과 같은 관념들이 여자, 립스틱, 하이힐, 분홍색 문과 같 은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상징화된다. 시나리오를 읽은 배우들이 하나같이 “어렵다”고 느끼자, 그녀는 이 영화가 “연애할 때의 구속감이나 애증 등 사랑의 파괴력을 담은 영화”라고 설명하며 배우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기를 원했다. “배우로서 연기할 때 도구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가 연출하는 현장에서만큼은 그들을 구속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스케치만 하고 색칠은 배우들이 하도록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