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맨> 메인 예고편

클레이/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아드만’(Aardman Animations)의 신작 <얼리맨>이 5월3일 개봉했다. 시간을 저~만치 돌려 석기시대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악당과 축구 대결을 벌이는 소년, 그의 친구 멧돼지의 대결을 그린다. <치킨 런> <월레스와 그로밋> 등 아드만의 대표작을 만든 닉 파크가 13년 만에 발표하는 새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만큼,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스타 에디 레드메인, 톰 히들스턴, 메이지 윌리엄스 등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때마침 아드만 전시가 DDP에서 열리고 있는 때, 올해로 창립 46주년을 맞은 아드만 스튜디오의 역사를 살펴봤다.

<얼리맨>

아드만

혹자는 아드만의 대표작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와 <치킨 런>의 연출을 맡은 닉 파크가 아드만을 세웠다고 생각할 법하다. 하지만 파크는 아드만이 창립되고 13년 만인 1985년 스튜디오에 합류했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나고 자란 두 친구 피터 로드와 데이빗 스프록스턴은 학창시절부터 애니메이션을 같이 만들며 놀았다. 방송국 PD였던 스프록스턴 아버지의 도움으로 <BBC>의 청각장애아동용 프로그램 <비전 온>(Vision On)에 쓰일 작업을 의뢰받게 된 그들은, 슈퍼맨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얼뜨기 히어로 ‘아드만’이 등장하는 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페이를 받기 위해 만든 은행계좌명 ‘아드만 애니메이션’이 그대로 스튜디오의 이름이 됐다. 아드만aardman은 ‘aardvak’(땅돼지)와 ‘man’을 합친 말이라고.

모프

각자 다른 학부를 졸업한 로드와 스프록스턴은 1976년 영국 애니메이터들의 성지가 된 고향 브리스톨로 돌아와 본격적인 작업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 플라스티신(어린이용 점토)으로 만든 스톱모션 캐릭터 ‘모프’(Morph)가 탄생했다. 아드만 캐릭터의 시초라 부를 만한 모프는 <비전 온>의 사회자였던 토니 하트가 이끌던 어린이 프로그램 <테이크 하트>(Take Hart)에 쓰였고, 1980년 모프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시리즈 <모프의 놀라운 모험>도 제작됐다. 시리즈 전편을 아드만의 유튜브 계정에서 볼 수 있다.

<모프의 놀라운 모험>

어린이용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커리어를 시작한 두 사람은 성인 관객까지 끌어당길 수 있는 방향에 초점을 놓지 않았다. 몇 차례 습작을 만든 뒤 1983년 <채널 4>의 지휘 아래 <컨버세이션 피스>(Conversation Pieces)라는 5개짜리 단편 모음을 내놓았다. 플라스티신으로 만든 캐릭터들은 점점 더 실생활 속 인간에게 보다 가까워졌고, 실제 대화를 녹음해 사운드로 입히는 방식을 꾀했다.

<컨버세이션 피스> 중 ‘얼리 버드’

제작 공정이 복잡해짐에 따라 서서히 애니메이터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국립 영화/TV학교에 재학 중이던 닉 파크의 작품 <화려한 외출>(1989년 <월레스와 그로밋> 첫 시리즈로 완성됐다)을 같이 만들면서, 파크는 아드만에 합류했다. 1989년, 3명의 신입 애니메이터와 함께 <립 싱크> 시리즈를 내놓았고, 그 가운데 파크가 만든 단편 <동물원 인터뷰>(Creature Comforts)는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으며 아드만을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더욱 쨍해졌다.

‘동물원 인터뷰’

뮤직비디오 작업 역시 아드만에 명성을 안겨줬다. 피터 가브리엘의 ‘슬레지해머’(Sledgehammer) 뮤직비디오(1986)를 연출한 스티븐 R. 존슨은 작품 일부에 (퀘이 형제와 더불어) 아드만의 클레이/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빌려와 세상을 놀래켰고, MTV 어워드에서 9개의 상(이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았다)을 휩쓰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듬해엔 불세출의 보컬리스트 니나 시몬의 ‘마이 베이이 케어즈 포 미’(My Baby Just Cares for Me) 뮤직비디오로 크게 호평 받았다. 캐릭터와 목소리의 조합에 집중한 1980년대 아드만의 방법론이 그렇게 무르익었다. 

피터 가브리엘의 ‘슬레지 해머’

5분 가량의 단편을 주로 만들어오던 아드만은 1993년 러닝타임 30분을 최초로 넘긴 <전자바지 소동>을 내놓는다. <화려한 외출> 이후 4년 만에 제작된 닉 파크의 <월레스와 그로밋> 두 번째 시리즈인 이 작품은 아드만에게 다시 한번 오스카를 안겼을 뿐만 아니라, 30개가 넘는 시상식을 휩쓸었다. 파크 스스로도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 <월레스와 그로밋>으로 손꼽는다고. 1995년 제작돼 오스카 단편 애니메이션을 또 받은 <양털도둑>까지 합해 세 단편의 모듬이 전세계에 개봉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엔 1997년 2월 개봉해 서울관객 15만에 육박하는 흥행을 기록했다.

<전자바지 소동>의 기차추적 신

날이 갈수록 단단해지고 있는 아드만의 작품/흥행성을 거대 프로덕션이 눈독들이지 않았을 리 없다. 디즈니, 워너브러더스, 드림웍스 등이 아드만과의 계약을 시도했고, 디즈니 재직 시절부터 꾸준히 아드만과 컨택했던 드림웍스의 공동대표 제프리 카첸버그가 1997년 말 마침내 딜을 성사시켰다. 1996년부터 제작에 착수됐던 <치킨 런>에 제작비를 대고 배급을 맡기로 한 데 이어, 2년 후엔 향후 12년 안에 4개의 장편을 만든다는 조건으로 2억5천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발표했다. 그리고 대망의 아드만 첫 장편 <치킨 런>이 2000년 6월 23일 북미에 개봉했다. 결과는 알다시피 대박. 피터 로드와 닉 파크가 함께 연출하고, 300명 이상의 인력이 동원돼 4년 이상의 프로덕션을 거친 <치킨 런>은 4500만 달러 예산의 5배에 달하는 2억2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한국 흥행은 서울관객 44만. 대중과 평단의 반응 역시 만장일치에 가까울 만큼 뜨거웠다.

<치킨 런>의 파이머신 신

2분 남짓의 초단편 10개로 이뤄진 <요절복통 발명품>(2002)을 온라인에 공개해 <월레스와 그로밋>의 존재를 각인시킨 아드만은 2005년 두 번째 장편 <월레스와 그로밋: 거대 토끼의 저주>를 내놓았다. 닉 파크와 <월레스와 그로밋> 단편들, <치킨 런>의 애니메이터로 활동한 스티브 박스의 공동연출작. 하루에 3초만 촬영할 정도로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질감에 공들인 작품에 2.8톤의 플라스티신, (애니메이터들의 손을 닦기 위해) 주마다 1000개의 물티슈가 사용됐다고 한다. <치킨 런>의 3분의2 제작비를 들인 영화는 6배를 훌쩍 넘긴 수익을 거뒀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팀 버튼의 <유령 신부>를 제치고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거머쥐었다.

2006년 오스카를 수상한 닉 파크와 스티브 박스

<거대 토끼의 저주>가 대성공을 거둔 2005년과 2006년 사이, 아드만 스튜디오에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념하려고 했던 2005년 10월 10일 브리스톨 창고에 화재가 일어나 30년 간 제작했던 작품들의 수많은 도구가 모두 불탔다. 그로부터 1년 후, 드림웍스와 함께 한 세 번째 작품 <플러쉬>(2006) 개봉을 막 앞둔 시점에 아드만과 드림웍스의 계약이 끝났다고 발표됐다. 계약 당시 창작에 관한 완전한 자유를 약속했던 드림웍스가 <플러쉬> 제작에 지나치게 간섭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많다.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크루즈 패밀리>(2013)도 본래 아드만과의 협업으로 제작될 예정이었던 작품이다.

<월레스와 그로밋: 거대 토끼의 저주>
<플러쉬>

한동안 단편 작업에 몰두하던 아드만은 5년 만에 새 장편 <아더 크리스마스>를 내놓았다. 소니와의 계약 후 발표한 첫 장편인 이 작품은 <플러쉬>와 마찬가지로 컴퓨터 애니메이션이었다. 이듬해엔 아드만의 수장 피터 로드가 <치킨 런> 이후 12년 만에 연출을 맡은 3D 애니메이션 <허당 해적단>(2012, 국내 미개봉)이 나왔다. 드림웍스, 소니에 이은 아드만의 새 파트너는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사 스튜디오 카날이다. <거대 토끼의 저주> 이후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해 나름 변화를 꾀했던 시기 이후, 카날과 함께 한 2015년 <숀 더 쉽>과 최신작 <얼리맨>은 아드만 스튜디오가 역시 빛을 발하는 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증명한 작품들이다. 지난 4월, 아드만은 프랑스의 두 거대 프로덕션 카날과 파테와 손잡고 <치킨 런> 속편을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다시금 서서히 물 오르고 있는 아드만이 <치킨 런 2>로 또 다른 전성기를 맞게 될지 주목해볼 수밖에. 

아드만의 창립자, 피터 로드와 데이빗 스프록스턴이 젊었을 적

씨네플레이 문동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