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인들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자리가 마련돼 있다. 영화 상영 직후 진행되는 GV(관객과의 대화)는 물론이고, 포럼이나 시네마 클래스에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그중 토크 클래스는 적은 수의 관객과 감독, 배우가 만나는 자리로 이들의 허심탄회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번 포스트에선 <병훈의 하루> 토크 클래스와 <겨울밤에> 토크 클래스에서의 대화를 정리했다.


<병훈의 하루>

<병훈의 하루> 이희준 토크 클래스
배우 이희준은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주연과 연출을 맡은 <병훈의 하루>로 단편영화 경쟁 섹션에 이름을 올렸다. <병훈의 하루>는 공황장애를 겪는 병훈이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려 노력한 하루를 그리는데, 공황장애를 겪었던 이희준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토크 클래스 현장에는 진행을 맡은 장성란 모더레이터와 연출 겸 주연인 이희준이 자리했다.

장성란 모더레이터 <병훈의 하루>는 본인의 이야기를 토대로 했다. 그걸 영화로 만들고 상영하는 것도 하나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희준 미친 것 같다. (웃음) 영화 속 병훈만큼은 아니지만 (병훈은 강박증에 틱장애를 가졌다) 비슷한 병이 있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더 힘들어진다. 넘어졌는데, 계속 왜 넘어졌지 묻다 보니 괴로워졌다. 어느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고 싶어서 만든 영화지만, 나와 비슷한 분들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었다. ‘너만 그러는 게 아냐’라고 말하고 싶었다.

(왼쪽부터) 장성란 모더레이터, 이희준.

장성란 직접 주연도 맡았다. 본인의 미모를 깎아가며 열연했다.
이희준 노출도 많다. (웃음)
장성란 호객행위 하는 거냐. (웃음) 영화를 보며 초반엔 병훈이 얼마나 심한 강박증을 앓는지에 주목했다. 그러다 후반에 이 사람도 그걸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 있구나, 그게 여행하는 과정과 잘 맞아서 와닿았다.
이희준 제가 생각했던 의도를 얘기해서 찌릿했다. 넘어졌는데, 스스로 일어나려고 버둥거리는 자신을 보듬어주는 이야기 같다. 제가 좋아하는 스님이 하신 얘긴데, 사람은 실수로 넘어져도 주변 사람만 신경 쓴다. 주변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어봐도 집에 가서 ‘바보같이 왜 넘어졌어!’ 하고 자신을 혼내지 않냐. 그렇게 본인이 혼을 내도, 넘어진 것도 자신이다. 스스로 계속 자신에게만 화살이 날아가니까 상처를 고칠 수가 없는 거다. 그 화살을, 넘어진 나를, ‘넘어졌구나. 아프지, 나으려고 애쓰는구나, 멋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실 (영화를 공개하는 게) 떨리긴 한다. 라디오에서 공황장애를 겪다가 이런 영화가 나왔다고 하니까, 언론에서 ‘이희준 공황장애’ ‘이희준 활동 정지하나’ 이런 얘기만 나와서 상처 받았다. (영화적으로 표현한 병훈의 병을 보고) ‘저런 병을 앓았다고?’ 하실까 봐 낯 뜨겁기도 하다.

<병훈의 하루>

장성란 병훈이 전화하는 장면이 두 번 있는데, 장영남이 연기한 의사와 한 번, 그다음에 어머니와 한 번. 지금 어버이날에 진행하는 이 토크 클래스와 관련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웃음)
이희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목소리는 실제로 어머니가 연기하신 거다. 버스기사는 아버지 목소리고. 어머니는 연기 경험이 없다. 전화 상으로만 50테이크를 갔다. 어머니가 내게 지독하다고 했다. 어머니가 우는 장면이 있어서 울음을 참는 감정으로 해달라고 했더니 ‘아이고 내는 못하겠다’ 그러셨다. 아버지는 두 테이크 만에 끝내셨다.
장성란 이희준 배우의 연기력은 아버님에게서 받은 거 같다.
이희준 이번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웃음). 어머니 아버지 개런티는 소고기로 드렸다. (웃음)

관객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병훈이’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이희준 너만 그런 거 아냐, 괜찮아. 너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 너무 스님 같다. (웃음)

(왼쪽부터) 장성란 모더레이터, 이희준.
병훈의 하루

감독 이희준

출연 이희준

개봉 2018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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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우진 감독, 우지현, 이상희, 양흥주.

<겨울밤에> 토크 클래스
<겨울밤에>는 전주영화제에서 제작지원하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작품으로, 춘천의 청평사를 찾게 된 부부와 젊은 커플에 대한 영화다. 매 작품 춘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든 장우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춘천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포착해 과거와 현재, 환상과 실제가 공존하는 영화를 완성시켰다. 장우진 감독, 주연 배우 양흥주, 이상희, 우지현이 함께 했다.

장성란 모더레이터 감독님 영화 특유의 키워드가 있다. 반복, 변주, 스치는 만남 등. 영화의 장면을 현장에서 만드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촬영하시기 전에 어디까지 짜놓는지 궁금하다.
장우진 감독 일단 저는 춘천에서 영화 네 편을 찍어서 사계절을 담고 싶었다. 기본 구조는 바꾼 적 없다. 내용과 이야기는 현장에서 배우들과 만들어가는 편이다. 의견을 듣고, 영화 구조에 맞는지 내 의도와 맞는지만 따지는 편이다.

장성란 이번 영화는 한 커플이 과거의 자신들을 보는 듯한 구성인데, 이 정도 얼개만 짜놓았나?
장우진 한달 반 만에 시나리오를 다 썼고, 투자를 받았다. 그 시나리오에 대한 배우들의 의견을 받고 수정을 크게 한번 했다. 이 수정본으로 다시 캐릭터 이야기를 하고 의논했다. 다시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나만 봤다. 촬영 전에 배우들에게는 시나리오를 버리라고 말하고 촬영했다.
양흥주 버리진 않았다. 감독님은 그렇게 말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고 실마리가 될 것이 있는지 읽곤 했다.
우지현 사실 몰래몰래 매일 봤다. (웃음)
장우진 보는 건 자유니까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에는 방법을 바꾸겠다. (웃음) 반납 받고 파쇄 시키고….

<겨울밤에>

장성란 이런 작업방식이 감독님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인 것 같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묘미를 확인한 장면이 있었나?
양흥주 통제되지 않은 외부요소들이 우리에게 다른 영감을 줬다. 예를 들면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 같은 것 말이다. 인물과 인물로서 이야기하면서 오는 감각들을, 내가 등장인물로서 어떤 감정이냐에 따라 해석되는 순간이 있다.

장성란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서영화, 김선영, 김학선 배우 등 모두 연기를 잘하는 분들이다. 감독님이 영화를 같이 만드는 마음가짐, 태도를 가진 분들을 선호하시는 거 같다.
장우진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배우들과 서로 동의돼야 영화을 찍으니까, 말씀하신 마음가짐이 중요했던 거 같다. 그래도 제가 상상한 인물들의 이미지는 벗어나기 힘든 부분이다. 보이는 이미지, 목소리, 말투 등등. 그런 건 많이 변화시킬 수 없으니까 배우들의 그런 점을 관찰해서 상상하고 대입해서 캐스팅을 결정하는 편이다.

장성란 영화에서 춘천이 초현실적 공간처럼 느껴진다. 별세계에 온 것 같은 춘천을, 어떻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설계했는지.
장우진 ‘춘천이다’라는 건 초반 대화에서 끝나고, 뒤에는 다르게 보여야 했다. 양정훈 촬영 감독님(<지슬>)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
이상희 촬영 조명팀이 고생을 많이 했다. 보통 촬영 조명 팀이 7명 정도인데, 우리는 네 분이서 했다. 야간 밤 장면이 많으니까 촬영 조명팀이 먼저 현장에 가서 서너 시간씩 조명을 설치하고, 그러면 우리가 가서 연기하는 식이었다. 정말 너무 고맙다.

<겨울밤에>

관객 즉흥연기가 많았다는데, 시나리오의 틀에서 연기하시다가 즉흥연기를 하려고 하면 힘드셨을 것 같다. 
양흥주 내가 출연한 영화 중 시나리오대로 한 건 <철원기행>(2014)밖에 없다. (웃음) 그것도 빡빡한 편은 아니었고. 장우진 감독의 전작 <새출발>때도 시나리오 얽매이지 않았고, 롱테이크 장면이어서 저에게 익숙한 연극 무대 같았다.
이상희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없앴다고 하지만 시나리오를 진짜 잘 쓰신다. <춘천, 춘천> 때 반 페이지 시놉시스를 받아서 ‘글 못 쓰는가 보다’ 했는데, 이번 시나리오를 보니 평소에 하는 작업 방식이셨던 거 같다. 즉흥인데 즉흥이 아니니까 더 어렵다. 영화 이전에 캐릭터가 경험했던 전사를 홀로 쌓아야 한다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우지현 정교하게 쓴 시나리오에서 바늘구멍을 뚫어내는 것 같은 작업도 재밌지만, 우리가 하는 작업들이 이런 식이었다. 밑그림 있는 나무를 어떻게 그릴지, 어느 정도의 여지가 허용되는지 얘기하고…
이상희 우리 자꾸 너무 비유만 같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줘야지. (웃음) 예를 들면 감독님께서 여기서 남자가 주머니에서 뭘 꺼내읽으면 좋겠다, 감독님이 말하면 지현이 ‘이 시 어때?’ 추천하고, 그럼 내가 이 구절 좋다고 의견을 전한다.
우지현 촬영 전날 얘기를 많이 해서 다음날 각자의 대본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 그런 방식이라 생각한다. 우리끼리는 즉흥 연기라고 하지 말자! (웃음)

겨울밤에

감독 장우진

출연

개봉 2018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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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