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럼버스>(2017)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콜럼버스의 건물들에 대해서 다소 긴 설명이 필요하다. 영화잡지에 쓰는 글에 건축가 이름을 나열하며 건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왔지만, <콜럼버스>는 어쩔 수 없는 영화다. 건축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콜럼버스는 미국 현대건축에서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다. 중서부 농장지역에 위치한 인구 4만명의 이 작은 도시에는,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대부분의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했다. 그러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콜럼버스에 자리 잡은 엔진 제작 공장의 소유주 J. 어윈 밀러가 만들어낸 독특한 건축 지원 시스템에 있었다. 공공건물을 설계할 때 밀러 재단이 선정한 리스트에서 건축가를 선택하면 설계비 전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에로 사리넨, I. M. 페이, 로버트 벤투리, 리처드 마이어, 시저스 펠리, S.O.M 같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건축가들뿐만 아니라, <콜럼버스>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나오는 데버라 버크, 제임스 폴 의 건물들이 콜럼버스에 지어졌다. 대략 1940년에서 1970년 사이에 지어진 60여개의 건물들은 콜럼버스를 ‘모더니스트 건축의 메카’ 혹은 ‘대평원의 아테네’라는 별명을 갖게 만들었다. 도시 자체가 일종의 모더니즘 건축 박물관이다. 위에 언급한 건축가 중에서도 <콜럼버스>에서 건축가 에로 사리넨은 특별히 의미를 갖는다. 영화에서 그의 작품이 제일 많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아버지 엘리엘 사리넨의 건물이 같이 나오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름 때문에 아버지 엘리엘 사리넨과 아들 에로 사리넨을 동일한 사람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두 건축가는 부자 사이다. 영화의 도입 장면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건물이 아들 에로 사리넨의 밀러 하우스고, 바로 다음 두 번째로 나오는 건물이 아버지 엘리엘 사리넨의 교회 건물이다.
1873년에 태어난 엘리엘 사리넨은 핀란드 출신의 건축가로 핀란드에서의 성공적인 경력을 뒤로하고 1923년에 미국에 이주했다. 핀란드에서 그의 건축이 장식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던 반면, 미국에서의 작업들은 초기 모더니즘 건축들에서 나타나는 경향처럼, 점점 더 단순한 형태로 변화되었다. 영화에서는 그의 교회의 입면에 대한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봐요, 입면이 비대칭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균형은 유지하고 있어요.”
영화에서 건물을 주제로 이러한 대사를 듣는 것은 꽤 흥미롭다. 엘리엘 사리넨의 교회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문의 위치와 십자가 표식이 오른쪽으로 몰린 비대칭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평면상 한쪽으로 치우친 예배당 내부 공간이 자연스럽게 입면에 드러난 결과이지만, 문 옆의 다른 크기의 유리창과 배경의 그리드 패턴 등 세심한 디테일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상쇄되었다. 대사 내용 그대로 비대칭이지만 여전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 건축을 비례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대칭의 시대를 지나 비대칭의 시대로 변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엘리엘 사리넨은 정확하게 두 시대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