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서울역>을 보고 왔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작품이죠.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을 기획하기 이전에 먼저 작업 중인 영화가 바로 <서울역>이었죠. 그래서 <부산행>을 먼저 본 관객들은 이 영화가 어떤 식으로 <부산행>과 연결이 될지를 가장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게 궁금해서 밤늦게 부천까지 달려간 것이었죠. 이 글은 아직 개봉도 하기 전인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공개할 목적이 아닙니다. 그저 맛보기로 어떤 영화인지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두려는 것이니 스포일러 걱정 마시고 스크롤을 내리시길.
부산행과는 다르다. 부산행과는
<서울역>은 <돼지의 왕>, <사이비>를 만들었던 연상호 감독의 3번째 애니메이션 연출작입니다. 그의 전작을 이미 본 관객이라면 <부산행>보다 <서울역>을 더 기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역>이 어떤 영화인지 힌트를 얻고 싶다면 연작처럼 소문난 <부산행>보다는 오히려 <돼지의 왕>과 <사이비>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부산행>만을 보고 연상호 감독에게 관심을 갖게 된 관객들은 <서울역>을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부산행>처럼 짜릿하게 장르 요소를 즐길 수 있게 구성된 영화가 아니거든요. (물론 <부산행>이 가벼운 영화라는 뜻은 아닙니다.)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에서는 사회 계급문제에 대해서, <사이비>에서는 세상의 악에 대해서 주로 다뤄왔습니다. 그의 단편 영화를 포함해서 연상호 감독은 항상 선과 악, 권력이나 폭력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거든요. <서울역>도 그에 대한 연장선에 놓인 아주 쓸쓸한 영화입니다.
좀비 아닌 개미들에 주목
<부산행>의 주인공 석우(공유)는 잘나가는 투자회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죠. 영화 초반 우리가 볼 수 있는 그의 모습은 돈 많은 고객으로부터 이른바 '작전'을 지시받는 모습입니다. 석우를 비롯한 그들이 생각하기에 주식이라는 게 결국 돈 없는 사람들의 몫을 야금야금 빼앗아 돈 많은 누군가에게 몰아주는 것이라고 보는 거죠. 그래서 석우는 휴대폰에 번호를 저장해 놓을 때도 지인들의 그룹명을 '개미들'이라고 해놓습니다. 눈썰미 좋은 관객들은 영화 속 그 장면을 보셨을 겁니다.
쉽게 말해 <서울역>은 석우가 아닌 '개미들'에 관한 영화입니다. 가족을 위해 이기심을 버리고 희생하는 아빠 석우의 모습에 적지 않은 감동을 느낀 관객들에게는 <서울역>이 조금 당황스러운 영화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서울역>을 보고 나면 오히려 석우 같은 인물은 '가진 자'에 속할 테니까요. 즉, <서울역>은 그보다 훠어어얼씬 밑바닥을 살고 있는, 돈도 없고 집도 없어 '전대미문의 재난'이 발생했을 때 피할 곳이 없어 방황하게 되는 길거리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죠. (그렇다고 <서울역>에 등장하는 누군가가 석우의 주식 작전에 휘말려든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스토리의 연관성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죠.)
<부산행>과 <서울역>을 이어주는 가출소녀
모두가 궁금해하는 부분이 바로 두 영화의 연관성일 겁니다. 이미 많은 기사에서 언급됐듯이 <서울역>은 <부산행>의 프리퀄로 알려져 있기에 <부산행>에서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던 정보들을 <서울역>에서 보여줄 거라는 기대가 클 겁니다. 이를테면 좀비 바이러스 발생 원인이라든지, 다른 도시의 초동 대처 상황이라든지, 국가 재난 발생 이후 서울과 부산 사이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인지 등등의 궁금증을 과연 <서울역>이 얼마나 해소시켜 줄 수 있겠느냐는 부분이죠. 이 궁금증에 대한 대답을 여기서 하면 스포일러라고 뭐라 하겠죠? (그건 스포일러의 의미에 해당되지 않는 부분입니다만,) 이건 오히려 씨네플레이가 단독으로 만났던 배우 심은경 인터뷰의 일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서울역>은 헤산과 남자친구, 혜선의 아빠 세 사람이 좀비 바이러스 감염체들에게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예요. 가출소녀 혜선이 중심이 되어 돌아간다기보다는 서울역 주변에서 벌어지는 하룻밤 동안의 이야기죠. 두 영화에 등장하는 저는 약간의 연결고리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제가 시나리오도 직접 읽어보고 연기도 했지만 (두 영화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지, 실은 긴가민가 해요.
저는 가출소녀가 <서울역>의 혜선과 완벽하게 연결되는 부분은 없어 보여요. 조금은 별개의 캐릭터인데 <서울역>의 결말을 보면 그녀가 왜 등장했는지는 이해되는 정도일 거예요.
좀비영화로서의 장르적 재미
<서울역>이 어떤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좀비'가 등장하는 장르영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관객들이 느끼고 싶어하는 서스펜스와 액션을 <서울역>이 얼마나 충실하게 담아냈는지도 궁금할 겁니다. <서울역>에서는 실사 영화에서 여러 제약 때문에 표현이 불가능했을 도심 액션이 마음껏 펼쳐집니다. 두 남자 주인공이 좀비떼를 피해 한 여자를 찾아나서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공간 이동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죠. 게다가 이들의 이동을 막아서는 엄청난 장애물로 좀비떼와 공권력이 등장합니다. 계엄령 선포 직전의 무자비한 도심 상황과 좀비떼가 뒤섞여 주인공을 압박하는 묘사는 정말 짜릿합니다. (그렇다고 <월드워Z> 급의 스펙터클을 상상하시면 안 됩니다.) 역대 어떤 좀비영화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쓸쓸한 풍경을 <서울역>에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에디터는 속으로 좀 통쾌한 장면도 많았습니다.)
인간들이 형벌처럼 안고 사는 압박감, 절망감들을 앞으로도 그리고 싶다.
<서울역>의 주인공 혜선(심은경)은 가출소녀입니다. 남자친구 기웅(이준)과 함께 집이 없어 여관을 떠돌며 살고 있죠. 그리고 쉼터와 서울역사 주변을 배회하며 살아가는 노숙자들이 있습니다. <서울역>에서 살기 위해 그리고 좀비떼를 피할 곳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다니는 주인공들은 결국 집이 없어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지, 왜 그렇게 서울 한복판에서 집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지 그 쓸쓸한 풍경이 <서울역>이 보여주고자 하는 서울의 풍경입니다. 위의 인용구는 <돼지의 왕> 개봉 당시 씨네21과 연상호 감독이 나눈 인터뷰에서 감독이 직접 밝힌 말입니다. 바로 저러한 인간의 감정과 상황이 <서울역>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지요. <부산행>에서 초동 대처에 성공한 부산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생각하면서 <서울역>을 감상한다면, 아마 이보다 절망적인 상황을 다룬 한국 영화가 또 얼마나 있었나 싶어 무거운 마음을 질질 끌며 좀비처럼 집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영화 보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고마움을 느끼면서 말이죠.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