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피터 래빗>은 다시 할리우드 장르로 돌아가면서,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단순한 합성을 따르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실사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실사와 뚜렷하게 분리되었다면(예컨대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88)나 <스페이스 잼>(1996) 같은 식 말이다), 조금 낡아 보이기는 해도 관객에게는 즐거운 소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나 <피터 래빗>은 컴퓨터그래픽스와 실제를 깔끔하게 합쳐냈다. <패딩턴> 시리즈처럼 말이다. 그러다보니 작품 속 소동은 난동이 되고, 짓궂은 골탕 먹이기는 고약한 폭력 신이 되고 말았다(인간이 동물에게, 동물이 인간에게, 서로 한방씩). 한마디로 판타지 문법으로 가볍게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영악했고, 집요했다. 우리를 더욱 난감하게 만드는 것은 현실과 픽션이 뒤엉킨 세계가 사실은 베아트릭스 포터가 피터 래빗을 비롯한 숲속 동물들을 바라보던 시선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포터에게 동물들은 그저 우화나 은유가 아니라 현실에 실재하며(자신이 기르던 토끼, 고슴도치, 생쥐), 그들의 평소 모습을 그대로 옮긴 것이 원작 <피터 래빗>이었다(라고 줄곧 고백했다). 게다가 영화 <피터 래빗>은 작품 속 화자의 목소리를 베아트릭스 포터나 (그녀의 분신인) 여주인공 비가 아니라, 피터 래빗의 누이 토끼로 설정하고, 후일담으로 기록하는 형식을 취한다. 마치 관객이 영화관 속에서 겪었을 기대와 혼란과 난감함을 이미 꿰뚫어봤다는 식으로 능청을 떤다. 영화는 영악했고, 우리는 순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