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뢰 공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던 1940년대, 헤디 라마는 미국이 독일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무선으로 어뢰를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게 된다. 하나의 주파수로 신호를 전달하면 적이 그 주파수를 찾아내 교란할 위험이 있겠지만, 주파수를 여러 개로 분산시키면 적군이 이를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뢰의 명중률은 100%가 된다. 할리우드 파티에 종종 참석했던 헤디 라마는 영화음악을 만들기도 하는 작곡가 조지 앤타일과 친구가 되는데, 그는 헤디 라마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 파트너가 됐다. 조지 앤타일은 두루마리를 이용해 작동하는 자동 피아노를 만든 바가 있었는데, 같은 방식으로 무선주파수간에 빠른 도약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이 아이디어를 1940년 국립발명가협회로 보냈고, 이는 2,292,387이라는 이름과 397,412,006이라는 시리즈 번호로 1941년 미 연방 특허청에 출원되어 1942년 정식 특허로 등록됐다. 당시 재혼을 하면서 ‘헤디키슬러-마키’라는 이름으로 특허가 올라가고, 전쟁 중 ‘비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적용 여부는 비밀리에 시험됐기 때문에 라마의 발명은 화제가 되지 못했다.
미 군대는 이 장치를 어뢰에 장착하기에는 통신 장치가 너무 크다고 판단해 활용하지 않았지만, 1957년 펜실베이니아 전자공학 시스템국의 기술자들은 이를 응용해 보안 시스템에 활용했다. 또한 이는 주파수 도약이 미사일 기술의 기본 개념이 되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에 다시 응용됐다. 또한 헤디 라마의 도청 금지 아이디어를 이용한 전화기로 루스벨트 대통령와 처칠 수상이 통화를 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 전화접속이었다. 이로부터 데이터 전송과 움직이는 무선전기연결망, 더 나아가 인공위성, 휴대폰, 무선인터넷이 탄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