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참 이상하다. 전혀 닮지 않은 배우 네 명이 가족으로 출연한다. 더 이상한 건 그렇게 안 닮았는데도, 네 사람 사이엔 가족만이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사정과 비밀, 포근한 듯 서슬 퍼런 분위기가 시종일관 흐른다는 점이다. 67일 개봉한 <유전>의 토니 콜렛, 가브리엘 번, 밀리 샤피로, 알렉스 울프가 만드는 앙상블은 영화 전체를 장악하고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인상적인 존재감을 남긴 네 배우의 이모저모를 만나보자.

유전

감독 아리 에스터

출연 토니 콜렛, 가브리엘 번, 알렉스 울프, 밀리 샤피로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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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콜렛 - 애니 그레이엄

미니어처를 이용한 디오라마를 만드는 예술가. 아들 피터와 딸 찰리 중 병을 앓고 있는 찰리를 좀 더 애지중지한다. 그의 엄마가 죽으면서 <유전>이 시작된다. 

<유전>

꾸준히 영화를 챙겨보는 관객이라면 토니 콜렛의 얼굴은 익숙할 것이다. 1992<스포츠우드 사람들>로 스크린에 데뷔한 그는 1994<뮤리엘의 웨딩>으로 첫 주연을 맡았고. 이후 <엠마>, <졸업>, <코시> 등에 출연했다. 1999<벨벳 골드마인>의 맨디 슬레이드 역,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된 <식스센스>의 린 세어 역으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식스 센스>
<어바웃 어 보이>
<꾸베씨의 행복여행>

<식스센스> 때문인지 몰라도 엄마로 출연한 작품들로 인지도가 높다. <어바웃 어 보이>(2002)는 마커스 엄마 피오나로, <미스 리틀 선샤인>(2006)은 두 남매의 엄마 셰릴로 출연했다. 2000년 이후로는 2010년을 빼면 한 해도 쉬지 않고 적게는 한 작품, 많게는 네다섯 작품을 거뜬히 소화한 열일배우다. 그럼에도 큰 규모의 영화보다 드라마 장르에 출연이 잦아 국내에 개봉하지 못한 작품도 많다. 기획과 주연을 맡아 평단의 호평을 받은 <검은 풍선>(2008)이 대표적이다.

<뮤리엘의 웨딩>
<당신이 그녀라면>

큰 눈에 살집이 별로 없는 마른 얼굴이 인상적이지만, 때때로 배역을 위해 증량도 서슴지 않았다. 7주 만에 18kg를 찌운 주연작 <뮤리엘의 웨딩>에선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시는 살을 찌우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당신이 그녀라면>의 로즈 역을 위해 다시 10kg를 증량하기도 했다.
 
연기에 재능을 보인 건 11살. 지루하다는 이유로 꾀병을 연기했는데 의사가 진짜 병이 있다고 진단을 내려 버렸다. 정확히 이 사건이 계기가 됐는지는 몰라도 16살 때 연기 공부를 위해 자퇴하고 국립 극예술 학교(NIDA)에 입학하며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


가브리엘 번 - 스티브 그레이엄

집에서 작업하는 애니와 달리 직장을 다녀서 집을 자주 비우는 편이다. 그래도 집에 오면 가족들을 살뜰히 여기는 가장.

가브리엘 번의 얼굴을 보고 아! 하고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면 1990년대 영화를 챙겨본 관객일 가능성이 크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키튼 역이 대표적이며, <밀러스 크로싱>의 톰, <아이언 마스크>의 달타냥, <엔드 오브 데이즈>의 사탄 역 등 각양각색의 배역들을 소화하며 자신만의 아우라를 과시한 바 있다.

<유주얼 서스펙트>

아일랜드 출신 배우로 29살이란 다소 늦은 나이에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고고학자, 고등학교 선생님, 요리사, 투우사 등 다양한 직업군을 거쳐왔기 때문에 상당히 지적인 배우로 유명하다. 처음 미국 땅을 밟은 나이가 37살였으니 그야말로 대기만성이란 말이 잘 어울린다.

<라우더 댄 밤즈>
<인트리트먼트>
<바이킹스>

2000년대 영화 속에선 90년대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지 못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스파이더>(2002), 장 프랑소와 리셰의 <어썰트 13>(2005), 요아킴 트리에의 <라우더 댄 밤즈>(2015) 정도를 제외하면 국내에 소개된 작품도 적다. 대신 TV 드라마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인 인장을 남겼는데, <인트리트먼트>에선 심리상담사 폴 박사로 출연해 오직 환자와 대화하는 내용뿐인 드라마를 3년 동안 이끌어 에미상과 그래미상 TV드라마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바이킹스>에서 하랄드손으로 백발이 성성한 악역을 누구보다도 매력적으로 그려내 여전한 연기력을 과시했다.


밀리 샤피로 - 찰리 그레이엄
 
버릇처럼 혀를 차는 틱 장애와 땅콩 알레르기를 앓고 있다. 감정 표현이 거의 없다시피하고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장난감을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딱 한 번만 봐도 밀리 샤피로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괴한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이제 고작 16살이지만 이미 상당한 경력을 갖춘 베테랑 배우다. 3살 때부터 언니 아비게일 샤피로를 따라 보컬 트레이닝, 5살 때부터 연기 수업을 받았다고. 그래서 10살이 됐을 때 뮤지컬 <애니>의 주인공 역으로 발탁됐고, 스누피로 유명한 <피너츠>를 연극으로 옮긴 <유어 어 굿 맨 찰리 브라운(You're A Good Man Charlie Brown)>의 샐리 브라운을 연기했다. 이후 언니와 함께 집단 따돌림 반대 운동을 지원하는 등 사회운동에도 참여하며 아역 배우란 단어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뮤지컬 <마틸다> (왼쪽에서 두 번째) / 샤피로 자매의 공연 사진

<유전>은 밀리 샤피로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스스로도 호러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긴다고 밝힌 그다운 선택이다. 살짝 처진 눈과 부스스하게 일어난 머리, 핏기가 싹 가신 듯한 피부는 밀리 샤피로가 가진 섬뜩한 기운을 부각시키며 <유전>의 잊지 못할 얼굴을 각인시킨다.


알렉스 울프 - 피터 그레이엄
 
가끔씩 친구들과 마리화나를 피우는 걸 빼면 평범한 고등학생동생 찰리를 아끼지만 엄마와는 과거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알렉스 울프는 한국에선 <패트리어트 데이><쥬만지: 새로운 세계>로 최근에야 얼굴을 알렸지만, 미국에서는 아역 배우 시절부터 넘치는 끼와 재능으로 대중들에게 주목받았다. 자신의 형 냇 울프와 함께 출연한 시트콤 <더 네이키드 브라더스 밴드(The Naked Brothers Band)>로 데뷔했다. 연기도 연기지만 우쿨렐레, 드럼, 기타를 연주하고 직접 작곡도 하는 음악적 재능도 그의 이름을 알린 무기 중 하나였다.

<쥬만지: 새로운 세계>
<더 네이키드 브라더스 밴드> / 울프 형제의 최근 모습.

이후 브랜드 프레이저와 공연한 <헤어브레인드>, <커밍 쓰루 더 라이>로 몇몇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해 배우로서의 역량도 입증했다. 이후 <나의 그리스식 웨딩 2>에 출연해 ‘스윗 가이’의 매력을 뽐내더니 <패트리어트 데이>에선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의 범인 ‘조하르 차르나예프’를 맡아 팽팽한 긴장감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거기에 <쥬만지: 새로운 세계>의 흥행과 <유전>의 호평까지, 출연작들이 점점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고 형 냇 울프와 음악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주목해야 할 배우임은 틀림없다.  

<커밍 쓰루 더 라이>
알렉스 울프가 <유전> 촬영 당시 SNS에 공개한 사진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