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순서는 절대 아니다.

한 끼로 무엇을 먹는가는 중요하다. 맞다 조금 유난스럽다. 이렇게 얘기하는 나는 평양냉면에 대해 메밀면이 불어터질 때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 당신 집이 어디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제대로 된 이북식 만두를 내는 집을 단박에 알려줄 수도 있다. 여름에 붐비는 냉면집은 대접받기 어려우니 곰탕은 어떤가. 복날을 하루 이틀 벗어난 날 한가하게 즐길 삼계탕도 추천한다. 칼칼한 매운맛의 육개장, 매운 게 싫다면 달짝지근한 육개장도 준비되어 있다. 한식뿐이겠는가. 중식, 일식집, 그것도 아니면 근사한 고백에 걸맞은 파인 다이닝을 내는 집이 필요한가? 오늘도점심 뭐 먹으러 갈래?”라고 묻고내가 잘 아는 곳이 있는데라며 재촉하는 나를 후배들은 듣기 좋은 말로미식가라 부른다.

문득 미식가라는 말이 궁금해졌다. 네이버 사전을 뒤져보니음식에 대해서 특별한 기호를 가진 사람 또는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 적혀있었다. 내게 대입해 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에게 좋은 음식을 찾아 즐기는 것은 맞지만, 다양한 음식에 대해 특별한 기호를 말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고등어구이를 식사에 곁들인 반찬으로는 즐기지만, 생선구이 전문점은 근처도 가지 못한다. 나는 생굴을 시원하다고 말하며 먹지만, 익힌 굴은 비릿하다며 꺼린다. 이 말은 어떤 음식에 대해서는 맛을 전혀 모른다는 말과 같다. 그냥 편식하며 제 입에 맞는 것만 좋아하는 초딩 입맛인거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만날까봐 두려워 나만의 식당 리스트를 촘촘하게 만든 것일 테다. 처음 마주하는 식당 앞에서 주저하기 싫어서.

(위) 황교익, 신동엽(tvN 수요미식회), (아래)김준현(SBS 백종원의 3대천왕).

나 같은 얼뜨기 말고 진정한 미식의 세계를 주름잡는 고수들이 있다. 어떤 음식이라도 그의 입속으로 향하면 무조건 맛있어 보이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개그맨 김준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려면 요리에 얽힌 유구한 역사를 다 들어야 할 것 같은 황교익도 있다. 대한민국 모든 맛집을 소주에 섞어 풀어내는 신동엽은 또 어떤가. 하지만 진심으로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미식의 마스터는 따로 있다. 바로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고로 씨다.

<고독한 미식가 시즌6> (출처 채널W).

7번째 시즌을 이어 온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에피소드는 매회 단순하다. 혼자 수입잡화상을 운영하는 주인공이노가시라 고로는 고객들이 원하는 물건을 요청하면 직접 찾아가 샘플을 보여주고 고객이 결정하면 주문을 실행한다. 이런 직업적 특성 때문에 고로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식사를 해결한다. 세상 가장 중요한 일이 무언가를 먹는 것이라 여기는 주인공 고로는 절대 아무렇게나 식사를 때우는 적이 없다. 허기에 지친 고로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가 멀어지는 장면이 지나면 고로는 마땅한 식당을 찾아 서둘러 돌아다닌다. 고로는 가게 간판과 분위기만 보고 식당을 선택했음에도 매번 만족스러운 식사에 성공한다. 참으로 신묘한 재주가 아닌가?

<고독한 미식가 시즌7> (출처 도라마코리아).

그도 가끔 망설이고 고민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로 움직여,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결정한 곳을 찾아 도전하고야 만다.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누군가에게 물어봐 머릿속에 맛의 이미지를 담아가는 나는 그에 비하면 한낱 겁쟁이일 뿐이다. 익숙한 맛에 안주하며, 거대한 미식의 세계 귀퉁이만 훑어가며 거들먹거린 것이다. 영화 글을 쓰는 나는 또 어떠한가. 보기 싫다고 무섭다고 호러 영화를 등한시하지 않았던가.

<고독한 미식가 시즌7> (출처 도라마코리아).

다시 냉면 이야기다. 재작년 팀을 꾸리고 합류한 후배와 처음 평양냉면을 먹었던 때다. 후배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아 겨자와 식초를 듬뿍 넣었는데 여전히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그랬던 그는 몇 년이 지난 지금 주변의 유명 냉면집들을 도장 깨기 처럼 돌아다니며 냉면 맛을 이야기한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두려움 없이 시도해 경험이 쌓여 인식의 폭이 넓어진 거다. 내가 그에게 냉면 맛을 가르쳤지만, 결국 내가 배운 셈이다.

오늘 점심은 근처 전철역 주변 식당을 뒤져볼 생각이다. 그리고, 절대 못 볼 것 같던 <유전>을 지금 떨리는 마음으로 예매하는 중이다. 고로∼고로∼이노가시라∼

고독한 미식가 시즌7

출연 마츠시게 유타카

방송 2018, 일본 TV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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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