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고 조명이 켜질 때, 마음 한켠에는 그 영화가 남긴 여러 잔상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생각, 감정, 고민 같은 것들 속에서 어떤 색을 남기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이번 주 뒹굴뒹굴 VOD는 색감으로 말하고, 여운까지도 하나의 색으로 남기는 다섯 편의 영화를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소개할 영화는 6월 30일(토)부터 7월 6일(금)까지 N스토어에서 할인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2012

감독 이안
출연 수라즈 샤르마, 이르판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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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신 물라토 파텔, 자칭 ‘파이’는 동물원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파이는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가던 중 태풍을 맞닥뜨려 태평양을 표류하게 됩니다. 운 나쁘게도, 아버지의 동물원에서 키우던 벵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 함께요. 파이의 망망대해 생존기를 그린 <라이프 오브 파이>는 상영 시간 대부분 파이와 리차드 파커가 표류하는 바다를 담습니다. 바다의 낮과 해질녁, 밤을 오가면서 관객들은 있는 그대로의 바다가 만드는 여러 풍경들을 마주합니다.

푸른 바다 위, 동동 떠가는 배 한 척을 보고 있노라면 그 청량함에 빠져들 것 같으면서도 어떤 일이 벌어지진않을까 불안감이 가시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바다는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태초의 생명 그 자체이자, 통제불능의 사고가 난무하는 죽음의 공간이기도 했죠. <라이프 오브 파이>는 바다 안에 깃든 생명력과 언젠가 찾아올 결여의 순간, 그 이중적인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그려냅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

감독 이안

출연 수라즈 샤르마, 이르판 칸

개봉 201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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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애니웨이
Laurence Anyways, 2012

감독 자비에 돌란
출연 멜비 푸포, 쉬잔느 클레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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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로렌스는 자신의 애인 프레드에게 말합니다. 이제는 여자로 살고 싶다고. <로렌스 애니웨이>는 여자로 살고 싶은 로렌스와 그를 사랑하기에 곁에 남으려는 프레드의 이야기입니다. 자비에 돌란은 4:3 비율과 다양한 색을 활용한 특유의 미감으로 이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돌란을 향한 ‘천재 감독’이란 평가가 온당한지는 여전히 논란이지만, 감각적인 영상을 포착하는 그의 시선만큼은 인정할 수밖에요.

<로렌스 애니웨이>는 하나의 색이 아닌, 다채로운 색의 발현 자체를 중심 톤으로 삼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만화경처럼 다양한 색들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듯하죠. 약 10년의 세월을 그리고 있지만 공간과 정서에 맞춰 색을 사용한 덕분에 시대를 초월한 듯한 영상미를 보여줍니다. 진정한 자신을 찾는 로렌스를 끌어안은 보라색과 프레드가 끝내 털어내야만 했던 붉은색의 대비도 아름답습니다. 

로렌스 애니웨이

감독 자비에 돌란

출연 나탈리 베이, 멜빌 푸포, 모니아 초크리, 이브 자크, 수잔 클레망

개봉 2012 캐나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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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The Fall, 2006

감독 타셈 싱
출연 리 페이스, 카틴카 언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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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화려한 색으로 채우려면? 세트를 짓거나 미술팀이 잘 만들어둔 장소에서 찍어야만 할까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하 <더 폴>)은 그렇지 않다고, 시간과 충분한 사전답사가 있으면 자연과 역사 유적만으로도 총천연색을 담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타셈 싱 감독과 제작진은 약 17년에 걸쳐 수많은 장소를 찾아냈고, 세계를 누미며 촬영하느라 4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공들일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을 갖기도 전에 <더 폴>은 흑백의 오프닝부터 관객들을 사로잡습니다.

스턴트맨 로이(리 페이스)가 약을 얻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에게 들려주는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꼼짝없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들의 현실과 대비돼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야기 곳곳에는 로이의 비관적인 상황이 투영돼 안타까움도 자아내죠. 일각에선 이 영화를 두고 ‘속 빈 강정’이라고 말하지만, 이 정도의 영상미라면 속이 비었어도 언제든지 환영하고 싶습니다.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감독 타셈 싱

출연 리 페이스, 카틴카 언타루

개봉 2006 인도, 영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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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
Le Fabuleux Destin D'Amelie Poulain, 2001

감독 장-피에르 주네
출연 오드리 토투, 마티유 카소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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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 프랑스 감독하면 생각나는 영화는? <아멜리에>를 떠올리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영화를 잘 모르는 분들도 초록색 배경에 빨간 옷을 입은 오드리 토투의 미소가 돋보이는 포스터나 OST는 한 번쯤 접해봤을 텐데요, <델리카트슨 사람들>과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에서 보여준 장-피에르 주네 감독 특유의 아이로니컬한 유머와 상상력이 오드리 토투를 만나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납니다.

채도가 높은 세피아(누런 갈색) 톤의 영상은 흔히 말하는 ‘뽀샤시’ 효과를 연상케 하는데요, 여기에 강한 원색 계열인 녹색과 적색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도리어 세련된 느낌을 더합니다. 거기에 광각을 이용한 화면 구성과 빠른 카메라워크까지. 정돈된 미장셴과 파스텔 계통의 색을 사용하는 최근 영화들과는 정반대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나요?

아멜리에

감독 장 피에르 주네

출연 오드리 토투, 마티유 카소비츠

개봉 2001 프랑스,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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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스킨
Under The Skin, 2013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
출연 스칼렛 요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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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색감이 있다고?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반문하실지도 모르지만, <언더 더 스킨>은 ‘색’임을 자주 잊는 검은색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합니다. 외계인 로라(스칼렛 요한슨)가 여성의 신체를 빌려 남자들을 유혹한다, 마치 에로틱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내용이지만, <언더 더 스킨>은 전후 설명도 없이 끝까지 일방통행하는 실험 영화에 가깝습니다. 덕분에 평단에선 백 점 만점을 받고도 인지도가 거의 없는, 대중들에게 낯선 영화이기도 합니다. 

특히 로라가 검은색의 빈 공간에서 유혹한 남성들을 죽이는 장면들은 그로테스크한 미(美)의 끝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들은 잔인해 보이지만 사방의 검은색이 그 어떤 고통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비현실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합니다. <언더 더 스킨>에 녹아든 검은색이 주는 본질적인 공포를 마주하고 있으면, 인간이 왜 경험해보지도 못할 블랙홀에 압도되는지, 검은색이 죽음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종교인들의 복장에 사용되는 이중적인 색인지, 그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고 할까요?

언더 더 스킨

감독 조나단 글래이저

출연 스칼렛 요한슨, 제레미 맥윌리암스, 린시 테일러 맥케이, 폴 브래니건

개봉 2013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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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