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그의 이름이 호출되진 않지만, 24년 전 여균동이란 이름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에서 경력을 시작한 그는 <그대 안의 블루>, <베를린 리포트> 등의 영화에 각색으로 참여하다 <세상 밖으로>를 연출하며 대중에게 처음 이름을 알렸다. 블랙코미디와 로드무비 성격의 영화는 신선했고, 이 한 편으로 여균동이란 이름은 단숨에 주목받게 된다.
1994년의 김종서는 톱스타였다. 헤비메탈 밴드에서 활동하다 솔로로 데뷔한 그는 ‘대답 없는 너’, ‘지금은 알 수 없어’, ‘겨울비’ 등의 히트곡을 연거푸 발표하며 록 음악으로 정상의 위치에 올라있었다. 변절자라는 시샘 어린 눈길도 있었지만 그가 만든 노래들은 대중성과 음악성 사이에서 방향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젊고 재능 있는 영화감독과 음악가가 <세상 밖으로>에서 만났다.
의도치 않게 탈옥하게 된 성근(문성근)과 경영(이경영), 도주 도중 만나게 된 혜진(심혜진)과 함께 전국을 떠돈다. 그 안에 유머도 있고 사회비판도 있다. 또 이전 한국 영화에선 볼 수 없던 현실감 있는 욕설도 <세상 밖으로>만의 특징이다. 여균동 감독은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데리고 기발한 각본과 연출로 관객을 웃게도 하고 쓴웃음을 짓게도 하고 짠한 마음을 갖게도 한다.
김종서는 이 다양한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주제가인 ‘세상 밖으로’가 탈주 뒤에 알 수 없는 세상을 향한 두려움과 설렘의 감정을 고루 갖고 있다면 심혜진이 직접 노래한 ‘삶을 향해’ 역시 삶의 회한과 희망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혜진뿐 아니라 성근, 경영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정서일 것이다. 사운드트랙의 골자는 이 두 노래다. 김종서는 이 두 곡을 중심에 두고 변주하며 앨범을 완성했다.
또 김종서는 자신이 모든 걸 다하려 하지 않았다. 그에겐 좋은 선후배 동료 음악가들이 있었고 이들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서포트한다. 가령 당시 함께 투어를 돌며 자신의 밴드로 활동하던 사랑과 평화에게 많은 부분의 연주를 맡겼다. 세련된 퓨전 재즈 스타일의 편곡을 들려주는 ‘Opening Theme’나 ‘세상 밖으로’의 레게 버전은 오랜 기간 폭넓은 스타일을 소화해온 사랑과 평화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헤비메탈 후배 밴드들인 블랙 신드롬과 터보에게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속 시원한 감정의 분출을 맡겼다. (댄스 그룹과 동명인) 스래쉬 메탈 밴드 터보는 더 과격한 스타일과 보컬로, 블랙 신드롬은 여전히 파괴적이고 질주하는 정통 헤비메탈 스타일로 이장희의 ‘그건 너’를 커버했다.
다만 이 다양한 스타일과 시도가 그때까지도 자리를 잡지 못했던 빈약한 사운드로 표현된 건 아쉬운 일이다. 의욕과 아이디어는 넘쳤지만 그걸 뒷받침해줄 하드웨어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시대였다. 심혜진의 ‘삶을 향해’에서 들리는 리버브가 잔뜩 낀 소리는 지금 들으면 촌스럽다. ‘90년대의 음악이라는 걸 알리는 듯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세상 밖으로(Dance Version)’ 또한 시대의 한계가 명확하다.
말하자면 이건 1994년, ‘90년대’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영화와 사운드트랙이었다. 풍족한 자본으로 전과 달리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진 영화들이 대거 개봉할 수 있었고, 영화음악을 파격적으로 로커에게 맡길 수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세상 밖으로>의 사운드트랙이 엄청난 작품이라거나 성공적인 결과물이란 얘기는 아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걸 해보고, 새로운 걸 들려주고 싶어 하는 아티스트의 마음과 그 시대가 그대로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 사운드트랙은 특별하다.

- 세상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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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여균동
출연 문성근, 이경영, 심혜진
개봉 1994 대한민국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