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을 거래하는 부패 경찰 일당에게 몰살된 마틸다(나탈리 포트만)의 가족.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온 마틸다는 시체가 널브러진 집안의 끔찍한 현장을 발견하고 기지를 발휘해 옆집 초인종을 누른다. 그렇게 청부살인업자 레옹(장 르노)의 집에 방문한 마틸다는 그와 함께 살게 되면서 킬러가 되기로 다짐한다.
<레옹>의 게리 올드만
12세 소녀 마틸다와 고독한 킬러 레옹의 이야기, <레옹>(1994)은 만인이 손꼽는 명작인 동시에 뤽 베송을 유명 감독의 반열에 올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1995년 개봉 이후 150만 명을 동원하며 전 세계에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하나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레옹>은 명장면, 명대사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의상부터 사운드트랙으로 쓰인 스팅의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Shape Of My Heart)까지 모두 화제의 대상이었다. 배우 나탈리 포트만은 이 영화를 통해 아역 배우로 데뷔해 현재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로 성장했고, 부패 경찰을 맡은 게리 올드만의 악역 연기도 역대급 명연기로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깊은 인상을 남긴 <레옹>이 최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논란의 요지는 영화가 소아성애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것. 다수의 관객들이 <레옹>에 소아성애를 연상시키는 연출 지점들을 지적하고 나섰다.
<레옹>에서 마릴린 먼로를 흉내 내는 마틸다.
겨우 열두 살 밖에 되지 않은 마틸다와 40대 정도로 보이는 레옹 사이에 모호하게 흐르는 로맨스, 극 중 마틸다가 레옹을 향해 섹스 심벌로 알려진 유명인(마릴린 먼로,마돈나 등)을 서투른 변장으로 흉내 내는 장면,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에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주는 마틸다의 대사 등. 영화가 취하고 있는 기본 컨셉에서 페도필리아(소아성애증)로 일컫는 성도착적 요소가 읽힌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부인, 마이웬과의 관계
<레옹>
<레옹>은 1995년 국내 첫 개봉 당시 특정 장면들을 덜어낸 버전으로 상영됐다. 마틸다가 선물 받은 어른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레옹에게 섹슈얼한 대사를 하는 장면과, 아픈 사랑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털어놓으며 이를 거절하는 레옹, 그리고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던 레옹이 마틸다와 함께 잠에 드는 장면 등을 삭제했다. 이 부분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미국 관객들의 반응 영향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정식 개봉 버전에서 해당 장면들이 삭제되면서 영화가 소아성애를 내포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딱 잘라 단정할 수는 없어졌다. 다 자랐지만 미성숙한 레옹과 덜 자랐지만 조숙한 아이 마틸다의 아름다운 우정으로 해석하기에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감독 겸 배우 마이웬
그런데 논란에 기름을 부은 뤽 베송의 과거 한 인터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는 “두 번째 부인이었던 마이웬과의 관계에서 <레옹>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는데, 마이웬이 뤽 베송의 아이를 낳은 1993년에 그녀의 나이는 만 16세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충격을 줬다. 따라서, 모호하게 그려졌던 감정선이 감독의 언급에 의해 연출 의도가 자명해지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레옹>은 소아성애적 코드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여기에 나탈리 포트만의 발언이 더해져 논란은 커졌다. <레옹>에서 마틸다를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은 올해 1월, 미국 LA에서 열린 여성의 날 행사에서 고백 연설을 했다. 이 연설로 <레옹>의 개봉 이후, 나탈리 포트만이 10 대 초반의 나이에 겪어야 했던 성적 대상화의 악몽이 세간에 알려진다.
여성의 날 행사에서 연설하는 나탈리 포트만.
“처음 <레옹>이 개봉되었을 때, 저는 13살이었고 굉장히 신난 상태였습니다. 제 작품에 대한 인간적인 반응들을 마주할 생각에요. 그리고 제가 설레는 마음으로 뜯은 첫 번째 팬 레터에는 자신의 강간 판타지를 적은 남성의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는 제 18번째 생일까지의 디데이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합법적으로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날짜죠. 영화평론가들은 저의 커가는 가슴에 대한 리뷰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13살의 이른 나이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섹슈얼하게 보인다는 것이, 곧 제가 안전하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것을요.”
미투 지목된 뤽 베송 감독
뤽 베송 감독
설상가상으로 지난 5월, 뤽 베송 감독을 향한 성폭행 폭로까지 나왔다. 익명의 여성 배우는 과거 뤽 베송 감독을 만나 대접받은 차를 마신 뒤 정신을 잃었고,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었으며, 뤽 베송은 돈뭉치를 남기고 떠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뤽 베송 감독은 이에 대해 “몽상가의 고소일 뿐”이라고 나서며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사실이 아니”라고 못 박으며 혐의를 부인했다.
“재개봉은 시대착오적” 논란 커져
<레옹>
<레옹>은 1998년에 삭제된 장면을 추가한 감독판을 단관 공개했고, 2013년에 다시 이 감독판을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해 인기몰이를 했다. 올해로 세 번째 재개봉을 맞은 <레옹>은 이미 공개된 133분짜리 감독판에서 4K로 개선된 화질의 영상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례적으로 세 번이나 재개봉되는 영화인데다, 개봉 때마다 꽤 높은 관객 스코어를 기록했던 <레옹>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번엔 그다지 곱지 않다. “작품은 작품대로, 사생활은 사생활대로”라는 입장이 존재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나탈리 포트만의 고백에 이어 감독까지 성폭력 사건으로 피소된 마당에 이와 같은 재개봉 소식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반응이 속출하고 있는 모양새.
2013년 <레옹> 재개봉 당시 공개된 디자인 스틸컷.
재개봉을 기다리는 팬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논란을 두고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하기엔 무리가 있다”거나 “인생영화로 남은 <레옹>에서 아동성애와 관련된 어떤 것도 발견한 적이 없었다.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어찌 됐던,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은 영화였던 <레옹>에 뒤늦게 여러 논란이 불거지면서 <레옹>의 재개봉이 어떤 관객들에게는 편치 않은 소식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개봉을 추진 중인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측은 “지난해에 개봉하려던 작품이었는데 사정상 이번에 진행하게 됐다”며 “상황은 인지하고 있지만 개봉을 지연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초고화질의 상영을 준비 중인 <레옹> 재개봉은 오는 7월 11일, 전국 50여 개 관에서 소규모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