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매몰된 터널에 갇힌 상황을 우습고 씁쓸하게 그린 조난영화 <터널>과 전편의 성공에 힘입어 이번엔 한국 최초의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의 활약을 담은 <국가대표2>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두 영화 사이에는 공통점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8월 10일 같은 날 개봉한다는 점이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드론을 활용한 부감숏이 선명하게 각인되는 작품이라는 점이죠. <터널>에서는 드론을 띄워 주인공이 갇힌 터널 안을 관찰하고, <국가대표2>에서는 하키선수단이 전지훈련을 떠난 시골 풍경이나 많은 인파가 모인 아시안게임 경기장을 드넓게 보여줍니다. 아, 그나저나 부감이 대체 뭐냐고요?
부감(俯瞰)이란 말이죠...
구부릴 부(俯)에 굽어보다 감(瞰). 말 그대로 '위에서 굽어다본'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High Angle 혹은 새의 시선이라는 뜻의 Bird's Eye View라고 부릅니다. 저 높은 곳에서 아래를 향해서, 주로 넓은 시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서 아래를 보는 수직적인 구도라 시선의 권위가 부여되기도 하죠. 그래서 극단적인 높이의 부감을 God's Eye View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짧은 거리 역시 내려다보기만 한다면 마찬가지로 부감입니다. 여러분이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으로 이 글을 보는 시선을 카메라로 찍는다면 그 역시 부감이 되겠지요.
그렇게 찍으면 뭐가 좋냐고요?
공간을 수직적인 시선을 통해 보여주기에 그곳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한 신의 도입부에 놓여서 설정숏 역할을 합니다. 도시의 모습을 조망하는 숏들이 영화 오프닝이나 인서트로서 배치됐을 때 부감숏이 많은 것은 이유도 이런 장점과 닿아 있습니다.
인물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인물이 홀로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위에서 비추면 그의 고독함이 선명하게 전달됩니다. 한편, 인물 주변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으면 그가 갈 곳을 잃었거나 공격을 당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주기도 하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선에 권위가 부여되기 때문에 인물 간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우위에 있는 인물은 부감으로 상대방을 낮춰볼 때, 아래에 놓인 인물은 앙각(仰角, Low Angle)을 점하게 되는 게 일반입니다. 이와 같은 시선의 관습을 깨트려 인물의 관계가 달라졌음을 나타내기도 하죠.
부감이 인상적인 영화
몇 편 소개해드리죠.
<괴물>
(봉준호, 2006)
한국영화에서 부감으로 찍은 게 뭐가 있지? 생각하다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게 <괴물>의 이 장면입니다. 한강에 나타난 괴물에게 잡혀간 현서(고아성)의 합동분향소에서 강두(송강호) 가족이 울고불고 궁상을 떨다가 미끄러져 바닥에 널브러지는 대목이죠.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체육관에는 유가족들이 그득그득하지만, 저렇게 부감으로 강두 가족을 비출 때 거기에 꼭 그들만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현서(의 영정사진)가 자신의 죽음을 바보 같은 모습으로 슬퍼하는 가족을 굽어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때 그 사람들>
(임상수, 2005)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룬 <그때 그 사람들>은 크게 암살되기 전과 후 둘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수많은 평자들이 <그때 그 사람들>의 명장면으로 이야기 하는 이 부감숏은 그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구간으로서 배치됐습니다. 주 과장(한석규)이 궁정동 안가를 둘러보는 이 숏은 한바탕 난리가 끝난 후 여기저기 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경호원들과 요리사들의 주검을 비춥니다. 시종일관 블랙코미디의 화법으로 일관하던 영화는 이 순간 웃음기를 싹 거두고 현장의 처참함을 냉혹하게 전시하죠. 이 숏을 맴도는 건 바로 죄책감입니다.
<귀향>
(조정래, 2015)
위안부 강제동원이라는 식민지 시대의 뼈아픈 기억을 끄집어낸 <귀향>. 이 작품은 소박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360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처를 대중들에게 각인시켰습니다. <귀향>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잊기 힘든 부감숏이 있습니다. 공중에서 수용소 곳곳을 훑는 이 숏은, 수용소 안 소녀들에게 자행된 어마어마한 폭력이 무엇인지 에두르지 않고 보여주죠. 1분 남짓한 길이지만 억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하늘을 걷는 남자>
(로버트 저메키스, 2015)
<하늘을 걷는 남자>는 부감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1974년 곡예사 필립 페티(조셉 고든 레빗)가 쌍둥이 빌딩인 412미터 높이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사이를 줄 하나로 횡단해낸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필연적으로 그 높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주는 부감숏이 지대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죠. <하늘을 걷는 남자>는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공간감을 부풀리는 부감의 역할을 극단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하나인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3D 기술까지 동원하여 아찔한 비주얼을 구현해 필립의 귀한 모험에 기꺼이 존경을 바쳤습니다.
<킬 빌 Vol.1>
(쿠엔틴 타란티노, 2004)
세상의 온갖 액션영화에 대한 오마주로 만들어진 <킬 빌>의 백미는 단연 청엽정에서의 대규모 전투 시퀀스입니다.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가 숙적 오렌 이시(루시 리우)의 부하들과 일당백 액션을 벌이죠. 이때 타란티노는 우리의 주인공이 혼자서 저 많은 갱들을 해치워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보여줍니다. 노란 동그라미처럼 보이는 더 브라이드를 시커먼 양복의 조직원들이 에워싸고 있는 풍경으로요. 하지만 염려는 붙들어 매세요. 그녀의 손에는 핫토리 한조의 걸작이 쥐어져 있으니까요. 아래 이미지는 중간 보고입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