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맨과 와스프> 콘셉트 아트.

마블 스튜디오의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스무 번째 영화이자 올해의 마지막 마블 영화인 <앤트맨과 와스프>가 개봉했다. 바로 직전에 공개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하 <인피니티 워>)의 참담하고 엄청난 결말(!)을 생각해본다면 과연 어떤 식으로 바통을 이어받을지 예상조차 힘들었는데, 3년 만에 돌아온 <앤트맨> 속편은 전작의 색채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경쾌한 톤 앤 매너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신명 나게 펼쳐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피니티 워>에서 앤트맨 캐릭터들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고, 이 영화 자체도 이때가 배경이 아닌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하 <시빌 워>)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앤트맨>은 마블 스튜디오가 출범했던 2006년 당시, <아이언 맨><인크레더블 헐크>, <토르> 등과 함께 초기 MCU를 구상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제작 발표가 이뤄진 작품들 중 하나였지만(심지어 감독마저 빨리 결정됐다), 애초 연출을 담당한 에드가 라이트의 복잡한(?) 사정상 계속 뒤로 밀리다가 그가 창작상의 견해차를 이유로 2014년 연출을 포기하며 뒤늦게 MCU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런 결과 코믹스 세계관에서 꽤 주요한 역할을 가져갔던 여러 설정들이 변경될 수밖에 없었는데, 가뜩이나 늦은 출발에 낮은 지명도와 인기마저 커버해야 하는 난관을 떠맡은 건 코미디로 다져진 페이튼 리드 감독과 <빅 쇼트>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애덤 맥케이였다.

프로젝트를 맡았던 에드가 라이트(왼쪽) / 감독 교체 이후 각본을 맡은 애덤 맥케이 (오른쪽)



더욱더 업그레이드된 앤트맨 속편
<앤트맨>

이들은 주연배우인 폴 러드와 함께 에드가 라이트가 쓴 독립적인 초고를 MCU에 적절히 녹여낸 가족 코미디로 탈바꿈시켰고, 사이즈를 통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거대화를 이뤄낸 독창적인 액션 시퀀스들을 통해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안겨주어 호평을 이끌어냈다. 전작의 장점과 미덕을 고스란히 가져온 <앤트맨과 와스프>스콧’(폴 러드)캐시’(주디 그리어) 부녀와 행크’(마이클 더글라스)호프’(에반젤린 릴리) 부녀 외에 시리즈 내 떡밥처럼 남아 있는 호프의 엄마 재닛’(미셸 파이퍼)의 등장과 유사가족 관계처럼 다가오는 ’(로렌스 피시번)고스트’(해나 존-케이먼)를 더하며 더욱더 가족주의적인 색채를 높였고, 작아지던 것에 주력했던 전편과 달리 <시빌 워>에서 이어 자이언트 맨의 활약까지 보태며 스펙터클의 쾌감을 강조했다.
 
기존 배역들 외에 왕년의 캣 우먼이었던 미셸 파이퍼가 작품 내 큰 열쇠라 할 수 있는 1와스프재닛 밴 다인을 연기하고 있으며, 히어로물에서 든든한 조력자로 등장하는 로렌스 피시번과 맛깔난 연기로 정평이 난 개성파 배우 월튼 고긴스 그리고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해나 존 케이먼이 빌런 고스트로 등장해 임팩트를 남긴다. 작품적 성취나 야심을 드러내는 대신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뽑아낸 제작진의 합리적이고 영리한 전략은 아기자기하면서 특유의 따뜻한 유머 코드를 접목시켜 <인피니티 워>의 짙은 상흔을 씻겨준다. (물론 2개의 쿠키를 보고 나면 다시 그 안타까움에 시달릴 듯하지만..)

마이클 더글라스(행크 핌 역, 왼쪽) / 미셸 파이퍼 (재닛 밴 다인 역, 오른쪽)

코미디 영화음악의 젊은 강자 크리스토퍼 벡
크리스토퍼 벡(왼쪽) / 페이튼 리드 (오른쪽)

전편에 이어 음악을 담당한 이는 캐나다 출신의 영화음악가 크리스토퍼 벡이다. 감독 페이튼 리드와는 무려 18년 전에 그의 극영화 데뷔작이었던 <브링 잇 온>을 함께 한 인연이 있다. 예일대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영화로 유명한 남가주대학(USC)에서 다시 영화음악을 공부한 벡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작곡가 제리 골드스미스에게 직접 사사받기도 했다. 이후 <날으는 슈퍼맨>, <에이 특공대>, <광속인간>, <천재소년 두기>, <와이즈가이>, <레니게이드>, <로우 앤 오더>, <뉴욕경찰 24> 8-90년대 외화시리즈의 음악을 도맡았던 마이크 포스트 밑에서 경험을 쌓는데, 그 역시 90년대 중반부터 TV 시리즈에 참여하며 영화음악가로 데뷔했다.
 
국내에서도 방영됐던 <FX: 시리즈><프랙티스> 등 여러 작품들에서 알음알음 작업을 이어가지만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자 인상적인 결과물을 남겼던 건 조스 웨던과 함께 한 <뱀파이어 해결사>였다. 4시즌까지 가장 많은 스코어를 담당하며 이 독특한 컬트 청춘 장르물의 정체성과 색깔을 부여했다. 스핀 오프인 <엔젤> 음악까지 담당한 그는 이를 발판으로 2000년대부터 할리우드로 진출해 앞서 언급한 슬리퍼 히트작 <브링 잇 온>을 비롯해, 숀 레비 감독이나 토드 필립스 감독의 일련의 성공적인 코미디들에 주로 중용되며 자신의 입지를 확보했다. 특히나 2000년대 초반 그의 필모들을 보면 한해 대여섯 편을 소화하는 등 엄청난 다작을 자랑한다.
 


가족 코미디와 하이스트 무비 그리고 슈퍼 히어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앤트맨>의 음악으로 코네토(Cornetto)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지구가 끝장나는 날>을 함께 했던 스티븐 프라이스를 내정한 상태였는데, 마블에서도 <그래비티>로 깜짝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신데렐라인 그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MCU 사상 최초의 오스카 수상자가 음악을 맡는 첫 번째 작품이 될 수도 있었지만, 감독이 하차하며 스티븐 프라이스 역시 이 프로젝트에서 떠나고 만다.(이후 그는 DC<수어사이드 스쿼드> 음악을 맡았다.) 그 대타로 크리스토퍼 벡이 간택된 건(물론 리드 감독과 인연도 있지만) 데뷔 이래 코미디 장르에서 보여준 다양한 경험과 <핑크 팬더> 리메이크 시리즈나 <타워 하이스트>, <히든 카드>, <레드> 등 하이스트 무비들에서 들려준 긴장감 넘치는 사운드를 높이 샀기 때문이었다.
 
<앤트맨> 시리즈는 일반적인 슈퍼히어로물의 플롯보다는 가족 코미디에 케이퍼 무비가 결합된 형태에 더 가까웠고, 크리스토퍼 벡만큼 그 두 장르에 특화된 전문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게다가 그는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이나 <R.I.P.D.>, <엣지 오브 투머로우> 등으로 블록버스터를 경험한데다가, 이미 마블의 캐릭터이자 데어데블 스핀 오프인 <엘렉트라>의 음악으로 슈퍼히어로 장르마저 데뷔한 적이 있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단지 기존의 코미디 전문 영화음악가라는 인식이 너무 크고, 오래 붙어있었을 뿐인데, 이 두 편의 <앤트맨> 시리즈 스코어로 그 편협스러운 시선마저 완전히 날려버렸다.

<앤트맨> OST 표지

파워풀하고 쫄깃하지만 동시에 따스하고 유쾌한 음악들
<앤트맨과 와스프> OST 표지

파워풀한 관현악 사운드를 스타카토로 끊어내며 강력하게 휘몰아치는 여덟 노트의 반복된 멜로디가 던지는 충격파는 가히 엄청나다. 언뜻 제리 골드스미스의 위용을 떠올리게도 만드는데, 단선적이면서도 묵직한 질감의 단단한 사운드가 대니 엘프만 느낌의 독특한 리듬감과 만나 개미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구현해냈다. 여기에 헨리 맨시니나 랄로 쉬프린으로 대표되는 레트로한 스타일을 결부시켜 하이스트 장르의 인장을 꾹 찍어주는 앤트맨의 테마는 MCU의 그 어떤 스코어와 견주어도 꿀리지 않는 특색을 갖는다. 슈퍼히어로를 위한 찬가보다는 어두운 뒷세계에 몸담고 있는 의적의 행적을 그리듯 앤트맨의 특징을 명료하게 음악화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에 방점을 삼은 작품임을 잊지 않는다. 영웅주의보다 더 주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은 딸과의 관계 회복이고, 이는 2대 앤트맨인 스콧의 이야기나 1대 앤트맨인 행크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이다. 이를 위해 속편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곡은 70년대 뮤지컬 시트콤 <파트리지 패밀리>의 주제곡인 ‘Come On Get Happy’이고, 더스티 스트링필드의 ‘Spooky’는 마치 양자의 세계 속에서 방황하는 재닛과 고스트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벡의 스코어도 엄마를 잃어버린 호프의 전사를 보여주는 프롤로그나 에이바의 사연을 풀어내는 플래시백 그리고 파트너 이야기를 꺼내는 스콧과 딸과의 대화 씬 등에서 전작에 비해 부쩍 농후해진 감성적이고 가족적인 사운드를 선사한다.

에반젤린 릴리 (호프 밴 다인 역)

MCU에서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제목에 올린 여성 슈퍼히어로에 걸맞게 역동적이고 빈지티스러운 와스프테마를 새로 부여했는데, 아예 엔드 타이틀 시퀀스에선 앤트맨 테마 대신 흘러나오며 이번 작품의 진정한 공신임을 알린다. 벡은 전통적인 3/4박자나 4/4박자 외에, 앤트맨을 상징하는 7박자와 와스프를 상징하는 5박자 등의 섞임박자(혼합박자) 혼용해 두 슈퍼히어로의 다면적인 성격에 맞는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한 효과도 주고자 했다. 미시적인 세계관을 묘사하기 위해 풀 오케스트라가 동원돼 만들어낸 거대한 사운드의 아이러니한 효과는 너무나 할리우드적이어서 인상적이고 소름 돋는다.


그리고 그들의 미래가 궁금하다

개봉 1주차에 이미 전작의 최종 흥행 성적(284만 명)을 넘어선 <앤트맨과 와스프>(현재 285만 명)는 미국에서도 76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전선을 밝히고 있다. 앞으로 공개될 <어벤져스 4>(가제)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게 될 것이란 케빈 파이기의 말대로 앤트맨의 캐릭터들이 MCU에서 어떤 활약을 하게 될지 자못 기대된다. 내년 겨울 공개될 <겨울 왕국> 속편을 대기 중인 크리스토퍼 벡의 행보도 물론.

앤트맨과 와스프

감독 페이튼 리드

출연 폴 러드, 에반젤린 릴리, 마이클 더글라스, 마이클 페나, 로렌스 피시번, 미셸 파이퍼, 해나 존-케이먼

개봉 201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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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맨

감독 페이튼 리드

출연 폴 러드, 마이클 더글라스, 에반젤린 릴리, 코리 스톨

개봉 2015 미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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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