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한국 영화 중에 좋아하는 멜로 영화를 꼽으라면 우선순위로 꼽을 작품이 몇 개 있습니다. 정원(한석규)과 다림(심은하)이 사진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8월의 크리스마스>, 볼 때마다 폭풍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배창호 감독의 <우리 기쁜 젊은 날>, 손예진과 조승우의 풋풋한 연기가 돋보였던 <클래식> 그리고 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입니다.

국문과 82학번 인우(이병헌)는 굵은 장대비가 내리던 한여름, 우산 속으로 뛰어드는 누군가를 만납니다. 하얀 셔츠가 수수한 외모에 잘 어울리는 태희(이은주)는 우산이 아닌 그의 마음 안으로 예고 없이 찾아온 첫사랑입니다. 캠퍼스 안에서 그녀를 다시 발견한 인우는 국문과 수업을 뒤로 한 채 그녀의 전공 수업에 꼬박꼬박 출석합니다.

운동화 끈 풀린 태희에게 조용히 다가와 끈을 묶어주고, 그녀의 전공인 조소과 엠티까지 쫓아와 그녀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허밍을 읊조리며 바닷가를 거니는 그녀 뒤를 졸졸 따라가고, 그 외에도 인우는 그녀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합니다. 부끄러움이 많고 어리숙해 보이지만 필요할 때면 어느새 나타나 자신을 지켜주는 이런 남자를 마다할 여자가 있을까요? 이 영화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유는 인우라는 순정남의 등장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군 입대를 앞둔 인우가 입영 열차를 타기 전, 약속했던 그녀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진 거죠.

영화는 시간이 흘러 2000.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된 삼십 대 인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이 된 그는 반 아이들에게 인연의 소중함을 문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감수성이 풍부한 교사가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첫사랑 얘기를 물어도 다 잊어버렸다."라고 말할 정도로 태희에 대해 무덤덤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속으로는 아련한 마음이 들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새로 맡게 된 학급에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남학생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은 임현빈(여현수). 그는 태희가 환생했나 싶을 정도로 그녀와 똑같은 버릇을 가졌습니다. 그녀가 했던 질문을 그대로 던지기도 하고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라이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우는 그 소년을 바라보며 다시 태희를 떠올리고 그때 그 시절의 감정이 되살아나 혼란스러워합니다.

영화는 현빈의 등장으로 세상에 인연은 단 하나뿐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17년을 지나 환생한 연인이 남자로 태어난다는 설정은 무척 새로웠죠. 당시만 해도 동성애 코드와 환생이라는 동양적 사상을 결합한 소재가 드물었던 터라 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큰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저도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설렘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오래전 고인이 된 배우 이은주의 풋풋한 모습과 사랑에 푹 빠져 웃던 이병헌의 시원한 미소도 좋았고 그 둘의 연기가 섬세했던 건 두말할 나위가 없고요.

인생의 절벽 아래도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흘러나오는 이 내레이션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합니다

번지 점프를 하다

감독 김대승

출연 이병헌, 이은주

개봉 2000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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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메뉴 따라하기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비빔밥을 고른 이유는 메뉴 때문이라기보다는 숟가락에 얽힌 에피소드 때문입니다. 등산을 갔다가 비빔밥을 먹으려 들어간 태희와 민우. 그녀는 국문과를 전공한 인우에게 왜 젓가락은 시옷 받침인데, 숟가락은 디귿 받침이야?”라고 묻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를 찾아봤는데 이미 그곳에 답변이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사이시옷 원칙이 적용되는 젓가락과 달리 숟가락은 가락이 결함할 때 끝소리 받침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바느질+고리가 반짇고리가 되는 것처럼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고 이제 숟가락으로 맛있는 비빔밥을 비벼 드시길!


새싹비빔밥

재료
2공기, 새싹채소 2, 달걀 2, 당근애호박 1/4개씩, 표고버섯 2, 소금후춧가루 조금씩, 간장참기름 조금씩, 달걀 1, 구운 김 적당량
양념장: 고추장 3 큰 술, 식초올리고당참기름 1 큰 술씩, 다진 마늘설탕 1/2 큰 술, 다진 파깨소금 조금

만들기
1. 당근은 가늘고 납작하게 채 썰고 애호박은 반달 모양으로 썰어 소금을 뿌려둔다.
2. 표고버섯은 갓을 뗀 뒤 적당한 두께로 썰어 간장과 참기름으로 양념한다.
3. 새싹채소는 깨끗하게 씻은 뒤 물기를 완전히 털어 준비한다.
4. 애호박의 물기를 없앤 뒤 팬에 볶아 식히고 당근과 양념한 버섯도 따로 볶는다.
5. 양념장 재료는 한데 담아 골고루 섞는다.
6. 그릇에 밥을 담고 새싹과 각종 재료를 올린 뒤 반숙으로 프라이한 달걀을 얹는다.
7. 비빔밥에 양념장을 곁들여낸다.


파란달 / 요리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