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할리우드의 고전 호러 리메이크가 많아졌다. 그동안의 후속편을 무시하고 바로 1편에서 이어지는 <할로윈>, <텍사스 전기톤 학살>의 레더페이스의 어린 시절을 다룬 <레더페이스>, 독특한 정글호러 <프레데터>의 리부트 등이 쏟아진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도 근사한 공포영화들이 많았고 새시대의 새로운 기술과 시선으로 해석할 작품들이 많다. 


월하의 공동묘지와 김기영의 작품들 
한국 고전 공포영화들은 ‘여인의 한’을 주제로 다룰 때가 많았다.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두 작품이 <여곡성>과 <월하의 공동묘지>다. 그 중 <여곡성>은 한국식 가부장 호러의 끝을 보여준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의 서영희 주연으로 리메이크가 진행중이다. 
 
<월하의 공동묘지>는 역시 숨막히는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 죽음을 맞고 원혼으로 돌아온 ‘월향’이 주인공이다. 무덤을 가르고 솟아오르는 월향을 현대의 CG 기술은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 또한, 집안의 식모였으나 월향의 남편을 빼앗고 자신의 욕망을 착착 실행해가는 여인 ‘난주’는 현대적인 시각으로 다시 들여다보면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캐릭터다. 

<하녀>

같은 맥락으로 인간의 모든 욕망을 내놓고 맘껏 휘두른, 한국 영화사 최고의 변태 김기영의 작품들도 <하녀>의 리메이크로 멈춰서는 안된다. <하녀>, <육식동물>, <수녀>, <화녀>,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등에는 자신의 욕망에 온몸을 던진 매력적인 악녀들이 펄떡펄떡 살아숨쉰다. 이 기이한 여인들이 남자가 없는 섬 <이어도>에서 어벤져스처럼 만난다면? 젠더 담론이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요즘, 가장 격렬한 프랜차이즈가 탄생할지도. 


<여고괴담>
여고괴담

감독 박기형

출연 이미연, 박용수, 김규리, 최강희

개봉 1998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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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 
다리오 아르젠토의 명작 <서스페리아>는 다코다 존슨, 클레이 모레츠, 미아 고스 주연으로 <콜 미 바이 유어네임>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리메이크하고 있다. 청춘의 찬란한 한페이지를 그렸던 감독이 청춘의 가장 음울한 욕망을 들여다본달까. 거기에 영화음악은 무려, 라디오 헤드의 톰 요크가 맡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고 호러는 역시 <여고괴담>에서 시작되었다. 보통의 호러 프랜차이즈가 그렇듯이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원작의 신선함을 잃어갔지만,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같은 ‘별물’을 내놓았고,이후 한국 공포영화 붐을 주도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언제나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 공포영화인데, <여고괴담>이 보여준 공포요소는 지금도 어느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청소년 5명중 1명이 자살충동을 느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다. 단순히 ‘성장통’이라고 얼버무리기 힘든 그들의 공포를 한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알포인트>
알 포인트

감독 공수창

출연 감우성, 손병호, 박원상, 오태경

개봉 2004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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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포인트
전쟁터는 언제나 무서운 곳이다. 단순히 사람이 죽어나가서가 아니고, 인간의 이성으로 쌓아올린 체제가 가장 야만적인 행위로 충돌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의를 등에 업은 인간의 잔혹함은 도덕률을 간단하게 뛰어넘는다. 그리고 베트남전에서 저지른 한국군의 만행은 우리가 애써 모른척 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부대원들이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는 클라이막스의 시퀀스, 대낮의 풀밭에서 부대원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고립되는 장면들은 그 부분만 똑 떼어서 VR 콘텐츠로 개발해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다. 


<거울 속으로>
거울 속으로

감독 김성호

출연 유지태, 김명민, 김혜나

개봉 2003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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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으로’,‘4인용 식탁’,‘장화, 홍련’
한국 공포영화사에서 2003년은 놀라운 해였다. 독특한 컨셉의 호러명작 <장화, 홍련>, <거울 속으로>, <4인용 식탁>이 쏟아진 해이기 때문이다. 
 
<거울 속으로>는 백화점의 거울 앞에서 벌어진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에 대한 영화다. 거울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그 안의 나를 닮은 미지의 인간이 살고 있다는 독특한 설정이었다. 또한,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묘한 폐소공포증을 효과적으로 담아냈다. 이 작품은 이미 할리우드에서 키퍼 서덜랜드 주연의 [미러]로 리메이크 되었다. 그러나 원작이 정갈하게 뽑아낸 공포와는 달리, 하드고어한 표현에 집착하며 전혀 다른 분위기로 만들어졌다. 

<거울 속으로>의 제작진은 거울이 많이 등장하는 현장에서 카메라를 숨기는데 애를 먹었다. 그러나 그사이 장비가 많이 경량화 되었고 CG 기술 역시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무엇보다 <인터스텔라>나 마블 코믹스의 영향으로 ‘평행우주’에 대한 관객의 이해가 넓어졌다. 

<4인용 식탁>
4인용 식탁

감독 이수연

출연 박신양, 전지현, 유선

개봉 2003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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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용 식탁>은 귀신을 보는 사람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식스센스>를 따라했다는 정도로만 설명되기엔 아까운 영화다. 이수연 감독은 어린 아이들이 여지없이 죽어나가는 이 작품에서 불문율로 여겼던 가족애 자체를 쥐고 흔들었다. 1인가구 500만 시대. 쇼핑몰에 진열된 ‘4인용 식탁’이 허구로 보이는  요즘, 감독은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을 것이다. 

<장화, 홍련>
장화, 홍련

감독 김지운

출연 임수정, 염정아, 김갑수, 문근영

개봉 2003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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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장화, 홍련>의 수미(임수정)가 그대로 나이를 먹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히 환상속에서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새엄마와 자신이 죽음으로 몰고 간 동생 수연(문근영)을 보고 있을까? 그런데 수미가 요양하러 내려간 집에서 본 귀신들은 단지 그녀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 해리성 장애를 어느 정도 극복한 수미가 그 집에 다시 돌아오면서 시작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귀신 들린 집에 대한 영화 <컨저링>과 해리성 장애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23 아이덴티티>를 한 화면에서 보는 느낌이겠다. 


씨네플레이 객원 에디터 안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