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를 달리는 여성 영화인’ 메가토크 현장

여성 영화인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7월 15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밋지 페어원 감독, 쇼나 맥도날드 배우, 변영주 감독이 참석한 ‘장르를 달리는 여성 영화인’ 메가토크가 열렸다. 박혜은 영화평론가가 진행을 맡았다.

밋지 페어원_배우 겸 감독으로 활동 중이며 장편 데뷔작 <세 친구>가 부천영화제의 ‘월드 판타스틱 레드’ 섹션에 초청 받았다.
쇼나 맥도널드_<디센트>(2005)의 사라 역으로 전 세계 호러 팬들을 사로잡았다. ‘월드 판타스틱 블루’ 섹션에 초청된 <백색밀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변영주 감독_<발레교습소>, <화차>를 연출했다. 2015년 위안부 협상 합의의 불평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과거 제작한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3부작이 다시 주목받았다. 부천영화제 장편 부문 심사위원을 맡았다.

(왼쪽부터) 밋지 페어원 감독, 쇼나 맥도날드 배우, 변영주 감독.

본격적인 이야기 전, 한국에 처음 방문한 밋지 페어원 감독과 쇼나 맥도날드가 소감을 밝혔다. 페어원은 “어제 첫 상영을 했는데, 많은 관객분들이 상징과 스토리 등을 다 이해하신 것 같고, 성공적인 GV를 한 것 같아 기뻤다”고 말했고, 맥도날드는 “<디센트>가 성공적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 온 감회가 새롭다”고 밝혔다.

박혜은 영화평론가/ 밋지 감독은 <세 친구>를 구상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런 장르적인 형식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밋지 페어원 감독/ <세 친구>는 마약을 팔던 두 여성이 경찰의 추격에서 벗어나고자 정신 착란을 겪는 옛 친구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이상한 역할 놀이가 벌어지는 저택에 현실을 많이 반영하려고 했다. 지리적인 것, 심리적인 것,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을 아직도 믿으면서 우리는 소꿉장난을 하고 있을 게 아닌가,라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구상했다. 판타지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어두운 면을 그리기 위해 호러라는 장르를 취했다. <세 친구>는 의도적으로 남자를 완벽하게 배제한 영화다. 많은 영화들에서 여성 캐릭터는 누군가의 여자친구, 딸, 엄마로 표현된다. 독자적인 인물로 존재하게 하려고 남성 캐릭터를 최대한 배제했다.

<디센트>

박혜은 영화평론가/ <디센트>는 여성 캐릭터를 호러에서 이렇게 써먹을 수 있구나 보여준 영화다. 신작 <백색밀실>도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이다. 장르 영화의 여성 캐릭터에 대해 본인이 가진 기준이 있나? 어떤 원칙을 가지고 영화를 선택하는가?
쇼나 맥도널드/ <디센트>는 제 첫 장르 영화였다. 원래 호러물도 잘 보지 않는 사람이다. 당시 <디센트>를 호러, 장르가 아니라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그렇게 지시해줬다. <디센트> 성공으로 호러물 제의를 많이 받았다. 당시에는 6명의 여성들이 나오는 호러 영화라는 게 무척 충격적이었다. 개봉 당시엔 남성잡지에서 노출을 앞세워 영화 홍보하는 게 효과적이었다. 우리 주연진 모두가 싫다고 거부했다. 여성이란 성으로 홍보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도 그 기준을 지키고 있다. 만일 여성 캐릭터가 어떤 사고를 당했을 때 그 사건이 영화의 다른 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런 역할은 안 하는 편이다.

박혜은 영화평론가/ 한국에서 장르 영화 카테고리 자체가 편협해지고 있다. 특히 여성 서사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변영주 감독은 전작 <화차>로 장르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자장을 보여줬었다.
변영주 감독/ 한국 영화 산업 구조가 바뀌고 있는 시즌이다. 그동안 이른바 착취형 구조였다면 제대로 된 산업구조를 건설하는 단계다. 주 52시간 노동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제작비는 올라가고, 제작사들은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에 볼거리로 눈을 돌리고, 그게 배우들의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액션 영화에 집중된 것이다, 시선을 돌려서 독립영화를 생각해보자. 사실 제가 올해 봤던 가장 좋은 배우도 다 독립 장편에 나왔다. 질문하신 문제점에 동의하면서도 관객분들에게 감히 묻고 싶다. ‘너무 게으르신 건 아닌가?’ 멀티플렉스를 벗어나면 “이런 영환 한국에 없다”고 하는 이런 영화들이 많다. 영화를 찾아보는 수고로움이 관객분들에게도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세 친구>

박혜은 영화평론가/ 여성 영화인이 영화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말해보자. 활동하면서 느낀 시스템적 장벽이 있다면?

밋지 페어원/ <세 친구>가 첫 장편이라 ‘미투 운동’ 전의 영화계를 자세히 알진 못한다. 다만 좀 더 많은 여성 평론가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남성 평론가는 영화가 그리는 대상에 따라 시각이 다른 편인데, 여성 평론가는 평등하게 보는 거 같다.

변영주 감독/ 임순례 감독과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가 (여성 권익을 강조한) 선배가 없던 세대라면, 우리 둘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여성 영화인에게 시조새 같은 존재가 되겠구나 싶었다(웃음).  한국 영화 산업 현장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촬영 전 성폭력 방지 교육도 받고,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보장되는 형태로 가고 있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오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많이 오셔야 좋은 여성 영화인들 이 많이 생길 거라 믿고 있다.


밋지 페어원 감독, 쇼나 맥도날드 배우, 변영주 감독

박혜은 영화평론가/ 전 세계적인 미투 운동이 여성 영화인들의 활동에 많은 걸 변화시켰다. 

밋지 페어원/ 연기 생활을 2년 정도 했었다. 대부분의 감독, 제작자가 남자다. 저녁 회식 오라고 하거나 호텔로 와서 촬영본을 확인하라는 권유도 받아봤다. 이게 제가 다른 배우들을 존중하는 이유다. 제가 여성 감독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연기하기 편했다고도 하더라. 다만 이런 부분이 제가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미투 캠페인은 권력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남성중에도 분명 피해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쇼나 맥도널드/ 하비가 성폭력 중독자인 걸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케빈 스페이시에 관한 루머도 오래됐는데, 문제를 해소하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그게 의문점이다. 권력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했는데, 그런 면에선 힘 있는 여성 영화인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변영주 감독/ 세계는 하나인 거 같다. 상황이 다 똑같다. 이전에는 한쪽은 편해하고, 한쪽만 엄청나게 불편한 상황이었는데 모두가 조금씩 불편한 걸로 바뀐 게 기분 좋은 변화다. 영화 촬영 전에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영화를 만드는 건 전기가 많이 드는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지구에 많은 죄를 지고 있으니 영화를 만들 때 죄를 더 짓지 말자고. 한 사람의 고통보다 더 중요한 예술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천부적인 권리를 침해할 수 있을 만큼 위대한 일은 없다. 적어도 창작의 현장에서 여성들이 겁내지 않게 된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 친구

감독 밋지 페어원

출연

개봉 201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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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트

감독 닐 마샬

출연 슈어나 맥도널드, 나탈리 잭슨 멘도자, 알렉스 레이드, 사스키아 멀더, 노라 제인 눈, 미안나 버링, 올리버 밀번

개봉 2005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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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감독 변영주

출연 나눔의 집 할머니, 이용수

개봉 199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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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