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로빈 윌리엄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2년이 지났다. 아직도 그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누구에게나 로빈 윌리엄스를 떠올릴 영화가 있기 때문이다. 짐니 에디터는 <쥬만지>에서 “쥬만지!!”를 외치던 로빈 윌리엄스를, 코헤토 에디터는 <굿 윌 헌팅>에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던 로빈 윌리엄스를 기억한다. 문부장 에디터는 <인썸니아>의 차가운 표정을 짓던 로빈 윌리엄스를 떠올렸다. 로빈 윌리엄스 사망 2주기를 맞아 그가 연기했던 대표적인 세 가지 유형의 얼굴을 돌아봤다. 또 그의 주요 필모그래피를 정리했다. <씨네21>이 그의 죽음에 부쳐 쓴 짧은 글도 덧붙였다. 영화를 두고 떠난 그를 기리며.


<스토커>
<인썸니아>

악당의 얼굴
악인 로빈 윌리엄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기억 속의 로빈 윌리엄스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웃음기가 사라진 로빈 윌리엄스의 얼굴을 상상하기는 힘든 일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놀란 감독은 <인썸니아>(2002)에서 로빈 윌리엄스를 살인용의자 월터 핀치 역에 기용했을 것이다. 그간의 이미지를 역전시키는 전략이다. 마크 로마넥 감독의 <스토커>(2002)는 로빈 윌리엄스가 아니면 불가능한 스릴러 영화였다. 로빈 윌리엄스는 선한 얼굴을 한 쇼핑몰 내 사진현상소 직원을 연기했다. 그 얼굴의 이면에는 섬뜩함이 도사리고 있다. 아니다. 섬뜩한 얼굴의 이면에 순수함과 연민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로빈 윌리엄스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연기였다. <스무치 죽이기>(2002)까지 본다면 로빈 윌리엄스 3대 악역을 다 섭렵할 수 있다.


<굿모닝 베트남>
<미세스 다웃파이어>
<후크>
<쥬만지>

장난꾸러기의 얼굴
익숙한 얼굴이다. 로빈 윌리엄스의 웃는 얼굴. 로빈 윌리엄스를 떠올리면 바로 연상되는 개구쟁이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 그는 천생 코미디언이었다. 그는 쉴 새 없이 떠들면서 주변 사람들을 웃겼다고 한다.  <굿모닝 베트남>(1987)에서 로빈 윌리엄스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사이공의 공군 라디오 DJ 애드리언 크로나워를 연기했다. 마이크 앞에서 “굿~~모오오오닝~ 베트남!”이라고 외치던 그 해맑은 얼굴을 잊기는 힘들다. 물론 그 미소에는 쌉싸름한 맛이 남아 있긴 하다. 
1990년대 로빈 윌리엄스는 <후크>(1991), <미세스 다웃파이어>(1993), <쥬만지>(1996), <잭>(1996) 등에 잇따라 출연했다. 피터 팬이었던 기억을 잊고 어른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여장을 하기도 하고, 게임판에 갖혀 잃어버린 세월을 찾아나서고, 마흔살의 외모를 한 10살을 연기했다. 모두 가족 코미디의 범주에 속할 수 있는 영화다. 우리는 이 시기의 로빈 윌리엄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은 시인의 사회>
<굿 윌 헌팅>

선한 선생님의 얼굴
로빈 윌리엄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많은 사람들이 <죽은 시인의 사회>(1989)를 떠올렸을 것이다.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은 곧 ‘캡틴, 오 마이 캡틴’의 죽음이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그의 2주기를 맞아 8월18일 재개봉한다. 재개봉하는 영화가 또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 못지 않게 선하고 훌륭한 선생님으로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굿 윌 헌팅>(1997)이다. 로빈 윌리엄스는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천재 윌(맷 데이먼)를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심리학 교수 숀을 연기했다. <굿 윌 헌팅>은 그의 유일한 오스카 트로피(남우조연상)를 남겨줬다. 8월17일 재개봉한다. 선생님은 아니지만 현명하고 인자한 조언자로서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에서 테디 루즈벨트를 연기한 로빈 윌리엄스 역시 기억에 남는다.


알고 있다. 여기 포함되지 않은 수없이 많은 로빈 윌리엄스의 얼굴, 수없이 많은 영화가 있다는 것을. 그를 추모하는 글에서 언급되지 않은 영화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그를 추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우리에게 남긴 수없이 많은 얼굴, 수없이 많은 영화를 다시 찾아보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이 각자의 추모를 위한 작은 출발이 되었으면 바람이다. 아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길 바란다.

로빈 윌리엄스를 기억하는 우리의 마음 같은 장면.

주요 필모그래피
2014 <더 앵그리스트 맨 인 브루클린> <블러바드>
2013 <페이스 오브 러브> <빅 웨딩>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2009 <박물관이 살아있다2> <지상 최고의 아빠> <슈링크>
2007 <어거스트 러쉬>
2006 <박물관이 살아있다!> <나이트 리스너>
2005 <빅 화이트> <로봇>
2004 <스위트 크리스마스> <하우스 오브 디> <파이널 컷>
2002 <인썸니아> <스무치 죽이기> <스토커>
2001 <A.I.>
1999 <바이센테니얼 맨> <제이콥의 거짓말>
1998 <패치 아담스> <천국보다 아름다운>
1997 <굿 윌 헌팅>
1996 <잭>
1995 <쥬만지>
1993 <로빈 윌리엄스의 인생 이야기> <미세스 다웃파이어>
1992 <알라딘>
1991 <후크> <피셔 킹>
1990 <사랑의 기적>
1989 <바론의 대모험> <죽은 시인의 사회>
1987 <굿모닝 베트남>
1986 <지상의 낙원>
1982 <가프>
1980 <뽀빠이>
1977 <캔 아이 두 잇 틸 아이 니드 글래시스>


로빈 윌리엄스가 소중하게 여겼던 몇 가지
*아래 글은 씨네21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게임 로빈 윌리엄스의 딸 이름은 젤다이다. 게임 <젤다의 전설>의 그 젤다. 그래서 둘이 함께 <젤다의 전설> 닌텐도 버전 광고도 찍었다. 비디오게임에서 시작해 온라인 게임까지 섭렵한 윌리엄스는 “게임이란 마약 딜러와 말 섞을 필요가 없는 코카인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게임은 코카인과 똑같이 신나는 동시에 점점 중독이 심해져 집착과 망상에 이르는 것이었다.

외계인 윌리엄스는 <바이센테니얼 맨>의 원작자이기도 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팬이어서 그의 대작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영화화된다면 꼭 출연하고 싶어 했다. “인공지능과 인간 행동, 나는 언제나 그 두 가지에 매료되어왔다.” 외계인 모크 역으로 출세한 그는 우피 골드버그가 부추겨서 <스타트렉> 시리즈에 출연하려고도 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포기한 적도 두번 있다.

자전거 긴장감 없는 체형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윌리엄스는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다. 50대가 넘는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으며, 100km가 넘는 코스도 거뜬히 완주했다. 전설적인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과 친해 경기에서 함께 달리기도 했다. “난 포주처럼 차려입고 골프 코스로 나가는 일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사는 땅은 정말 아름답고, 그곳에서 40마일을 달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코스 끝에서 나는 대양과 마주할 수 있다. 다시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수도 있고.”

아이들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그는 로빈 윌리엄스여서 가장 좋은 점은 자기 아이들의 아버지인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에게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란 (친구 존 트래볼타가 겪었듯이)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이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프로듀서 스티븐 해프트는 자기 집에 초대한 윌리엄스에게 난산이었던 첫아이의 출생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아이의 체온이 떨어지던 위태로운 순간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몇분 뒤에 방에 가보니 로빈은 아기 요람 옆에 앉아 내 아들의 등에 손을 얹고는 엉엉 울고 있었다.”

무대 스타가 된 다음에도 윌리엄스는 무대에서 공연하는 걸 좋아했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고, 옛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곳이었다. 그의 친구 빌리 크리스털은 엄청나게 머리를 굴리는 스탠드업 쇼가 윌리엄스에게 치유제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지난 몇년의 세월과 고통에도 그가 침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오직 그의 두뇌 덕분이었다.” 윌리엄스의 매니저였던 데이비드 스타인버그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무대는 그의 인생에서 누구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유일한 장소였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