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마이 리틀 자이언트>를 보고 왔습니다. 제목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지만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로알드 달이라는 작가가 쓴 아동용 소설이 원작이고요. (국내에는 <내 친구 꼬마 거인>이란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올해가 로알드 달 작가 탄생 100주년이라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간 되기도 했네요.)
그런데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른 (뜬금 나밍아웃...) 에디터가 왜 이 영화를 보고 싶었냐고요? 그건 '꼬마와 거인 이야기'가 아니라 '스필버그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스필버그 X 디즈니
콜라보
이 영화가 궁금했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감독의 이름 때문이었죠.
요즘 젊은 관객들은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라면 어떤 영화를 먼저 떠올릴지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스파이 브릿지>, <링컨>, <뮌헨>,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블록버스터 역사극을 먼저 떠올릴 관객들도 있을 테고,
또 어떤 이들은 <틴틴의 모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같은 모험 영화를, 누군가는 <워호스>, <터미널>, <A.I.> 같은 영화를 떠올릴 수도 있겠죠.
이름만 들어도 건강을 염려하게 되는 할아버지 나이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데다가, 고전적인 색채가 강한 드라마와 볼거리 가득한 블록버스터를 마음껏 오고 가며 상상력의 발자취를 넓혀나가는 스필버그 감독의 열정이 신기하지요? (대체 뭘 먹고 사시기에...)
이번 영화는 그런 몇 갈래의 '스필버그식 영화'들의 장르와 소재를 모아서 한꺼번에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스필버그 감독이 처음으로 디즈니와 손을 잡고 동화 같은 스토리를 진지하게 구현했거든요. 그렇다고 디즈니의 세계관에 영향받은 영화는 아니에요.
그보다는 고전적인 드라마에 주목하는, 그리고 로알드 달이란 원작자와 스필버그 감독의 작가정신이 더 강하게 투영된 어른의 동화여서 디즈니 세계가 더욱 확장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로알드 달과의 만남,
어른의 동화
이번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로알드 달은 영국 출신 소설가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원작을 썼죠. 그리고 <판타스틱 Mr. 폭스>도 그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죠.
그의 소설은 일단 첫 번째로 놀라운 상상력이 매력입니다. 마치 천일야화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아이들을 위한 동화적인 이야기인데 읽어보면 어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현실 풍자 이야기도 많습니다. 이번 영화 역시 그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장 돋보이는 건 독특한 설정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옆에는 거인들이 사는 세계가 따로 있고, 그곳은 사람도 거인도 오고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그곳을 건너간 경우는 거의 없고 거인들만 현실로 가끔 넘어오는데 인간에게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밤에만 활보합니다. 그리고 거인들 중에는 인간을 잡아먹는 종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인들이 사는 세상에서 적응 잘 못하고 무시당하는 착한 거인 하나가 고아원에 사는 소피라는 꼬마와 마주치게 됩니다. 거인들은 인간과 눈을 마주치면 잡아먹는 등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조치를 취하는 게 불문율인데 이 거인은 착해서 소피를 살려줍니다.
오히려 거인들이 사는 세상에 데리고 와서 자신이 밤마다 몰래 하던 아이들의 꿈 찾아주기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되지요. 이렇게만 들으면 정말 소소한 동화처럼 들리겠죠? 사실 특별할 것이 없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의 포인트는 로알드 달과 스필버그 감독의 상상력을 비주얼로 구현시키는 영화적 마술에 있습니다. (특히 소피와 거인이 꿈을 모아두는 나무 근처에서 노니는 장면은 너무 멋집니다. <인셉션>의 동화 버전쯤?)
스필버그의 영화적 마술
이미 스필버그 감독은 다양한 과학기술을 영화에 적용해 상상력을 실재로 구현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애니메트로닉스로 구현한 <E.T.>부터 CG의 혁명과도 같았던 <쥬라기 공원>은 물론, 최근에는 3D로 구현한 <틴틴의 모험> 등 그는 언제나 영화적인 장면을 위해서 신기술을 이용해왔습니다.
이번 영화 역시 마찬가지죠. <틴틴의 모험> 때도 효과적으로 쓰였던 퍼포먼스 캡처 기술 등을 이용해서 아주 멋진 슬랩스틱 액션을 구현해냅니다. (특히 밤에 거인이 인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취하는 묘기 같은 동작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어른들의 고민,
함께 살 수 있을까
꿈을 꾸며 사는 아이들의 세계는 팍팍한 어른들의 세계와 어울리기 어려워 보입니다. 먹는 것도 사는 방식도 다른 거인과 인간의 공존은 사실 더더욱 어려워 보이죠.
쉽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꿈을 무시하면 되고요. 거인들은 그냥 인간을 잡아먹으면서 누리면 됩니다.
그런데 이 착한 거인은, 그러니까 거인 세상에서도 거의 왕따처럼 홀로 살아가는 이 거인은 세상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의 꿈을 꼼꼼하게 수집한 다음에 밤마다 아이들에게 그 꿈을 딱 맞게 불어 넣어주는 (취향 저격자) 전달자 역할을 해내며 삽니다.
맛없는 음식만 먹으면서도 나쁜 마음을 갖지 않고요. 그리고 드디어 이 거인은 그런 삶을 인정하고 전해줄 수 있는 소녀를 만나게 되지요.
이 거인의 삶을 통해서 관객들은 로알드 달이란 작가와 스필버그 감독의 일생을 어렵지 않게 비추어 볼 수 있을 겁니다. 평생 꿈을 먹고사는 감독으로서 누군가에게 꿈을 불어 넣어줘야 하는 직업이니까요.
스필버그 감독은 로알드 달의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바로 그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봤을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라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거인들의 나라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이 우리에게 갖춰진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겁니다.
아무튼 꿈을 좇으며 살지만 우리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으며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라고나 할까요. 여기엔 우리가 몰랐던 세계의 폭력이나 어른들이 생각하는 국가관 등도 엿볼 수 있습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