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올림픽이 한창이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아이스하키 국가 대표팀 창단 과정을 모티브로 한 <국가대표2>도 개봉했다. 스포츠영화는 대체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스포츠는 늘 ‘각본 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 ‘비인기 종목의 설움’ 같은 뒷이야기가 붙으면 상업영화로서 손색이 없다. 스키 점프 대표팀을 다룬 <국가대표> 역시 그랬다. 그래서 씨네플레이는 영화화될 만한 스포츠 영웅들을 찾아봤다. (영화 제작사와 감독님들, 주목해주세요.)
국내편
2016 리우 올림픽 펜싱 에페: 박상영
가장 최근의 금메달 순간도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리우 올림픽 펜싱 에페에서 22살의 박상영 선수가 금메달을 따냈다. 세계 랭킹 21위의 반란이었다. 박상영 선수는 2015년초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으로 1년을 보내고 2016년부터 다시 훈련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봤겠지만 “할 수 있다”라고 되뇌이는 장면이다. 결승에서 만난 헝가리의 42세 베테랑 펜서 임레 게자 역시 영화적으로 훌륭한 상대역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번에 본인이 가지고 있던 헝가리 최고령 메달리스트 기록을 갈아치웠다.
#에디터 추천 장르 → 아직 어린 선수니까 청소년 시절부터 올림픽까지의 여정을 담은 성장영화.
2016 리우 올림픽 사격: 진종오
올림픽 사격 최초이자 유일한 단일종목 3연패 선수 진종오 선수를 빼놓을 수도 없을 것 같다. 왼속은 주머니에 넣은 채 권총을 든 진종오 선수를 보고 에디터는 ‘저게 무슨 운동인가’ 싶은 어리석은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50미터 떨어진 작은 점 같은 표적지를 보는 순간, ‘이건 거의 초인이구나’ 싶었다. 게다가 그는 6.6점을 쏘고 거의 패색이 짙었으나 극적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진종오 선수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보유했기에 영화로서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진종오 선수 역시 부상이 있었다. 고교 시절과 대학 시절 쇄골 부상을 당했다. 총을 들고 있기 힘든 상황이었다. 진종오 선수와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로는 이런 게 있다. 어린 시절부터 총을 좋아해서 어머니 지갑을 손을 대고 장난감 총을 구매한 적이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자신만의 총이 있다. 이름은 ‘진종오, 총번 1번’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전 <두시탈출 컬투쇼>에 방청객으로 참여한 적도 있다. “자신이 국가대표 사격선수인데 이번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까지 따내자 게스트로 다시 라디오에 출연했다.
#에디터 맘대로 써본 시놉시스 → 왕년의 사격 영웅 진종오가 피치못할 사정으로 청부살인자가 된다면?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빅토르 안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 국적의 빅토르 안을 안현수로 기억하고 있다. 누군가는 매국노로 비난하기도 한다. 한국 국적을 버리고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파벌 문제와 빙상연맹의 문제점은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야 할 거다. 빅토르 안 선수 그 자체로도 영화의 인물이 될 수 있다. 쇼트트랙의 영웅이었으나 소속팀이 해체되고 운동을 할 수 없게 된 사연은 그나마 올림픽 효자 종목 쇼트트랙도 결국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는 사실 더 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미터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최민경 선수는 2003년 프랑스 여행을 갔다가 프랑스 빙상연맹에서 뜻밖의 귀화 제의를 받았다. 솔트레이크 대회에서 개인전에 출전하지 못한 그녀는 토리노 대회에서 개인전 출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에디터 추천 악역 배우 → 파벌과 연맹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악역으로 김의성 배우 추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스켈레톤: 윤성빈
동계 올림픽 선수들은 <국가대표>와 <국가대표2>를 봐서 알겠지만 늘 비인기 종목의 설움에 시달린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훈련을 거듭하는 동계 올림픽 선수 가운데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주목할 만한 선수가 있다. 스켈레톤 종목의 윤성빈 선수다. 그는 2015~2016 스켈레톤 7차 월드컵 금메달리스트다. 스켈레톤 종목에서의 국내 첫 금메달이다. 윤성빈 선수는 고3 때까지 평범한 체대입시생이었으나 스켈레톤에 입문하면서 불과 석달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평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이후 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할 듯하다. 봅슬레이팀도 물론 같이 출연하면 좋겠다.
#에디터 추천 제목 → <국가대표3>.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요트: 하지민
비인기 종목의 설움은 계속 된다. 설움을 극복하고 승리해야 감동이 더 세기 때문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한 요트 국가대표 하지민 선수는 금메달을 당당히 목에 걸었다. 그러나 그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애국가를 듣는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왜냐면 기자들이 단 한명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하지민 선수는 자신의 금메달을 디시인사이드 자랑갤러리에 올렸다. 삽시간에 그의 글은 ‘성지’가 됐다. 하지민 선수는 리우 올림픽에도 출전한다. 이제는 네이버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많은 기사를 볼 수 있다. 영화화 하기에 조금 약해 보일 수도 있지만 요트는 해양 스포츠라 나름의 스펙터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좀더 무리수를 둔다면 비가 쏟아지는 폭풍을 뚫고 훈련을 한다든지.
#에디터 추천 장르 → 해양 어드벤처! 상어가 등장하면 금상첨화. 요트 선수가 조난까지 당한다면 속편도 기대해볼 수 있음.
해외편
2000 시드니 올림픽 수영: 에릭 무삼바니
이 선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걸로 믿는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자유형 100미터에 출전한 에릭 무삼바니 선수다. 적도 기니라는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서 시드니까지 날아간 그는 특별 초청 선수였다. 대회 전까지 그는 100미터를 제대로 수영해본 적도 없었다. 50미터 풀에서 훈련도 하지 못했다. 적도 기니에는 50미터 풀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코치도 없었고 스스로 훈련을 했다. 무삼바니를 비롯한 3명이 예선 경기에 출전했는데 2명이 부정 출발로 실격 처리됐다. 1만 5천명의 관중 앞에서 무삼바니는 홀로 100미터를 완주했다. 선수용 수영복도 입지 못했던 그는 올림픽 출전 선수의 수영이라고 보기 힘든 경기를 선보였다. 비웃음거리가 되지는 않았다. 그는 올림픽 정신의 아이콘이 됐다.
#에디터 추천 참조영화 → 자메이카 봅슬레이 선수의 동계 올림픽 출전을 다룬 영화 <쿨러닝>.
2016 리우 올림픽 기계 체조: 옥사나 추소비티나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우즈베키스탄의 옥사나는 최고령 기계체조 선수다. 그녀는 41살이다. 이번이 무려 7번째 올림픽 출전이기도 하다. 이것만으로도 눈길을 끌지만 사실 옥사나는 국적을 세 번 바꾼 걸로 더 유명하다. <서프라이즈>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소련 국적이었던 그녀는 소련 봉괴 이후 조국 우즈베키스탄 대표가 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독일이 귀화를 제안한다. 백혈병을 앓고 있던 아들의 치료비 전액을 지원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녀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다. 베이징에서는 도마 종목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아들이 완쾌한 후 옥사나는 다시 조국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가 됐다.
#에디터 추천 장르 → 눈물 쏙 빼는 신파 드라마
1976 몬트리올 올림픽 기계체조: 나디아 코마네치
올림픽 체조 부문 최초로 10점 만점을 받은 나디아 코마네치에 관한 영화는 사실 이미 만들어졌다. 1984년에 개봉한 <나디아>라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대신 스포츠 브랜드가 만든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광고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까. 혹시나 다시 영화를 만든다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경기를 선보인 나디아 코마네치의 선수 은퇴 이후를 담아도 좋을 듯하다. 1989년, 그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지금은 체조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자선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디터 추천 주연 배우 → 엠마 왓슨. 나디아 코마네치 선수 어린 시절과 닮은 듯.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농구: 미국 대표팀
드림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한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스카티 피펜, 찰스 바클리, 래리 버드, 칼 말론,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 존 스탁턴, 클라이드 드렉슬러, 크리스 멀린 등으로 구성된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을 말한다. 드림팀은 극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로 보고 싶다. 왜냐면 마이클 조던을 대체해서 연기하는 배우가 상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드림팀에 관한 여러 다큐멘터리가 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제대로 근사하게 제작된 다큐멘터리를 보면 좋겠다. 농구대잔치와 <마지막 승부>에 푹 파져 살았던 아재들은 무조건 영화티켓을 구입할 것이다.
#에디터 추천 감독: <머니볼> <폭스캐처> 등 실화 배경의 수작 스포츠 영화를 만든 베넷 밀러 감독.
2008년 스웨덴 예테보리 하프마라톤: 미카엘 에크발
그는 멈추지 않았다. 19살의 마라토너 마키엘은 4만명이 참가한 세계 최고 하프마라톤 대회에서서 똥을 싸고 말았다. 수만명의 관중이 그 모습을 보고 말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1시간9분43초의 기록으로 21위를 기록하며 레이스를 마쳤다. “대체 왜 레이스를 관두고 씻으러 가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시간 낭비니까요.” (▶참고기사 보기) 이 진지한 대답 이후 미카엘은 꾸준히 성적을 냈고 스웨덴 국가대표가 됐다. 그는 전세계의 놀림감이었으나 개의치 않고 오로지 달렸다. 만약 미카엘이 주인공인 영화가 나온다면 결코 코미디 영화가 아닐 것이다.
#에디터 추천 장르 → 고뇌에 찬 표정과 달리기에 대한 열망을 제대로 포착하는 진지한 심리 드라마 영화.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