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강변 호텔>
제71회 로카르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한 기주봉.

지난 11일 막을 내린 제71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한국 배우 기주봉이 남우주연상의 쾌거를 이뤘다. 그는 홍상수 감독의 23번째 장편 <강변 호텔>에서 나이 든 시인 영환을 연기했다. 스위스의 명망 있는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한국인 배우가 주연상을 꿰찬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인데, 첫 번째 역시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통해 정재영 배우가 수상한 성과였다. 아직 국내에 공개되지 않은 <강변 호텔>은 강변의 호텔에서 지내고 있는 노 시인이 죽음이 다가옴을 느끼자 사이가 소원해진 두 아들을 부르고, 연인에게 배신을 당한 어떤 여성 일행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기주봉의 해외 영화제 수상은 배우 경력 40년 만에 처음으로, 현지 심사위원은 “<강변 호텔>에서 그는 감정, 몸짓, 눈짓 등을 통해 자신의 언어를 전달했다는 평을 전했다.

<강변 호텔> 기주봉
강변 호텔

감독 홍상수

출연 기주봉, 김민희

개봉 2018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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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의 조연, 첫 주연
<풀잎들> 기주봉(오른쪽)

사실 기주봉은 홍상수 감독 영화의 단골 출연 배우였다. 2007 <밤과 낮>에서 장 선생캐릭터를 시작으로, <하하하>(2009), <북촌방향>(2011),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 <자유의 언덕>(2014),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그 후>(2017), <풀잎들>(2017)에서 조연으로 활약했다. <강변 호텔>로 첫 주연을 꿰차기까지 총 아홉 작품을 함께 했으니 홍상수의 영화 세계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배우임이 틀림없다. 데뷔 이래 120편이 넘는 작품을 남긴 그는 이장호, 장선우, 이명세, 김지운, 류승완, 박찬욱, 장준환 등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감독들의 작품에서도 조연으로 존재감을 빛내왔다.

<주먹이 운다> 기주봉(왼쪽)
풀잎들

감독 홍상수

출연 김민희, 정진영

개봉 2017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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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운다

감독 류승완

출연 최민식, 류승범

개봉 200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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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뼈 굵은 연극인, 기주봉

튀지 않고 자연스러운 기주봉의 연기 스타일은 거장들의 러브콜을 불러오기에 적격이었다. 넓은 스펙트럼을 자유롭게 오가던 그의 연기는 오랜 세월 연극으로 다져진 내공 덕택이다. 중학교 때 우연히 영화배우 남궁원을 마주친 것이 인연이 되어 연기에 들어선 그는 어느새 41년 차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배우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연극인이었으나 무대 위의 바통을 이어받은 기주봉은 그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상범으로 몰려 고문을 당하다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면에 깊이 자리한 아버지의 존재는 그를 고난에서 지탱시키는 힘이 되었다.

기주봉, 기국서 형제 / <관객모독> 기주봉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기주봉은 그의 형 기국서가 합류한 극단 칠육(76)에 입단해 1978년 사무엘 베케트의 <마지막 테잎>을 통해 첫 주연을 맡았다. 이후 한국 연극계 지형을 흔든 연극 <관객모독>의 주연으로 열연하며 신촌의 앙팡테리블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주목 받는다. 30년간 극단의 간판 공연으로 상연된 <관객모독>은 형 기국서의 대담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욕설은 물론 물을 퍼붓는 기행까지 서슴지 않았던 대표적인 실험 연극으로 남아있다.

<관객모독> 포스터

대마초 파문
<운빨로맨스> 기주봉

연기를 향한 집념으로 스크린과 무대, 무대와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해온 배우 기주봉은 20176, 마약 파문에 휩싸였다. 대마초 흡연 혐의에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그는 국과수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부인하고 나섰다. 그러나 얼마 뒤 대마초 한 차례 흡연한 사실을 자백한다. 2016MBC 인기 드라마 <운빨로맨스>에서 주연 배우 류준열의 아버지로 등장해 친근함을 선사했던 기주봉은 이 사건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겼다.

운빨로맨스

연출 김경희

출연 황정음, 류준열, 이수혁, 정상훈, 권혁수, 이청아, 이초희

방송 2016,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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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김정일이 되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 <공작>

인생지사 새옹지마. 마약 파문이 바로 지난해 불거진 이래, 놀랍게도 기주봉은 다시 겹경사를 맞았다. <강변 호텔>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데다 그가 신스틸러 역할을 뽐낸 <공작>까지 극장가를 점령 중이다. 윤종빈 감독이 만든 대북 스파이 영화 <공작>에서 그는 북한의 전 국방위원장 김정일로 변신했는데 실로 엄청난 싱크로율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정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닌 김정일 그 자체를 원했던 윤종빈 감독이 수소문 끝에 영화 <링컨>의 분장팀을 섭외해 가능한 일이었다. 감독은 분장팀에 배우 세 명의 사진을 보여줬고 그들은 기주봉을 선택했다. 김정일로 분장한 기주봉이 등장하자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진짜 같다며 술렁거렸다. 기주봉은 김정일의 카리스마를 표현하는 데 무게를 뒀는데, 진짜 김정일을 만난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배우들을 보고 성공했구나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공작

감독 윤종빈

출연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

개봉 2018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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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인턴기자 심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