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작 버튼이 웬 말. 그 버튼 차마 누르지 못하고 분노를 꾹꾹 삭혀온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다. 고구마에 사이다 얹어주는 복수테마의 영화들. 우리가 하지 못한 복수, 이 영화 속에서라면 가능하다. 그들에게 복수의 총칼을 쥐여준 각양각색의 사연 위주로 설명했다. 어떤 영화는 복수가 꼭 통쾌함만 안겨주지 않는다는 씁쓸한 사실까지도 말해주지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픽션이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이야기

타란티노가 마련해 놓은 통쾌한 나치 참살극. 복수를 하려거든 이 정도는 해야 속이 뚫린다. 1941, 유대인 사냥꾼 한스 대령(크리스토프 왈츠)이 마을의 마지막 유대인 가족을 찾아 라파디뜨 농가에 방문한다. 라파디뜨는 유대인 가족을 지하에 숨겨주고 있었다. 한스 대령은 사뭇 정중하고도 차분하게, 그의 숨통을 조여온다. 결국 가족은 몰살 당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녀 쇼산나(멜라니 로랑)가 정신없이 도망친다. 여유 있게 손까지 흔들어 보이는 한스. “다시 만나자 쇼산나!” 한편, 신분을 바꾸고 극장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쇼산나는 그날의 참상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오는데. 그녀에게 반한 나치 일병이 쇼산나의 극장에서 선전영화를 틀기로 한 것이다. 히틀러, 괴벨스 등 나치 유명인사가 한곳에 모이는 이 날을 앞두고 쇼산나는 숭고한 대테러 계획을 꾸민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관객들의 긴장감을 제대로 갖고 놀 줄 아는 감독이다. 그가 완성한 여러 편의 복수 테마 영화가 있지만 특히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숨 막히는 서스펜스는 과한(?) 몰입을 불러온다. 소름 끼치는 순간에도 눈을 뗄 수 없다. 이 영화의 가장 무서운 캐릭터, 한스 대령을 맡은 크리스토퍼 왈츠의 발군의 연기가 일품.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브래드 피트, 멜라니 로랑, 크리스토프 왈츠, 일라이 로스, 마이클 패스벤더, 다이앤 크루거, 다니엘 브륄, 틸 슈바이거

개봉 2009 미국,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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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윅
내 소중한 강아지

애완견 때문에 시작한 잔혹한 복수? 황당하게 느껴질 법한 설정이라지만 귀여운 비글의 모습과 그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전설적 킬러 존 윅(키아누 리브스)은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면서 범죄 세계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하지만 부인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 버리고, 존에게 강아지 한 마리가 배달된다. 아내가 남기고 간 선물이었다. 존 윅의 남은 삶에 소중한 두 가지가 있다면 강아지와 그가 아끼는 69년식 포드 머스탱. 그러나 이 두 가지에 손을 댄 용자가 있었는데. 머스탱을 빼앗으려 존 윅의 집에 침입한 겁도 없고 철도 없는 조직 보스의 아들. 아들 일당이 강아지를 죽이고 차량을 훔쳐 달아난 사건으로 존은 깊숙이 묻어뒀던 총을 비장하게 다시 꺼내 든다.

액션 장인 데이빗 레이치 감독의 재능과 키아누 리브스의 입지를 다시금 확인시켜준 <존 윅> 시리즈. 통쾌한 B급 액션 무비로 열광을 받았다. 단순한 서사에도 뒤돌아보지 않는 속 시원한 일갈이 매력적이다. 쓸데없이 진지한 분위기 역시 이 영화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하나의 포인트.

존 윅

감독 데이빗 레이치, 채드 스타헬스키

출연 키아누 리브스, 미카엘 니크비스트

개봉 201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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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
백선생 가만안도

금자씨의 기구한 사연을 말하려니 벅차다. 이금자(이영애)는 아동 유괴 및 살인죄로 13년의 형을 살고 출소했다. 상냥한 말투에 남을 곧잘 돕던 금자의 교도소에서의 별명은 친절한 금자씨였다. 그러나 13년간 복수를 다짐해 온 금자는 더 이상 친절한금자씨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덜컥 미혼모가 된 금자는 영어교사 백선생(최민식)의 집에 신세를 졌다. 그런데 백선생은 상습 아동유괴범이었다. 아동을 죽이기까지 한 백선생은 금자에게 거부할 수 없는 협박을 해 온다. 대신 자수하지 않으면 딸이 무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렇게 금자씨는 하루아침에 아동 살해범이 된 것이었다. 금자는 계획해 온 일을 끝내기 위해, 피해 아동의 부모들을 한 장소에 모으고 잔혹한 복수 파티를 벌인다.

박찬욱 감독이 말하는 복수는 일상의 분노를 억누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흥미로운 주제였다. <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을 완결 지은 마지막 복수극이다. 백선생은 세상에 좋은 유괴가 있고 나쁜 유괴가 있댔어.”라는 금자의 대사에서 나오는 '좋은 유괴론'은 재미있게도 첫 번째 복수극 <복수는 나의 것>에서 했던 대사를 재차 반복한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

감독 박찬욱

출연 이영애, 최민식

개봉 200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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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파이 맛의 생명은 육고기!

이발사 벤자민 바커(조니 뎁)는 아름다운 아내, 귀여운 딸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아내를 탐한 부패 판사 터빈(알란 릭맨)의 계략으로 끌려가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되는데. 시간이 흘러 벤자민은 스위니 토드라는 새 이름으로 런던에 돌아온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파이를 만들던 러빗 부인(헬레나 본햄 카터)에게서 아내에게 일어난 비극을 듣고 복수를 다짐한다. 스위니 토드는 동네 제일가는 이발사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손님을 모으고, 각각 1,2층에 자리 잡은 러빗 부인의 파이 가게와 스위니 토드의 이발소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런데 이발소가 흥한다고 맛없는 파이가 맛있어질 리는 없지 않은가. 이상하게 토드의 이발소를 방문한 손님들은 자꾸 사라지고, 파이의 판매량은 날로 늘어간다. 이쯤 되면 그 상관관계를 다들 눈치챘을 것. 토드는 면도를 하러 찾아온 터빈과 드디어 만나게 되지만 그를 죽일 기회를 아깝게 놓치고 마는데. 토드는 아내의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영국의 도시 괴담에서 연극으로, 뮤지컬로 환생을 거친 나름대로 유서가 깊은 스위니 토드 이야기. 음울한 환상의 대가 팀 버튼이 이를 뮤지컬 영화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팀 버튼의 영화 세계 속 명과 암 중, 특히 어두움에 이끌리던 관객들이라면 만족할 것이다. 아마도 그의 가장 잔혹한 동화일 테니까.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감독 팀 버튼

출연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개봉 200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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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에요

헬조선의 비극을 아낌없이 눌러 담은 수남(이정현)의 수난을 압축하기란 힘들다. 수남의 분노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삶을 통째로 서술해야 한다. 공장에 취직하느냐, 고등학교에 진학하느냐의 기로에서 후자를 택한 수남은 자격증 수십 개를 따고도 컴퓨터를 배우지 못해서 작은 공장에 취직한다. 공장에서 만난 남편은 청력을 잃어가고 수술비용으로 2천만 원을 쓰느라 내 집 마련은 미뤘다. 어느 날 남편은 수술 부작용으로 이명을 듣고 공장 프레스에 손이 깔려 버렸다. 손가락마저 잃고 기운을 잃은 남편을 위해 수남은 집을 선물하기로 하고, 신문 배달에 명함 홍보, 건물 청소, 식당 주방 일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9년째 꾸준히 돈을 모았지만 더 꾸준하게 오르는 집값 때문에 대출을 받아 겨우 집을 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남편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목숨은 건졌는데 다행은 아닌 상황. 식물인간이 돼버린 남편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진 수남은 집을 팔기로 한다. 그런데 이때, 드디어 그녀에게 내린 한줄기 빛. 수남의 집이 재개발 지역에 선정됐다는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재개발 구역에 속하지 못한 주민들의 반발로 재개발이 무산될 지경에 놓였다. 그저 앞만 보고 뚝뚝 걸어왔던 수남은 다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 나가며 잔혹한 성실함을 보여주는데. 수남을 연기한 배우 이정현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그 해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작은 독립영화에 노 개런티로 출연한 그녀의 눈물 젖은 수상소감은 작은 영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감독 안국진

출연 이정현

개봉 2014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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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심미성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