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집 앞에 태극기 다셨나요? 8월 15일, 오늘은 71주년 광복절입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날이죠. 올해 상반기에는 유독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았습니다. <동주>, <귀향>, <해어화>, <아가씨>, 지금 극장에서 상영 중인 <덕혜옹주> 등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군요.
모든 것이 변화하던 시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국가'의 '독립'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힘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꿋꿋이 지키던,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들이죠. 오늘은 우리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절,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봤습니다.
암살
독립군 어벤져스가 모였습니다. 시상식 뺨치는 멀티캐스팅으로 제작 시기부터 주목받던 영화 <암살>입니다. 1933년 조국이 사라진 시대, 일본 측에 노출되지 않은 세 사람이 암살작전에 투입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죠.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을 대장으로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와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이 팀을 이룹니다. 긴박감 넘치는 작전 속, 이 세 사람을 쫓는 사람들도 있죠.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김구의 신임을 받는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입니다. 굵직한 배우들까지 조연으로 열연하는 이 영화. 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캐릭터가 모두 선명히 살아있다는 게 <암살>의 매력입니다.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의열단의 활동 기록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도 흥미롭죠. 독립군을 주인공으로 한 만큼 애국심, 동료애를 기반으로 한 감동, 그에 긴장감과 로맨스까지. 모든 장르가 적절히 녹아있는 영화입니다. ▶<암살> 바로보기
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점 부끄럼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문학 교과서에서 마주했던 윤동주의 「서시」를 기억하시나요? <동주>는 우리에게 교과서적으로만 다가오던 윤동주의 시를 입체적으로 풀어내는 영화입니다.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청년 동주(강하늘)와 몽규(박정민)는 자신들이 품은 '꿈'에 대해 치열하게 고뇌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화려한 기교 없이 진실되고 정적인 방법으로 동주의 삶을 담아낸 <동주>. '시'적인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네요.
흑백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동주와 몽규를 보고 있자면 꿈이 있지만 마음껏 꿈을 펼치지 못하는 그들의 상황에 보다 더 가슴 저린 공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으로서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죠. 영화의 중간중간 '동주'의 시를 낭독하는 강하늘이 목소리는 이 영화를 봐야 할 하나의 이유입니다. 그때 그 상황이 적절히 녹아난 시들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듣고 있자면 숭고함까지 느껴지니까요. ▶<동주> 바로보기
아나키스트
배우들의 조합이 예사롭지 않은 영화 <아나키스트>의 배경은 1924년 상해입니다. 의열단의 모습을 다룬 누아르 영화죠. <아나키스트>는 주인공 5명 중 막내인 상구(김인권)의 회상으로 전개됩니다.
경신 대학살로 가족을 잃은 소년 상구는 상하이 공개 처형장에서 단원들과 처음으로 만나 이들과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늘 세련되고 단정한 차림을 유지하며 거사 후에는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파티에 참석하는 그들. '아나키스트'들답게, 이들은 자유로운 영혼 포스를 발산하며 테러를 계획하고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꿈꿉니다. 허무주의자 퇴폐미 발산하는 세르게이(장동건), 이들 중 가장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이근(정준호), 냉철한 사고로 이들을 이끄는 한명곤(김상중), 과격한 행동주의자 돌석(이범수), 어리바리한 막내 상구(김인권)까지. 의열단원들의 활동과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손에 땀이 묻어납니다.
16년 전, 지금과 다른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자연스레 홍콩 영화가 떠오르는 누아르 액션도 이 영화의 별미입니다. 보다 무겁고 클래식한 색을 지닌 영화죠. ▶<아나키스트> 바로보기
귀향
잊어서는 안될 우리의 아픈 역사. 상반기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영화 <귀향>입니다. 1943년, 천진난만한 열네 살 정민(강하나)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게 끌려갑니다. 정민이 탄 기차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전장 한가운데로 끌려가죠.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되었습니다. 당시 끔찍했던 상황을 숨김 없이 묘사하고 있죠. 영화를 보신다면 엔딩크레딧도 꼭 보셔야 합니다. <귀향>의 엔딩크레딧은 이 영화를 든든히 받춰주는 하나의 기둥이죠. 약 7만 5천명이 넘는 후원자 명단이 등장합니다. 그와 함께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접 그린 그림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어쩌면 영화의 메시지보다 더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아픈 역사의 얼굴을 비춰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향> 바로보기
라듸오 데이즈
이들이 이 시기를 살아내는 방식은 꽤 경쾌합니다. 1930년대, 한량 PD 로이드는 조선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불꽃'을 기획합니다. 당대 최고의 재즈 가수 '마리', 푼수 기생 '명월', 당황하면 말 못하는 아나운서 '만철', 의문의 소리 효과 담당 '요원 K'가 함께하죠.
요즘 저녁 8시쯤 방영하는 드라마들이 그렇듯, 이 드라마 역시 눈이 갈법한 온갖 소스를 첨가해 전 국민의 호응을 받기에 이릅니다. 일제의 권력자들이 그런 드라마를 가만히 두지 않겠죠? <라듸오 데이즈>는 일제강점기를 어둡게 그려내지 않습니다. 이들은 폭탄을 던지거나 총을 쏘지도 않죠. 그저 그들은 자신이 기획한 대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드라마'를 방송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지녔을 뿐입니다. 외부의 압박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것'을 지켜내는 이들의 이야기가 꽤 통쾌합니다.
오합지졸 라디오 드라마 배우들의 애드리브 오버 연기, 방송사고를 의연하게 대처하는 로이드 PD의 능청스러운 모습이 꽤 재미있습니다. 이런 캐릭터들이 모였을 때? 그들의 매력은 배로 증가하죠. 깔깔 웃을 준비하고 보셔야 할 영화입니다. ▶<라듸오 데이즈> 바로보기
9월, 올해 하반기 기대작 <밀정>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로 분한 송강호와 의열단 리더 김우진 역을 맡은 공유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렸다고 하네요. 이들이 펼칠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이 어떤 긴장감을 부를지 기대가 됩니다.
일본의 지배를 받던 어느 시절, 안옥윤은 총을 쏘고, 덕혜옹주는 고향을 두고 가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동주는 자신의 마음을 시로 받아 적고, 로이드는 방송을 하고 있었겠죠. 누군가는 그 방송을 들으며 작은 위로를 받았을 수도 있었겠네요.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운명처럼 맞이하고 쉽지 않은 길을 택한 그들을 기리는 광복절. 제 자신을 굳게 믿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던 그들만큼 반짝이는 날을 보내야겠다, 다시 한번 다짐해봅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코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