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는 만화만 그릴까. 아니다. 그들은 일종의 부업을 하곤 했다. 상업 일러스트레인션을 그리는 만화가는 많다. 간혹 과외 작업이 더 인상적인 결과물이 되어 기억에 남기도 한다. DC, 마블 슈퍼히어로 코믹스를 그린 유명 만화가 빈스 로크, 토드 맥팔레인, 데이빗 맥킨 등이 그린 앨범 커버를 소개한다. 1990년대 록 마니아들이라면 분명 기억하고 있을 커버를 만날 것이다.


 빈스 로크

빈스 로크는 예전에 <폭력의 역사> 관련 글을 썼을 때도 언급했던 작가이다. 영화로 더 유명해진 <폭력의 역사> 원작 그래픽노블에서 사지가 절단된 상태로 죽지도 못하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폭력배들에게 고문 당하고 있던 주인공의 친구의 끔찍한 세부 묘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 장면은 일본 만화 <베르세르크>에서 주요 인물 중 하나인 그리피스가 탑에서 1년 넘는 시간 동안 고문당하는 장면과 유사하나, 고문당하는 장면 자체를 묘사하는 등 훨씬 더 시각적으로 폭력적이었다. 작가 빈스 로크는 원래 1980년대 좀비 만화 <데드월드>를 그리던 인디 만화계열 작가인데 이후 유명해지면서 DC 코믹스의 <샌드맨>, <배트맨> 등 메이저급 타이틀들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정작 제일 잘 알려진 분야는 본업인 만화가 아니라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한 앨범 커버 아트이다.

국내에서도 악명 높은 데스메탈 밴드 카니발 콥스(Cannibal Corpse)의 거의 모든 앨범과 EP 커버를 전부 다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카니발 콥스의 음악이나 가사 자체도 국내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독일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폭력적이지만 특히 정규 2집은 앨범 내용이 아니라 표지만으로 이미 독일에서 심의를 거부하였을 정도로 끔찍하다. 히트곡인 <해머 스매시드 페이스>(해머로 짓이겨진 얼굴, hammer smashed face)이 수록되어 있는 3집 앨범의 표지는 정말 심한 거부감이 든다. 검열판 표지도 따로 제작되어 빈스 로크가 그렸는데, 이것도 음산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원래 표지는 정말 봐주기 힘들다. 필자는 1991년 사촌형 집에서 현재는 폐간된 잡지 ‘핫뮤직’에 실린 데스메탈 특집 기사에서 이들 음반의 표지를 접했는데 그때 같이 소개되었던 킹 다이아몬드(King Diamond)나 오텁시(Autopsy) 등의 비교적 점잖은 커버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 잔혹성이 높아서 이름이 기억에 남았다.


토드 맥팔레인

1998년에 나온 밴드 콘(korn)의 정규 3집 <팔로우 더 리더>(Follow the Leader)는 정말 귀여운 표지가 인상적이다. 당시 미국 만화 인기 순위에서 항상 최상위권에 있던 <스폰>을 만든 이미지 코믹스의 창립 멤버 토드 맥팔레인이 그린 그림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토드 맥팔레인과 그의 분신 같은 존재이자 현재는 그 나름대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그렉 카퓰로가 같이 그린 그림이다. 1990년대 말 미국 만화는 채색 작업에 컴퓨터그래픽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시기인데, 이 표지 그림도 이러한 시대 상황이 반영되어 있어 당시 일본 만화와는 다른 깊은 색감을 보여준다.

토드 맥팔레인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되고 이들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된 ‘프리크 온 어 리시’(Freak on a leash) 뮤직비디오의 애니메이션 부분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밴드 펄 잼의 ‘두 더 레볼루션’(Do the evolution) 뮤직 비디오도 토드 맥팔레인이 만들었는데, 이때만 해도 애니메이션 사업에도 진출하려는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해에 밴드 스매싱 펌킨스의 <어도어>(adore) 앨범을 같이 구입했는데, 귀여운 만화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는 <팔로우 더 리더>에 손이 더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데이브 맥킨

청소년기에 나와서 가장 좋아했던 만화 <샌드맨>의 모든 표지 그림을 담당했던 작가는 데이브 맥킨. 그는 사진과 나뭇잎, 깃털, 동물의 뼈 조각 같은 오브제들을 캔버스 위에 콜라쥬하는 형식을 사용하는 작가이다. 그의 표지 그림들은 그 당시에 나온 다른 만화책들 표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정말 순수 미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이었다. 

데이빗 라우셴버그의 그림들을 연상시키는데 이러한 스타일이 유행이 되어 여러 작가들이 모방하였고, 한때는 DC 코믹스의 성인 취향 만화책들 표지가 다 이런 식이었던 때도 있었다. 국내에서는 정식 발매된 샌드맨이 잘 팔리지는 않았고 오히려 이후 정식 발매된 <배트맨: 아캄어사일럼>이 더 많이 팔렸다. <배트맨: 아캄어사일럼>에서는 표지 그림 뿐만 아니라 속지 그림도 전부 데이브 맥킨이 작업하였다.

데이브 맥킨의 스타일은 당연히 만화 뿐만 아니라 기타 상업 미술에도 널리 사용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앨범 커버이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것은 밴드 카운팅 크로우스(Counting Crows)의 1999년작 <디스 데저트 라이프>(This desert life)의 커버 그림일 것이다. 이 그림은 1998년 닐 게이먼과 함께 작업한 아동용 그림책 <아빠를 물고기 두 마리와 바꾼 날>의 표지 그림을 그대로 따 온 것이다. 그 다음으로 잘 알려진 것이 밴드 토드 더 웻 스프록켓(toad the wet sprocket)의 1997년작 <코일>(Coil)의 커버 그림으로 앨범 커버 뿐만 아니라 앨범에서 파생된 싱글들 커버까지도  전부 작업했다. 표지 그림들만은 모은 <샌드맨: 더스트커버>는 아직도 찾는 이들이 많아서 1997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후 한 번도 절판되지 않고 현재까지도 새로운 판형이 출간되고 있다.


최원서 / 그래픽 노블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