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작가이자 배우, 연출자이기도 한 리 워넬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기획, 연출, 각본을 맡아 자신의 취향과 창작력을 한껏 드러낸다. 애초에 기획까지만 맡을 예정이었지만 결국에 직접 메가폰을 잡으며 정확한 상상력을 구현한 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난 리 워넬은 드라마로 연기 경력을 쌓다가 TV쇼 사회자를 맡았다. 이때 영화평론가 역할도 겸했는데 일찌감치 분석과 연출에 재능을 드러낸 셈이다. 리 워넬은 <쏘우>의 시나리오를 쓰며 각본가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쏘우> 시리즈 전체의 기획을 맡아 저예산영화에 합당한 탁월한 전략을 세워나갔다. 그는 또 하나의 흥행 브랜드 <인시디어스>의 각본을 썼고, <인시디어스2>에서는 배우로도 참여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에 <인시디어스3>로 첫 연출 데뷔를 했으며 같은 해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에서 ‘주목할 만한 감독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리 워넬이 차기작으로 선택한 건 호러가 아닌 SF 액션이었다. ‘컴퓨터의 조종을 받는 사지마비 환자’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업그레이드>는 현대적인 감각과 소재를 차용하되 그 핵심만큼은 80년대 로봇 SF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명확한 컨셉, 저예산에 집중하는 블룸하우스답게 많이 보여주기보다는 제대로 보여주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는데 그 기원을 80년대 SF에서 찾아낸 것이다. “내 생각에 1980년대는 SF영화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엄청난 실사효과가 많이 나온 그 시절에는 지금 컴퓨터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을 사람이 구현하기 위해 창조적인 생각을 해야만 했다. <로보캅> <스캐너스> <토탈 리콜> 같은 영화들이 <업그레이드>에 영감을 주었다. 가령 <터미네이터>는 관객의 눈을 속이는 여러 촬영기법의 아름다운 시작점이 되었다.” 때로 제약은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500만달러에 불과한 적은 예산이 도리어 영화의 상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제약이 된 셈이다. 욕심 부리지 않고 익숙한 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선보이는 영리함. 잘 만든 장르영화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