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륨을 높여라> 포스터

DJ 하드 해리. 조금씩 이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DJ 이름이 또래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매일 밤 10시 FM 92MHz에 주파수를 맞추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DJ의 거침없는 말의 폭격이 시작된다. 트는 음악 역시 굉음의 펑크와 거친 힙합이다. 스스로를 “당신의 영혼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DJ 하드 해리”라 표현하고, 이를 듣는 청취자들 역시 그를 “완전한 미치광이”라 부른다.

마크 헌터(크리스찬 슬레이터)는 DJ일 때와 일상생활 모습이 전혀 다르다.

마크 헌터(크리스찬 슬레이터). 부모님을 따라 뉴욕에서 애리조나로 온 그는 쉽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 반 아이들과 쉽게 말을 섞지 못하고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여학생 앞에서 제대로 고개를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학교 구석에서 혼자 책을 읽고, 수업이 끝나면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마크의 존재를 신경 쓰는 사람은 그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본 작문 교사와 그를 궁금해하는 여학생 노라(사만다 마티스)뿐이다.

놀랍게도 해리와 마크, 둘은 같은 인물이다. 내성적인 학생 마크는 밤 10시가 되면 완전한 미치광이 DJ 하드 해리가 된다. 뉴욕에 있는 친구들과 교신하라며 사준 무선통신기를 이용해 마크는 해적 방송을 송출한다. 자신만의 라디오 PD이자 DJ가 된 마크는 거침없이 학교와 교사, 그리고 어른들의 부조리함을 질타하고 조롱한다. 또래의 고민을 함께 얘기하고 교사들의 부조리함을 폭로하며 마크의 방송은 인근 지역에서 단연 화제가 된다. 그의 라디오 주파수가 잘 잡히는 공터를 찾는 차가 처음엔 두 대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수십 대로 늘어나 마치 밤 10시는 축제의 시간처럼 바뀐다. 방송은 공테이프에 녹음돼 손에서 손으로 퍼져나간다. 두려움을 느낀 기성세대는 방송을 멈추기 위해 혈안이 된다.

<볼륨을 높여라>

해적 방송이라는 소재로 기성세대의 부조리함에 대항하는 설정은 확실히 흥미롭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마크를 연기한 크리스찬 슬레이터의 뾰족한 청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볼륨을 높여라>는 충분히 가치 있는 청춘영화다. 소재의 신선함과 배우의 매력 말고도 음악이 영화를 더 빛나게 한다. 밤 10시, 레너드 코언의 ‘에브리바디 노우즈’(Everybody Knows)가 시그널 음악으로 처음 울려 퍼지는 장면은 지금 봐도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멋있다. 영화의 분위기와 주제에 ‘에브리바디 노우즈’만큼 어울리는 시그널 음악은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레너드 코언의 또 다른 노래 ‘이프 잇 비 유어 윌’(If It Be Your Will)은 자살한 학생의 추모곡으로 쓰이며 또 한 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볼륨을 높여라’(Pump Up The Volume)라는 영화 제목처럼 영화 안에는 볼륨을 높이고 들으면 좋을 노래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아이스 티나 비스티 보이스처럼 거친 힙합도 있고, 디센던츠 같은 위대한 펑크 밴드의 음악도 짧게 등장했다 사라진다. 1990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중요하다. 너바나가 등장하기 전이었지만 훗날 ‘얼터너티브’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도 얘기되는(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좋아했던) 픽시스나 소닉 유스, 콘크리트 블론드의 매혹적인 노래들이 등장하고, 시애틀 4인방으로 묶이지만 음악은 가장 무거웠던 사운드가든의 이름도 발견할 수 있다.

레너드 코언의 ‘에브리바디 노우즈’ 가사

사운드트랙에 실린 노래들은 여전히 세월의 때를 타지 않는다. 지금 들어도 신선하고 에너지 넘치는 노래가 음반에 그대로 담겨 있다. 아쉬운 점은 영화 안에서 흘러나온 노래들이 모두 수록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비스티 보이스나 디센던츠의 노래가 수록되지 않았고, 영화의 정체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발휘하는 레너드 코언의 노래도 빠져있다. 대신에 콘크리트 블론드가 거칠게 커버한 ‘에브리바디 노우즈’가 존재하지만 영화에서 느낀 감동을 음반에서 이어갈 수 없다는 건 아쉽다. 이런 아쉬움을 제외한다면 언제 들어도 좋은 음반이다. 또한 이런 아쉬움을 느낀 이들이 많았는지 유튜브에는 영화에서 나온 노래를 모두 모아놓은 페이지가 있다. 그 노래들을 차례로 듣는다. 시그널 음악 ‘에브리바디 노우즈’와 함께 DJ 하드 해리의 냉소적인 표정과 거침없는 입담이 자연스레 함께 떠오른다.

볼륨을 높여라

감독 알란 모일

출연 크리스찬 슬레이터

개봉 1990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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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