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유명한 크로스오버가 또 있을까. 다른 영화/만화들이 ‘유니버스’ 개념으로 세계관을 넓히기 전, <에이리언>과 <프레데터>는 서로 다른 세계관의 외계인들이 크로스오버 형식으로 만나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라는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를 완성시켰다. 두 호적수는 어떻게 만날 수 있게 된 걸까.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 일명 AvP의 역사를 요약해봤다.
※ 표기가 혼용되는 Alien은 본문에서 에이리언으로,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 프랜차이즈는 약어인 AvP로 통일한다.
운 좋게도 같은 영화사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79년작 <에이리언>으로 세상에 나온 에이리언. 화가 H.R.기거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태어난 외계생명체는 눈이 없는 기다란 두형, 입안에 숨겨진 입, 채찍처럼 단단한 꼬리, 벽과 천정으로 이동할 수 있는 근력 등 등장만으로도 공포심을 불러왔다. 2편에서 ‘제노모프’라는 정식 명칭이 생겼으며 퀸 에일리언의 알로 번식된다는 설정이 추가됐다.
프레데터는 1987년 <프레데터>로 처음 선보였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가면, 고도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은신과 무기, 그러면서도 전리품을 취하는 원시적인 행위와 괴기스러운 맨얼굴등 프레데터는 하이테크와 야생적인 느낌을 동시에 가진 외계인이었다. 이 영화 또한 포식자란 의미의 프레데터를 고유명사로 만들기 충분했다.
두 영화는 모두 20세기 폭스가 배급했다. 즉 한 회사가 판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 만일 두 영화, 캐릭터의 판권이 다른 영화사에 있었다면 우린 아직도 AvP를 만나지 못했을지 모른다. 20세기 폭스는 두 캐릭터의 만남을 원하는 팬들의 바람을 재빨리 캐치했고, 1989년 최초 공개했다. 단, 영화가 아닌 만화로.
다크호스 코믹스
AvP 시리즈를 출간한 건 다크호스 코믹스. 코믹북 스토어를 운영하던 마이크 리처드슨이 직접 코믹스 발행하기 위해 설립한 출판사다. 다크호스 코믹스는 20세기 폭스로부터 출판권을 위임받아 1989년 11월 AvP 첫 회를 선보였다. 이 시리즈는 식민지 행성 류시에 사는 인간 마치코 노구치, 그 류시 행성을 사냥터로 사용하기 위해 돌아온 프레데터, 프레데터의 비행선을 통해 유입된 에일리언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 만화의 완결 직후 영화 <프레데터 2>가 개봉했다. 재밌게도 영화 엔딩에 프레데터가 사냥감의 머리를 전시한 트로피룸에 에이리언의 해골이 걸려있는 이스터에그가 들어가 팬들은 AvP 크로스오버 영화를 준비 중인 거 아니냐며 환호했다. 하지만 <프레데터 2>와 1992년 <에이리언 3> 모두 큰 흥행을 거두지 못해 시리즈는 침체기에 빠졌다. 팬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크로스오버 영화는, 2004년에야 완성될 수 있었다.
R 등급 둘이 만나 PG-13?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2004년, 웨이랜드사는 남극 지하에 있는 피라미드가 발견한다. 이곳에 방문한 알렉사 우즈와 일행들은 프레데터들이 100년마다 이 피라미드에 찾아와 일부러 에이리언을 번식시켜 사냥 시험을 치렀던 걸 알게 된다. 심지어 프레데터들은 과거 과하게 많아진 에이리언을 막지 못해 인류 문명까지 멸망시킨 적이 있던 것. 주인공 일행은 인류의 멸망을, 에이리언을 막기 위해 프레데터에게 협력하게 된다.
<에이리언 VS. 프레데터>는 ‘누가 이기든 미래는 없다.’(Whoever wins... We lose)라는 포스터 문구와 달리, 결국 인류가 이길 게 뻔히 보이는 스토리 때문에 비난받았다. 두 종족이 대결을 펼치는 설정도 일반 관객들에겐 어땠는지 몰라도 에이리언 팬들에겐 ‘우리 제노모프가 프레데터들의 연습 대상일 리가 없다’는 반발심을 샀다. 액션에서도 에이리언 군단이 프레데터 세 명+인간 몇 명에게 너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다소 고어한 두 영화 원작들에 비해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는 너무 시시했다. 인간을 압도하는 힘으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두 캐릭터가 남극에 고립돼 자신들만의 싸움을 벌이면서 특유의 유혈 낭자한 맛이 사라졌다. 원래 R 등급(국내의 청소년 관람 불가)으로 유명한 시리즈의 캐릭터가 만나 PG-13(청소년 관람가)를 받았으니 팬들은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그래도 6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1억 7천만 달러를 벌었으니 본전은 번 셈이다.
캐릭터는 살고 영화는 죽다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2>
1편의 괜찮은 성적에도 속편까지 3년이 걸렸다. 2007년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2>는 1편의 마지막에서 이어진다. 퀸과 동귀어진한 프레데터 스카의 시체에서 혼종인 프레데일리언이 나타난 것. 이를 막기 위해 프레데터 울프가 지구를 향한다. 그리고 미국 콜로라도에서 의문의 실종자와 시체가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코믹스에서 보여줬던 프레데일리언을 포함,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2>는 캐릭터들의 특성을 잘 살렸다.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급습을 노리는 에일리언, 엄청난 기술력이 응집된 무기로 이들에 맞서는 프레데터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완성도는 1편 이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대략의 설정과 각 인물들의 심리적 동요를 그럴싸하게 포장했던 1편에 비해 2편은 스토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신경도 안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덕분에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외계 생명체 둘을 가져와놓고 혹평 세례를 받아야 했다. 북미 흥행 성적은 전편에 비해 반 토막 났고, 월드 와이즈 성적도 5천만 달러가량 하락했다. 팬들에게도, 평단에서도 재앙이란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결국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AvP 실사 영화 제작은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영화 밖에서 더 활약 중인 이들의 싸움
영화들의 평을 보면 AvP 프랜차이즈의 명성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AvP는 사실 영화 외 분야에서 좋은 작품들이 많이 있다. 코믹스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소설로도 집필되고 있다. 오락실 세대라면 1994년 발매된 캡콤사의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를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두 명의 특수부대 요원과 두 프레데터가 도시를 점령한 에이리언에 맞서는 내용이다. 이 게임에서 프레데터가 ‘워리어’, ‘헌터’처럼 다른 계급이 있다는 게 유명해졌다. 다양한 에이리언이 적으로 등장해 팬이라면 건너뛸 수 없는 게임이 됐다.
PC 세대라면 1999년 리벨리온사의 <에일리언 VS 프레데터>나 2001년 모노리스사의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2>를 기억할 것이다. 그중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2>는 팬들에게도 명작으로 뽑힌다. 행성 LV-1201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며, 해병대, 에이리언, 프레데터 각자의 시점으로 스토리를 즐길 수 있다. 에이리언을 선택하면 페이스허거로 숙주를 점령해 성체가 되는 과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고, 프레데터를 선택하면 열 감지 시야 센서, 은신 능력, 트로피 킬 등을 즐길 수 있다. 해병대는 그에 필적하는 강력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등 꼼꼼한 고증을 플레이 방식으로 녹여내 팬들에게 반드시 즐겨야 할 게임으로 기억되고 있다. <프레데터스>가 개봉한 2010년엔 리벨리온 사가 <에일리언 VS 프레데터>를 리메이크해 발매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