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테러 라이브>의 결말과 <터널>의 스포일러성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터널> 대 <더 테러 라이브>, <더 테러 라이브> 대 <터널>. 마포대교를 폭파하겠다는 테러범과 사투를 벌이는 <더 테러 라이브>와 터널에 고립된 채 구조를 기다리는 <터널>, 두 영화의 가장 큰 공통점은 주연배우가 하정우라는 점입니다. 만약, 하정우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요. 상상하기 싫군요. 영화를 거의 혼자 이끌어나가는 <터널>과 <더 테러 라이브>에서 하정우는 어떻게 같고 무엇이 다를까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나운서 VS 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
<더 테러 라이브>에서 하정우는 아나운서 윤영화를 연기합니다. 영향력도 있는 잘나가는 직장인이죠. 위의 사진 보세요. 나름 앵커 포스가 느껴집니다. <터널>에서는 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 이정수를 연기합니다. 그의 인생 모토는 인생 3막입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사장님, 제 인생 모토가 인생 3막이지 않습니까? 막 퍼주고, 막 끼워주고, 막 디씨해주고. 당연히 해드려야줘.”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 주인공을 자동차 영원사원으로 설정한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자동차 트렁크에 영업을 위해 쓰이는 손톱깎이, 손전등 등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가지고 다니기에 어색하지 않은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이혼남 VS 유부남
<더 테러 라이브>의 윤영화는 이혼한 걸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마포대교 폭탄 테러 현장에 나가 있는 이지수 기자가 전 부인이었습니다. <터널>의 이정수는 나름 가정에 충실한 남자인 것 같습니다. 아내 세현(배두나)이나 딸 수진과의 통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생을 포기하려는 남편에게 절대 죽지 말라고 얘기하던 세현은 남편을 많이 사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배두나는 <터널> 촬영 기간 내내 노 메이크업이었습니다. 8월2일 방송됐던 네이버 무비토크 라이브(▶다시 보기)에서 노 메이크업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안 울고 버티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얼굴에서 나오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장으로 가리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배두나의 대답을 들어보니 연기에 대한 진지함이 느껴집니다.
욕망의 화신 VS 긍정의 화신
<더 테러 라이브>의 윤영화는 욕망 덩어리입니다. 뉴스 메인 앵커 자리로 복귀하기 위해 테러 중계에 목을 맵니다. 보도국장(이경영)과 물밑 거래를 통해 시청률이 어느 정도 나오면 마감뉴스 진행을 맡기로 합니다. <터널>의 이정수는 긍정의 화신입니다. “탱이 하나~ 나는 두 개~” 하면서 나눈 강아지 사료를 먹으면서도 이정수는 “너네는 간을 안 하는구나”하고 웃어 넘깁니다. “내 몸에서 오렌지 주스가 나와”도 기억에 남는군요. 무인도에 고립된 1인 생존기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 배구공 윌슨이 있었다면 <터널>에는 강아지 탱이가 있습니다. 하정우와 기가 막힌 호흡을 보여준 파트너 탱이는 사실 한 마리가 아닌 ‘곰탱이’, ‘밤탱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마리의 퍼그였습니다. 주의! ‘10탱이’ 아님.
죽음 대 삶
<더 테러 라이브>의 윤영화는 스스로 방송국 건물에 설치된 폭탄의 스위치를 누릅니다.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터널>의 이정수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뻔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살아 남았습니다. 긍정의 화신이어서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걸까요. 두 사람의 죽음과 삶에서 얼핏 비슷한 점이 눈에 띕니다. <더 테러 라이브>의 방송국 건물은 국회의사당을 향해 무너집니다. <터널>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이정수는 구조대장 대경의 입을 빌어 말합니다. “다 꺼지라고 이 개쒜끼들아!” 사진을 찍으러 온 것 같은 장관이 이 말을 듣고 한마디 합니다. “나?”
하정우는 지난 7월7일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터널>에는) 자칫 지나치기 쉬운, 소중한 한 생명을 이야기하는 것에 울림이 있었다.” <터널>에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물은 오달수가 연기한 구조대장 대경입니다. 대경의 대사 가운데 “저… 이정수씨는 도롱뇽이 아니라 사람인데요. 파충류가 아니라 사람이요, 사람. 자꾸 까먹으시는거 같아서…”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차갑게 해서 드시는 걸 추천드려요”가 제일 재밌긴 합니다.
진지 긴박 대 코믹 긴박
<더 테러 라이브>의 윤영화는 욕망 덩어리이기 때문에 웃기지 않습니다. 테러범에 의해 매우 진지하고 긴박한 상황이 자꾸만 등장하기 때문에 웃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언제 다리 위의 시민들이 위험해질지 모르니까요. <터널>의 이정수는 긍정의 화신이기 때문에 관객을 웃깁니다. 1인극의 달인 하정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긴박한 상황은 <터널>에서도 <더 테러 라이브>처럼 등장하긴 합니다. 비교하자면 <터널>의 긴박함이 조금 약하긴 합니다. 인위적인 폭탄으로 인한 테러와 부실공사로 인한 재난 상황의 차이라고 할까요. 그러고 보면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윤영화와 통화하는 테러범이 있고 <터널>에서는 이정수와 통화하는 구조대장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영화 속의 공기에서도 차이점이 느껴집니다.
이상 <더 테러 라이브>와 <터널>의 시시콜콜한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득 엉뚱한 상상이 나래를 펼쳤습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더 테러 라이브>의 윤영화는 SNC라는 가상의 방송국 건물이 붕괴되면서 죽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윤영화가 죽었다는 걸 영화가 보여주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극적으로 살아난 윤영화는 테러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하도 신도시에서 신분을 숨기고 이정수란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죠. 열심히 한 덕분에 새 아내도 얻고 딸도 낳았습니다. 어쩌면 수진이는 전처와의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만. 암튼.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날, 그날은 수진이 생일이었죠. SNC의 보도국장(이경영)이었던 거래처 사장님이 전화를 해옵니다. “이 과장, 아까 렌트카 10대 계약하기로 한 거 말이야~ (…) 8대로 하고 카시트 좀 끼워주면 안 될까?” “제가 터널 지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아싸!” 그러다 하도터널이 무너진 거죠. 이렇게 욕망의 화신이었던 윤영화는 이정수의 삶을 살면서 욕심을 버렸고 긍정의 화신이 됐던 겁니다. 이것은 마치 <암살>의 변절자 염석진(이정재)이 반성하고 러시아 유학 이후에 <인천상륙작전>의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이정재)가 되는 것과 비슷한 전개?
네, 말이 안 되는 건 압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네이버 영화에서 ‘터널’ 검색해서 배우/제작진 리스트 확인해보세요. 단역 출연자들 중에서 SNC 카메라맨, SNC 앵커, SNC 동료기자 이런 사람들 있다니까요. 소오름!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