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으로도 맥동하는 <프레데터> 시리즈의 작곡가들

이번이 네 번째 <프레데터>다. 30년 전 처음 등장한 이 괴물은 <에일리언>의 제노모프와 함께 할리우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양대 외계 생명체가 되었다. 사실 그 기원은 누군가 던진 농담에서 출발했다. “록키 발보아의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은 지구상에 없으니 이젠 외계인하고 싸워야 되는 거 아니야?”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던 이 한 마디를 주목한 건 짐과 존 토마스 형제였다. 그들은 ‘터프한 마초남이 외계인과 상대하면 어떨까’의 아이디어가 충실히 반영된 자신들의 첫 시나리오 ‘헌터’를 완성해 20세기 폭스 건물에 숨어들어 간부 사무실에 밀어 넣고 왔다. 다음 날 그들에게 연락이 온 건 당연지사. 스튜디오 입장에선 프레데터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스펙 각본’(Spec Script)이었던 셈이다.

마침 <코만도>로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인연을 맺은 제작자 조엘 실버는 이 프로젝트를 흥미롭게 여겨 그에게 각본을 건네 출연을 확정지었고, <노 매드>로 인상적인 데뷔를 한 신예 존 맥티어난을 기용해 영화를 완성시켰다. 당시 1500만 달러라는 할리우드 평균적인 예산을 들인 이 영화는 <비버리힐스 캅> 속편에 이어 1987년 두 번째로 가장 높은 주말 수익을 올린 작품이 되었고, 미국에서만 4배에 가까운 수익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아놀드의 스타성과 괴물의 기원을 알려주지 않는 수수께끼 설정, 스탠 윈스턴이 만들어낸 파충류와 고대 전사를 합쳐놓은 듯한 매력적인 캐릭터 디자인에, 존 맥티어난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연출력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독창적이고도 새로운 SF액션호러 영화가 탄생되었다.

특히나 영화 후반까지도 괴물의 정체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 대담한 연출과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열화상 카메라의 시점 숏, 투명화 전략으로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공포감을 극대화시켜 베트남전의 트라우마를 떠오르게 만드는 상징성까지 복합적이고도 다양한 해석을 낳게 만드는 영화의 만듦새는 그저 완벽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우주선 한 대가 지구로 떨어지는 SF적인 도입부로 시작해, 정글에서 펼쳐지는 밀리터리 액션을 거쳐, 하나씩 죽어나가며 학살되는 호러적인 감수성으로 방점을 찍는 퓨전적인 매력은 영화가 나왔던 1980년대를 비추어볼 때 너무나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적인 발상이자 탁월한 결정이었다. 여기에 음악을 담당한 알란 실베스트리의 선택도 신의 한수에 가까웠다.

애초에 음악으로 거론되던 인물은 <에일리언>을 탄생시켰던 제리 골드스미스였다. 하지만 이게 불발되자 조엘 실버는 자신과 <리쎌 웨폰>을 함께 한 마이클 케이먼을 내심 염두하고 있었는데, 그가 크리스 컬럼버스 감독의 <야행> 음악 스케줄과 겹쳐 힘들어지자 연출을 맡은 존 맥티어난이 실버에게 알란 실베스트리를 요청한다. 당시 맥티어난은 실베스트리가 음악을 담당한 <빽 투 더 퓨처>를 보고난 뒤 감명을 받은 상태였다. 알란 실베스트리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과 함께 한 두 편의 영화 <로맨싱 스톤>과 <빽 투 더 퓨처>의 대성공으로 B급 영화들과 TV를 전전하던 시절을 청산하고 일약 할리우드 메인스트림으로 편입되었는데, <프레데터>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는 이미 <캣츠 아이>로 호러를, <델타포스>로 밀리터리 액션을, <빽 투 더 퓨처>와 <협곡의 실종>으로 살짝 SF 감수성을 맛봤던 터라, 어찌 보면 이 모든 것이 결합된 <프레데터> 음악에 있어 최적의 대타였던 셈이다. 특수부대가 중남미 정글에 들어가 게릴라들을 소탕하고 작전을 수행한다는 플롯에서 힌트를 얻은 실베스트리는 밀리터리 행진곡을 연상시키는 박력 넘치는 테마를 구현하는데, 여섯 노트의 신디 오스티나토에, 역동적인 브라스가 반복되며 휘몰아치는 긴장감과 서스펜스는 아드레날린을 강하게 분비시키고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한다. 여기에 정글의 소리를 연상시키는 토속적인 퍼쿠션과 강약을 조절해 극도의 서스펜스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솜씨도 영화에 더도 덜도 말고 딱 맞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관객을 압도시킨다.

이후 알란 실베스트리는 <말뚝 상사 빌코>, <이레이저>,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 <A-특공대>, <어벤져스> 등을 통해 이런 밀리터리 행진곡 스타일의 테마를 가장 탁월하게 구사하는 영화음악가로 거듭났는데, <프레데터>는 그 원형이자 본질로, 액션 스코어인 동시에 호러 스코어로도 손색없는 사운드를 안긴다. 동료들을 추모하며 울려 퍼지는 애국적인 트럼펫 솔로가 조금은 숨통을 트이게 하며 감상에 젖게 하지만, 전체적으로 낮은 음역대에서 으르렁대는 피아노와 빠르게 활강하는 스트링, 격정적으로 질주하는 브라스는 이길 수 없는 상대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전반적으로 강화하며 쫓기는 자의 심정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제리 골드스미스가 <에일리언>에서 다룬 방식과는 조금 다른, 유희의 악취미가 드러나는 공포다.

영화의 성공으로 속편이 빠르게 기획되었지만, 그 주역인 존 맥티어난 감독과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모두 잡는 데엔 실패했다. (존 맥티어난은 <다이하드>와 <붉은 10월호>로 연달은 잭 팟을 터트렸고, 아놀드 역시 <토탈리콜>과 <터미네이터 2>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무엇보다 아놀드는 이 외계 학살자가 도시로 가는 속편의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원래 그가 맡을 캐릭터는 대폭 수정돼 게리 부시가 연기한 키스 역으로 바뀌었고, <리쎌 웨폰>의 인연으로 대니 글로버를 캐스팅해(여기에 <에일리언2>에 나왔던 빌 팩스톤까지 합류) 스티븐 홉킨스에게 메가폰을 맡겨 영화를 완성시켰다. 흥행은 했지만 만장일치로 엄지손가락을 들었던 전편과 달리 반응은 좋지 못했다. 다만 실베스트리의 끝내주는 음악은 속편에서도 계속됐다.

도시로 가며 갱단과 경찰의 얘기로 풀어낸 플롯이라 전편의 밀리터리 색채는 많이 사라졌지만, 기존의 테마는 유지했다. R등급보다 높은 NC-17(17세 이하 관람 금지) 등급을 최초로 받을 만큼 고어적인 비주얼에 맞게 자중한 관현악 사운드는 다양한 퍼쿠션과 함께 더욱 진화된 공포감을 전달하며, 여기에 팔딱이는 심장 박동처럼 두드리는 라틴 느낌의 드럼 비트와 비명소리처럼 들리는 전위적인 색소폰, 이국적인 보이스를 새롭게 첨가시켜 전편과 변별점을 갖게 했다. 그래서 마치 도시가 새로운 정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이테크 기술들이 무력화되며 프레데터에게 학살당하는 과정들이 원초적인 수렵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순전히 알란 실베스트리가 만든 스코어의 힘이기도 하다. 전편만큼 파워풀하지 않지만, 더 무섭고 소름끼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다음 속편이 만들어진 건 무려 20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프레데터 2>의 마지막 대결 무대가 되었던 우주선 속에 등장한 작은 단초들 때문에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라는 두 편의 스핀오프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팬픽에 불과했고 정통 속편이 만들어지기까지 꽤 오랜 조율 과정을 거쳤다. 최종적으로 이 기획안을 꾸린 건 할리우드의 악동(?)이라 할 수 있는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오랜 프레데터에 대한 ‘팬심’이 작용해서였다. 그는 1편의 스토리를 역으로 활용해 지구로 오는 외계인이 아닌, 외계 행성에 간 지구인들이란 <혹성탈출>식 전개로 새롭게 세 번째 프레데터 이야기인 <프레데터스>를 만들어냈고, 제목에서 <에일리언 2>에 대한 경배를 보이며 프랜차이즈를 이어나간다.

원작의 팬 보이를 자처할 만큼 로드리게스는 당연하게도 음악에 알란 실베스트리를 기용하고자 했지만, 당시 <A-특공대>의 음악을 맡고 있던 터라 스케줄상 그의 합류는 불가능했고, 대신 <스파이 키즈>와 <씬 시티>, <샤크 보이와 라바 걸의 모험> 때 같이 작업해 친분이 있던 존 데브니가 새롭게 음악을 맡게 된다. 시리즈의 색채가 바뀌진 않을까란 우려와 달리 데브니는 마치 실베스트리에 빙의됐나 싶을 정도로 전편들 음악에 흡사한 분위기와 색채를 고스란히 구현해냈다. 오히려 데브니의 색깔이 안 느껴져 아쉬울 정도로 원전 스코어에 공포와 액션, 스릴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메인 테마는 일렉 기타와 이펙트를 걸어 더 호러블하고 강력해졌으며, 밀리터리 색채를 지운 심포닉 액션 스코어는 2% 아쉬웠던 영화 본편보다도 더 강한 쾌감과 질주감을 전달한다.  

한 세대가 넘어간 프랜차이즈가 되자 20세기 폭스에선 새롭게 <프레데터>를 리부팅할 계획을 짜고 <아이언 맨 3>을 성공시킨 셰인 블랙과 접촉한다. 그는 1987년 <프레데터>에서 제일 먼저 사냥당하는 홉킨스로 출연했고, 촬영 중 혹시 있을지 모를 수정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기용됐던 만큼 이 시리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셰인 블랙은 리부트보다 속편을 원했고, 세 번째 작품과 달리 전편들과 같이 수위가 센 작품으로 완성되길 바랐다. 결국 프레드 데커와 함께 쓴 각본으로 2편 이후로부터 28년 만에 이어지는 직접적인 속편을 만들어냈다. 안타깝게도 알란 실베스트리 대신 음악으로 합류한 건 짐머 사단의 차세대주자 헨리 잭맨이었다. 

신기하게도 헨리 잭맨은 알란 실베스트리가 작업한 영화들의 속편을 이어받은 경우가 눈에 띈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1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지.아이.조>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 이어 이번에 <더 프레데터>까지 벌써 3번째다. 음악적 스타일이 비슷한 것도 아닌데, 프랜차이즈를 물려받아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는데 나름 성공했다. <더 프레데터>에선 과연 알란 실베스트리의 그 유명한 테마곡이나 특유의 ‘프레데터 사운드’(리듬이나 효과)를 활용할 것인지 귀추가 모아지는데, 셰인 블랙이 오리지널 필름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는 만큼, 무난하게 인용돼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콩: 스컬 아일랜드>와 <쥬만지: 새로운 세계> 등 최근 필모에서 액션/어드벤쳐 스코어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던 터라, 헨리 잭맨은 전작들 못지않은 익사이팅하고 스펙터클한 음악을 완성할 듯 싶다.

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