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뒹굴뒹굴 VOD의 주제는 감독이 속마음을 털어놓은 영화다. 감독들은 때로 영화에 대한 생각을, 혹은 고충을 작품에 녹인다. 이번 주에 소개할 영화는 대놓고 영화 얘기를 하거나, 아니면 은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듯한 영화를 섞었다. 필자 개인의 의견이기 때문에 앞선 뒹굴뒹굴VOD 포스트와는 사뭇 느낌이 다를 수 있다. 영화 주요 장면을 언급하기 때문에 영화 리스트를 훑어보고, 안 본 작품이 있다면 차후 관람 후 읽어보길 살짝 권해본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대>, <쥬라기 공원>, <원더풀 라이프>, <홀리모터스>. <최악의 하루>(2016) 총 다섯 편의 영화는 9월 22일 토요일부터 28일 금요일까지 할인 이벤트도 함께 진행된다.


쥬라기 공원
Jurassic Park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출연 샘 닐, 로라 던, 제프 골드브럼|1993|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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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공원>가 나온 1993,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미 <인디아나 존스> 삼부작, <이티>, <미지와의 조우>, <죠스>, <컬러 퍼플> 등을 찍은 명감독이었다. 그럼에도 <쥬라기 공원>은 그의 영화 중 유독 특별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어트랙션처럼 쉴 새 없이 긴장감을 조성하는 이 영화에서, 해먼드(리차드 아텐보로) 엘리 새틀러 박사(로라던)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장면 때문이다.
 

존 해먼드(리차드 아텐보로)

보안 시스템이 꺼지고 공룡들이 탈출한 그날 밤, 존은 자신이 이전에 만들었던 모터로 꾸며낸 벼룩 서커스를 언급하며 쥬라기 공원에서는 진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각본이야 스필버그가 아닌 마이클 클레이튼(원작자)과 데이빗 코엡이 썼지만, 스필버그 역시 이 장면에서 존 해먼드에게 클로즈업 장면으로 힘을 준다. 사실상 모든 일의 원흉인 이 존 해먼드를 이해해달라는 듯, 그의 표정을 스크린에 담는다.
 
지금도 스필버그는 할리우드 전방위에서 활동 중이다. 영화를 찍기 시작한 지 50년이 넘었는데도 같은 해에 <더 포스트><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상반된 영화 두 편을 선보일 정도다. 그래서 70세를 훌쩍 넘긴 이 노장을 보면 존 해먼드의 대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는 지금도 영화를 만들고 있다. 우리에게 진짜를 보여주기 위해서.

쥬라기 공원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샘 닐, 로라 던, 제프 골드브럼, 리차드 아텐보로

개봉 1993.07.17. / 2013.06.27.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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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하루
감독 김종관|출연 한예리, 이와세 료, 권율|2016|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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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는 2001<거리 이야기>. 스타덤에 오른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김종관 감독은 데뷔한지 10여 년 뒤인 2016년에야 <최악의 하루>로 장편 연출에 도전했다. 단편 영화와 장편 영화는 다른 범주라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인지도 최상의 단편 영화감독치고는 장편이 참 늦었다. 영화를 보고서야 왜 이리 오래 걸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 오래 고민했구나.
 
<최악의 하루>는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가 남자 세 명을 만난 하루를 그린다. 일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가 한국에 건너와 겪는 하루이기도 하다. 이야기 안에 있는 배우와 이야기 밖에서 서성이는 소설가가 만난다는 설정도 영화를 암시하지만, 무엇보다 인터뷰어 현경(최유화)이 료헤이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일품이다. “왜 인물들을 위기에 넣고 꺼내주지 않나요?” “정말 그 사람들을 알고 계시나요?”

모두 그렇진 않지만, 단편 영화들은 때때로 시간에 쫓겨 무책임한 엔딩을 내놓기도 한다. 영화가 막을 내려도 등장인물들의 삶이 계속된다면, 그들에겐 그 엔딩만큼 고통스러운 게 어딨겠나. 김종관 감독은 분명 그런 질문을 받았거나, 그 많은 단편영화들을 연출하다 스스로 자문했을 것이다. 그 고민 끝에, 이야기 안팎의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이 영화(와 엔딩)를 생각했을 것이다. 극장에서 이 영화의 엔딩을 봤을 때, 정말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객석을 바라보며 분명히, 해피엔딩일 거예요란 말을 건네는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나.

최악의 하루

감독 김종관

출연 한예리, 이와세 료, 권율

개봉 201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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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桐島、部活やめるってよ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출연 카미키 류노스케, 하시모토 아이, 오고 스즈카|2013|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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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가 배구부를 그만뒀다. 히로키(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비롯한 그의 친구들은 갑자기 동아리를 그만두고 사라진 키리시마 때문에 흔들린다. 영화부 마에다(카미키 류노스케)는 그 와중에 단편 좀비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처음부터 아싸인 마에다는 키리시마와 별다른 접점이 없다. 그저 찍고 싶은 영화를 조용히 찍으려고 하는데, 방해가 너무 많다. 영화의 막바지, 키리시마를 찾는 배구부원들을 상대로 마에다와 영화 부원들은 좀비 영화 촬영을 강행한다. 분장을 한 부원들이 물고 뜯는 연기를 하고, 배구부원들은 우왕좌왕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촬영에 휩쓸린다.
 
이 소동이 지나가고 히로키가 장난처럼 묻는다. “영화감독이 되실 건가요?” 마에다는 대답한다. “아마도 무리.” 히로키는 그럼 영화를 왜 찍는지 묻고, 마에다는 대답한다. “가끔은 내가 하는 일이랑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연결됐다고 느낄 때가 있어. 가끔이지만, 그게 좋으니까.”

좋으니까. 단순하고 원초적이어서 이제는 성스럽게 여겨지는 그것. 그야말로 열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착취를 위해 사용하는 단어가 아닌 진짜 열정.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얼마나 이유를 대며 살아왔던가.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는 영화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이 한 마디에서,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과 원작자 아사이 료)의 마음을 엿보기엔 충분하다. 영화부가 무시당하자 마에다가 했던 행동들, 그리고 그의 시나리오에 나온 대사들. 좋아서 하는 일들은 이렇게 눈물겹고 아름답다.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

출연 카미키 류노스케, 하시모토 아이, 오고 스즈카

개봉 201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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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라이프
ワンダフルライフ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출연 이우라 아라타, 오다 에리카, 테라지마 스스무|1998|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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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영화는 많다. 하지만 영화를 이렇게 낭만적으로 그린 영화는 적다. ‘가족 드라마의 거장고레에다 히로카즈가 1998년 두 번째 작품으로 내놓은 <원더풀 라이프>는 사후세계를 다룬다. 죽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을 말하고, 모치즈키(이우라 아라타)와 직원들은 그 추억을 짧은 영화로 제작해 상영한다.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각자 성불한다.
 
누군가의 삶을 마무리하는 매체가 영화라니. <원더풀 라이프>는 그 영화의 퀄리티를 묘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억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영화로 상기되는 것만 묘사한다. 그 과정을 보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삶의 어떤 순간을 고르게 될까 고심하게 된다. 다른 영화들이 관객의 상념을 죽이고 영화에 빠져들게끔 극장을 이용한다면, <원더풀 라이프>는 극장이란 고요한 공간에서 스스로의 모든 것을 되돌아보는 경험을 안겨준다.

이 작품 이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을 소재로 각본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일상에서 판타지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판타지에서 일상으로 조심스럽게 안착했다.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영화는 <원더풀 라이프>에서 모두 담아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기억을 채워주는, 표현할 수 없는 마법과도 같은 것이라고.

원더풀 라이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이우라 아라타, 오다 에리카, 테라지마 스스무

개봉 2001.12.08. / 2018.01.04.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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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모터스
Holy Motors 

감독 레오 까락스|출연 드니 라방, 카일리 미노그, 에바 멘데스|2012|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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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이 아닌데도, 13년 만에 컴백한 거장의 신작이란 말에 후다닥 극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잤다. 졸지 않았다. 진짜 자버렸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보면서도 몇 번을 멈췄는지 모른다. <홀리 모터스>는 그런 영화다. 제정신으로 견디기 힘든.
 
오스카(드니 라방)는 아침부터 고급 리무진으로 출근한다. 그가 하는 은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이다. 오스카가 직접 분장을 하고 상황에 뛰어드는 모습은 영락없이 배우지만, 막상 이 상황이 뒤틀리고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해도 그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상황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이 상황에 뛰어든 오스카는 과연 인간인가, 아니면 심지어 진짜 상황에도 가짜가 끼어드는 등 진짜와 가짜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혼란은 점점 더해진다.

그나마 레오 까락스는 몇몇 장면에서 <홀리 모터스>에 대한 힌트를 남긴다(, 그에게도 인간적인 부분이 있다). 오프닝 영상과 객석의 사람들, ‘인터미션’,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지금도 <홀리 모터스>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를, 그 속의 담긴 가상의 것을 이처럼 해체하고 재조립할 수 있단 사실은 수많은 이들에게 영화가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하게 할 것이다.

홀리 모터스

감독 레오 카락스

출연 에바 멘데스, 카일리 미노그, 드니 라방, 에디뜨 스꼽

개봉 201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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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