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을 위해 쓴다. ‘씨네플레이’는 ‘씨플 재개봉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봉하면 당장 보러 갈 영화, 실제로 재개봉하는 영화들을 소개해왔다. 이번에 만나볼 영화는 1998년 10월에 개봉한 <트루먼 쇼>다.
트루먼 쇼
감독 피터 위어 출연 짐 캐리 개봉 1998년 10월 24일 상영시간 103분 등급 12세 관람가

- 트루먼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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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피터 위어
출연 짐 캐리
개봉 1998.10.24.
평범한 샐러리맨인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는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말해 두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을 입에 달고 사는 예의 바르고 밝게 살아가는 남자다.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는 트루먼은 사실 전 세계에 방영되는 생방송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30살이 될때까지, 그의 삶은 전부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다. 이웃, 친구, 가족 모두 연기자이며 그가 사용하는 물건은 전부 광고가 붙는다. 그 사실을 모른 채 거대한 세트장 안에서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특정 시간대에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거나 라디오에서 자신의 일상이 흘러 나오는 등의 기묘한 일을 겪게 된다. 그때부터 트루먼은 자신의 일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고향을 빠져 나가기 위한 시도를 감행한다.
개봉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트루먼 쇼>를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말과 명대사도 너무 유명해 더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트루먼 쇼>. 하지만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있다.
짐 캐리의 두 가지 얼굴
짐 캐리가 연기를 잘한다는 사실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트루먼 쇼> 이전에 그는 코미디 전문 배우라는 인식이 강했고, 실제로 <마스크>(1994), <덤 앤 더머>(1994) 등에서 슬랩스틱풍 코미디를 주로 선보였다. 특유의 찰흙 같은 얼굴과 과장된 미소로 인해 코미디에만 적격일 것이라 예상했다. 예상을 뒤엎고 그는 <트루먼 쇼>에서 기존의 익살스러운 모습과 정극 연기를 함께 보여주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 <트루먼 쇼>로 그는 제56회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트루먼 쇼>의 감독 피터 위어는 “<에이스 벤츄라>(1994)에 등장하는 짐 캐리의 모습을 보고 캐스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에이스 벤츄라> 속 짐 캐리의 모습이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게 만들었다”고 답했다.
반전 영화가 아닌 이유
<트루먼 쇼>는 처음부터 트루먼이 쇼의 주인공이며 그 사실을 트루먼만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시작한다. 마치 그 쇼를 보는 시청자가 된 것처럼 인터뷰도 보여주며, 트루먼 밑에 ‘LIVE’라는 글자까지 친절하게 띄워 준다. 만약 트루먼의 시점으로만 진행된다면 꽤나 충격적인 반전영화가 됐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트루먼 쇼>는 3인칭 시점을 사용할까. 1인칭으로 진행된다면 관객들은 그 반전에 초점을 맞춰 볼 것이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반전이 주는 충격으로 인해 가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감독 피터 위어는 관객을 시청자로 만들기 위해 영화의 비율을 조절했다. 그는 1.66:1 비율로 촬영해 영화를 마치 TV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 비율은 원본 DVD에만 있으며 극장에서는 1.85:1로, 블루레이에서는 1.78:1로 변경됐다. 이와 같은 장치들을 통해 <트루먼 쇼>는 관객을 영화 속 시청자로 만듦과 동시에 트루먼을 운명에 맞서는 인간으로 그릴 수 있었다.
트루먼(truman), true-man
트루먼의 이름은 ‘true-man’에서 따왔다. 자신의 일상을 의심하기 전까지 그는 거짓된 인생을 살아왔다. 최소한 그에겐 진실했지만 그의 친구, 가족, 배우자 모두 정해진 대로 행동하는 배우들일 뿐이었다. 모두가 그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아내(로라 리니)를 의심할 때도 아내는 그를 진정시키는 척 하면서 코코아 광고를 한다.
“당신은 왜 아이를 갖자는 거지? 나를 싫어하잖아”라는 트루먼의 질문에 그는 “새로 나온 코코아 한 잔 타드릴까요? 니카라과산 상부에서 재배한 천연 코코아씨로 만들었고 인공 감미료도 안 넣었어요”라고 답한다. 단 둘이 있지만 자신이 아닌 어딘가를 향해 상품을 광고하는 아내의 태도에 트루먼은 극도로 흥분한다. 아내는 그의 위협에 “어떻게 좀 해봐요!”라고 소리 친다. 이 말로 인해 그는 자신의 삶이 짜여진 각본임을 깨닫게 된다.
친구 말론(노아 엠머리히)은 그를 위로해주며 “널 위해서라면 달리는 차에라도 뛰어 들거야. 너에게만은 절대 거짓말 안 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모두 연출가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의 지시였다. 자신이 속한 세계가 우정을 맹세하는 말조차 거짓인 곳이라는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그가 떠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호기심 많고 탐험심이 강했던 트루먼은 결국 30살에 안락했던 세트장을 뒤로한 채 배에 오른다. 그 배의 이름은 ‘산타 마리아’로 신대륙을 찾아 떠난 콜럼버스의 배 이름과 같다. 그는 휘몰아치는 폭풍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찾아 떠난다. “나를 막을 생각이라면 차라리 나를 죽여라!”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은 운명에 맞서는 나약한 인간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폭풍이 지나가고, 트루먼은 세트장 외벽에 다다른다. 인공 햇살을 느끼며 탐험가의 얼굴로 항해를 하던 그는 배가 세트장을 뚫자 다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지금까지 그가 보고 있던 것들이 전부 거짓이었음을 눈으로 확인할 시간이 찾아 왔다. 그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벽을 만져 보며 진실을 확인한다. 그토록 알고 싶던 것이지만 그는 마냥 기뻐 보이지 않는다. 이내 그는 절망하며 벽을 뚫기 위해 몸을 부딪히며 세계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발견한 진실로 향하는 문. 그 앞에는 그가 그토록 바라던 진실한 세계가 있지만 그는 선뜻 발을 떼지 못한다. 아마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이 세트장이 얼마나 안락한 곳인지를. 이 문 밖에서는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며, 세계 역시 자신을 위해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을 것이다. 차가운 진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하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다. 세계의 끝에서 그는 알깨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나갈 수 없을 거라는 크리스토프의 말에 그는 “못 볼지도 모르니까 미리 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이란 말과 함께 밖으로 나간다. 그는 자신을 유희거리로 소비하는 관음적 세계에서 드디어 벗어났다.
쇼에서 벗어나 진실한 삶을 찾아가는 트루먼의 이야기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가치를 잃지 않고 회자된다. 실제 사람들의 삶도 영화 속 ‘트루먼 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매우 개인적인 일상을 촬영해서 콘텐츠로 활용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들을 따르는 팬들 역시 존재한다. 유튜브에만 들어가도 수많은 ‘트루먼 쇼’가 있다. 때때로 사람들은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향해 “페이스북 스타(혹은 인스타 스타) 되고 싶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보이진 않지만 이미 누군가가 보고 있는 세계에서 사는 데 익숙해졌다.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처럼 변해 버린 지금, <트루먼 쇼>는 관객들에게 쇼가 아닌 진실한 삶을 살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서로 관음을 하고, 당하는 게 익숙해진 세계 속에서 자유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인간(true-man)이 되기 위해선 자유의지를 기억해야 한다. 만약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예쁜 카페에 가거나, 남의 시선을 너무 많이 신경 써서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거나, 연극하듯이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한 번 <트루먼 쇼>를 꺼내보는 것을 추천한다.
씨네플레이 김명재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