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주기로 리바이벌된 세편의 <스타탄생> 영화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과거의 유산에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 <스타탄생>은 관객의 뇌리에서 잊혀져갈 때쯤 새로운 제작진을 앞세운 리메이크작으로 새 시대의 관객을 만났다. 1954년에는 뮤지컬영화 스타 주디 갈런드와 제임스 메이슨이 주연을 맡은 <스타탄생>이, 1976년에는 미국 대중음악계의 아이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출연한 <스타탄생>이 제작됐다.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을 맡고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주연을 맡은 <스타 이즈 본>까지 더하면 <스타탄생>은 두 세기에 걸쳐 세번의 리메이크작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은 셈이다. 할리우드의 역사를 되짚어보아도 이런 사례는 흔치 않다. 속편이나 외전의 형식을 빌려 새로운 영역으로 이야기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과 주연배우, 영화의 설정과 스타일을 재정비해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는 것 말이다.
알코올 문제가 있는 남자 스타가 우연한 계기로 만난 여자의 잠재력과 재능을 발견한다. 남자는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해 여자가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쌓을 수 있게 돕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여자는 점점 더 유명한 스타가 되어가는 반면, 남자는 온갖 구설에 오르며 점점 잊혀져간다…. 네편의 <스타탄생> 영화는 1937년작이 처음으로 선보인 이 이야기의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개봉을 앞둔 2018년작 <스타 이즈 본>을 제외하면, 세편의 <스타탄생> 영화는 모두 상업적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스타탄생>의 거듭된 성공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긴다. 할리우드는, 대중은 왜 이 이야기에 지치지 않고 매혹되는가? 각 영화가 그려낸 다채로운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풍경에 그 답이 있는 것 같다. 눈 깜짝할 새에 유행이 지나가고, 꿈을 좇아 LA로 온 수많은 이들이 명멸하는 ‘라라랜드’에서, 대중이 원하는 스타의 얼굴은 끊임없이 변모하곤 한다. 그리고 20여년 주기로 리바이벌된 세편의 <스타탄생> 영화는 이처럼 변화무쌍한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풍경을 유연하게 반영해왔다. 1937년작이 할리우드의 골든에이지를 배경으로 활약하는 고전적인 은막의 스타 커플을 조명한다면, 뮤지컬영화가 강세였던 1954년의 <스타탄생>은 노래와 퍼포먼스에 능한 주디 갈런드를 히로인으로 내세운다. 록음악이 유행했던 1976년작은 당대의 디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컨트리 뮤지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을 뮤직 페스티벌의 한가운데로 밀어넣는다. 이들 작품은 동시대 가장 뜨거운 대중문화의 뒤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조명하는 동시에 극중 배역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위대한 성취를 이룬 톱스타들을 영화에 출연시킴으로써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한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동시대 대중문화의 유행에 발맞춘 <스타탄생>의 리메이크 전략은 다소 고전적인 플롯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80여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동력을 제공했다.
브래들리 쿠퍼의 <스타 이즈 본>은 소셜 미디어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대에 도래한 네 번째 ‘스타탄생’ 영화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통틀어 1억5천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린 소셜 인플루엔서이자 그래미상을 여섯번 수상한 뮤지션 레이디 가가가 이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는 건 시의적절한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감독 브래들리 쿠퍼가 <스타 이즈 본>을 통해 보여주길 원한 건 쇠고기를 잘라 만든 의상을 입거나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파격의 아이콘으로서의 레이디 가가가 아니다. 소셜 미디어와 파파라치에 24시간 노출되어 있는 21세기 스타의 고단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과도 거리가 있다. 모두가 스타가 되길 원하는 시대, <스타 이즈 본>은 “명성과 화려한 삶 아래 놓여 있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탐구하고자 하는 영화라고 감독 브래들리 쿠퍼는 말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필요했던 건 팝스타 레이디 가가라기보다는(물론 그녀의 목소리는 이 영화의 중요한 자산이지만) 33살의 여성 스테파니 조앤 앤젤리나 제르마노타(레이디 가가의 본명)였을 것이다. <스타 이즈 본>에서 우리는 여주인공 앨리로 분한 ‘스테파니’의 모습을 보게 된다. 레이디 가가로서의 두꺼운 화장을 지우고 거의 노메이크업에 가까운 맨 얼굴에 본연의 갈색머리로 돌아간 그의 모습은 어쩐지 많이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