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개봉 4일 만에 7만 관객을 돌파하며 연상호 애니메이션 관객 수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이 영화. 그러나 <서울역>이 앞으로도 계속 주목을 끌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이다. 관객들 사이에서 호평과 혹평이 선명히 갈리기 때문이다. '믿고 보는 연상호!'라는 호평이 있는 반면, <부산행>이 남기고 간 의문들을 풀지 못해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는 의견까지 속출하고 있다. 쏟아지는 평들을 보고 있자니 <서울역>에 대한 확신이 흐려진다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다. 관객 유형별 <서울역> 가이드!
1. <부산행>의 ‘프리퀄’이라는 기대로 <서울역>을 찾았습니다 → 추천 지수 10%
<부산행>을 보고 좀비 바이러스의 시초와 심은경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안은 채 <서울역>을 찾은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애초에 연상호 감독이 구상해놓은 <부산행>과 <서울역>의 연결 고리는 그들의 기대와 다른 성격의 것이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의 프리퀄 형식으로 개봉할 <서울역>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부산행>과는 느슨한 연결 고리의 영화다. 요소 요소로 이어지는 것도 거의 없고, 두편이 완전히 일치하지도 않는다. 이렇게만 말해두겠다. <부산행> 열차 내 TV에서 나오는 뉴스 화면이 <서울역>의 세계다. 재난이 일어났고 그 재난 속에서 사람들이 폭도라고 치환돼가는 과정, 그것에 대한 영화다.”
-씨네21 1064호 [스페셜] <부산행>의 어떤 계보
연상호 감독은 <서울역>을 먼저 제작한 뒤 그 세계관을 확장해 <부산행>을 연출했다. <서울역>은 <부산행>의 석우(공유)와 수안(김수안)이 부산행 KTX에 오르기 전날 밤, 서울역의 아비규환을 다룬 이야기다. 영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부산행> 앞에 <서울역>이 놓여있다는 점에서, <서울역>이 <부산행>의 프리퀄이라는데 큰 무리는 없다.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한다.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해서 재생산하는 느낌들이 <부산행>과 <서울역>이 줄 수 있는 큰 재미이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서울역> 언론 시사회에서 연상호 감독
중요한 포인트는 두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에 전혀 접점이 없다는 점이다. 위 연상호 감독이 말한 ‘재생산’이라는 단어에서, <부산행>과 <서울역>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할 뿐 담고 있는 이야기가 전혀 다를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부산행>의 좀비 1호 심은경은 <서울역>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부산행> 속 인물들이 열차를 타기 전날 밤의 상황은 충분히 <서울역>만의 세계로 탄탄히 구축되어 있으며, 같은 세계 속 다른 인물 군상들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두 영화 모두 나름의 재미가 있는 작품들이다. 극과 극에 놓인 재미이니만큼, <서울역>은 가족과는 함께 보지 않는 걸 추천한다.
2. 좀비물을 좋아합니다 → 추천 지수 50%
<부산행>은 좀비물 마니아들에게는 다소 실망을 안겨주었던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은 좀 다를까? <서울역>은 '좀비'의 비주얼보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비주얼에 더 집중한 영화다. 좀비물의 장르적 재미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는 것이 좋다. <부산행>을 감당한 관객들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수위. 그렇다고 해서 긴박감, 박진감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달리는 KTX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던 <부산행>과 달리, <서울역>은 보다 더 넓은 공간을 사용한다. 4차선 도로, 지하철역, 경찰서, 병원 등, 혜선(심은경)을 찾는 과정에서 석규(류승룡)와 기웅(이준)이 이동하는 동안 마주하는 수많은 공간들의 좀비들은 제각각 다른 섬뜩함을 지니고 그들에게 달려든다. 몇 장면은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의 뇌리에 선명히 남을 정도로 훌륭하니 액션은 기대하고 가도 좋다.
3. <부산행>을 보면서 '신파 코드'에 맥이 빠졌습니다 → 추천 지수 80%
이런 분이라면 환영이다. <서울역>에서 신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삶을 이어가는 순간순간이 벅찬 이들에게 '신파'란 사치일 뿐이다.
<부산행>이 KTX를 탈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서울역>은 살아남기 위해 KTX에 몰래 올라타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임신한 성경(정유미)의 배를 쓰다듬는 상화(마동석), '내 친구들 아직 안 탔단 말이에요!'라며 울부짖는 진희(안소희) 등 예고편만 봐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부산행>과 달리, <서울역>은 영화를 이루는 모든 것이 건조하기만 하다. 받아줄 곳도, 돌아갈 곳도 없는 사람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일말의 희망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서울역>은 현실 사회 속 약자들에 대한 편견을 필터 없이 그대로 비춰준다. 좀비 떼들에게 쫓기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사회가 좀비라는 실재로 변환되어 이들을 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부산행>의 눈물 어린 희생은 이곳에선 판타지. 약자에게 도움을 주었다간 바로 좀비에게 물어 뜯기는 게 현실이다. 러닝 타임 내내 이를 맨 얼굴로 마주하다 보면 끔찍함까지 느껴진다.
4. 연상호 감독의 작품 세계를 좋아합니다 → 추천 지수 100%
이미 그의 팬인 관객이라면 <서울역>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비추는 '연상호 감독=염세주의'의 공식은 전작들보다도 이 영화에서 선명히 성립된다. <서울역>의 메인 예고편은 경찰 버스로 인해 골목 안에 통제되어 갇힌 시민들을 비추며 시작한다. '좀비'가 등장한 재난 상황에 노출된 사람들이 보호받기는커녕 통제되고 갇혀버리는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을 환기시키며 좀비보다 더 무서운 공포가 있음을 각인시킨다.
좀비가 날뛰는 상황 속에서 인물들은 말 그대로 순간순간을 살아간다. 영화 속 이들의 호흡을 쫓고 있자면 자연스레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공기까지 전해지는데, 이 과정에서 질문이 생긴다. 속수무책 좀비로 변해버리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끝까지 인간으로 살아남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서울역>은 좀비와 사람이 구분되지 않는 세상을 그려낸다. <서울역>의 상황이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다가온다는 것. 이 영화가 지닌 가장 무서운 힘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코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