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에 ‘상영시간 내내 수다쟁이여서 더 좋았던 영화’(링크)를 소개했었다. 이번 주 뒹굴뒹굴VOD는 정반대로 ‘대사가 적어서 자막 없이도 볼 수 있을 영화 5’를 준비했다. 막상 정리해보니 대사는 적어도 자막이 필요한 영화들이긴 하다. 영어가 아니라 불어나 독일어를 쓰는 영화들이니까. 어쨌든 대사는 확실히 적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아티스트>, <트라이브>, <벨빌의 세 쌍둥이>, <토리노의 말>를 소개한다. 이 영화들은 10월 20일(토)부터 26일(금)까지 N스토어에서 50% 할인된 가격으로 만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

감독 스탠리 큐브릭|출 케어 둘리, 게리 록우드 |1968|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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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수식하는 가장 유명한 찬사는 “인간이 달에 가기도 전에 만든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이 문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재현적 특징을 넘어 영화가 품은 철학까진 다다르지 못한다. 큐브릭은 인류의 진화를 묘사하기 위해 수많은 대사 대신 영상과 이야기의 은유를 선택했다. (뼈 도끼에서 지구 궤도의 핵무기 위성으로 이어지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점프컷은 물론이고 데이브와 할의 결투(?) 장면, 총천연색의 스타게이트 장면 모두 설명적인 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위대한 SF 영화이자 가장 졸린 영화로 동시에 거론된다. 대사 없이 진행되는 내용은 사실 ‘꿈보다 해몽’급으로 모호하고, 철저히 고증된 우주 생활은 하나같이 느린 리듬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모호한 형이상학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며, 영화감독 큐브릭의 감각과 철학자로서의 자세를 만끽하기 딱 좋은 영화임은 틀림없다. 아, 이 영화의 원작인 단편소설 <파수>를 쓰고 큐브릭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소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집필한 SF의 대가 아서 C. 클라크도 잊지 말아야 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연 케어 둘리, 게리 록우드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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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The Artist

감독 미셀 하자나비시우스|출 장 뒤자르댕, 베레니스 베조, 존 굿맨|2011|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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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화는 무성영화의 변주에 불과하다” 일본 영화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말이다. 그의 발언은 “영화라는 매체가 아직 소리를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라는 뜻의 문장이었으나, 어떤 의미로든 기술이 발전한 지금의 영화가 과연 무성 영화보다 위대해졌는가를 고심하게 한다. “영화언어는 무성 시대에 대부분 진화를 마쳤다”고 말한 조지 밀러 감독(<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처럼 영화감독들 또한 무성 영화의 위대함을 익히 알고 있다.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아티스트>는 그런 점에서 탁월하다. 이 영화는 스타의 탄생과 몰락이란 전형적인 스토리를 그 시절 영화 매체의 특징으로 소화해 독창적인 시대물로 거듭났다. 단순히 무성 영화의 우수함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문화를 정확히 이해한 태도도 훌륭하다. 유성 영화가 등장한 시기를 그린 대표작 <사랑은 비를 타고>와 <아티스트>를 비교해보라. <사랑은 비를 타고>는 유성 영화의 사운드를 사용, 그것으로 코미디를 유발한다. <아티스트>는 배경음악으로 상황을 묘사하는 무성 영화의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현재의 관객들에게 유성 영화가 가져온 ‘충격’을 전한다. <사랑은 비를 타고>가 우리 시대에서 보는 그때를 그린다면(물론 이 영화도 고전이지만!), <아티스트>는 그때 시절을 우리에게 가져온다.

<아티스트>는 무성영화 특유의 방식을 채택해(적은 대사량은 그것에 따른 부가적인 특징일 뿐이다) 시대 재현이 아닌 시대 복구에 성공하며 보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리고 은연중에 영화와 기술이 어떤 관계이며 그것의 성취 혹은 필연적 실패를 통찰하게 한다. 현재의 영화가 아닌 영화의 현재를 즐겁게 고민해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아티스트>는 반드시 만나야 할 영화라 단언할 수 있다. 

아티스트

감독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출연 존 굿맨, 장 뒤자르댕, 베레니스 베조, 제임스 크롬웰

개봉 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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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브
Plemya

감독 미로슬라브 슬라보슈비츠키|출 그레고리브 페센코, 야나 노비코바|2015|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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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브>의 배경은 청각장애인 기숙학교. 전학생 세르게이(그레고리브 페센코)와 학교를 지배하고 있는 집단 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인물 간의 대화는 모두 수화로 이뤄진다. 그래서 대화는 있으나 대사는 없다. 미로슬라브 슬라보슈비츠키 감독은 연기 경험이 없는 실제 청각장애인들을 섭외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말이 아닌 언어로 평생을 살아온 이들의 삶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슬라보슈비츠키 감독의 용감한 선택은 그게 끝이 아니다. 극중 대화에 자막을 넣지 않았다. 그리하여 <트라이브>는 늘상 수다스럽지만 동시에 완벽한 적막의 세계로 거듭난다. 관객들은 이들의 대화를 ‘읽어내기‘ 위해 고단해지겠지만, 그만큼 영화 속으로 흠뻑 빠져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들’과 ‘나’의 경계가 가장 첨예해지는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어떤 영화에서도 만날 수 없는 기묘한 스릴감을 안겨줄 것이다. 

트라이브

감독 미로슬라브 슬라보슈비츠키

출연 그레고리브 페센코, 야나 노비코바, 로사 바비브

개봉 201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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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빌의 세 쌍둥이
Les Triplettes De Belleville

감독 실뱅 쇼메|출연 미쉘 코크투, 장-클로드 돈다, 미쉘 로빈|2016|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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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뱅 쇼메 감독의 애니메이션 중 <일루셔니스트>가 압도적으로 유명하기에, 이 자리를 빌려 그의 장편 데뷔작 <벨빌의 세 쌍둥이>를 소개한다. 할머니 마담 수자와 손자가 있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 자전거를 선물 받은 손자는 청년이 된 후 ‘투르 드 프랑스’(3,500km를 달리는 도로 사이클 대회)에 참가한다. 그런데 경기 도중 손자가 납치되고 할머니는 손자를 찾으러 벨빌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수이자 배우인 세 쌍둥이 자매를 만나게 된다.

<일루셔니스트> 같은 따스한 느낌의 회한을 기대한다면 오산. <벨빌의 세 쌍둥이>는 기하학적으로 과장된 작화 스타일처럼 다소 그로테스크하고, 너무 익살스러워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담긴 수많은 아름다움을 지나치긴 아쉽다. 무성영화에 대한 그리움, 우리가 놓치는 일상의 사운드를 음악으로 재구성한 영리함에서 실뱅 쇼메 감독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엔딩이 정말 특별하다. 인생의 75분을 이 영화에 투자하면, 값진 감정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장담해본다. 

벨빌의 세 쌍둥이

감독 실뱅 쇼메

출연 미쉘 코크투, 장-클로드 돈다, 미쉘 로빈, 모니카 바이거스

개봉 201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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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의 말
A TORINOI LO

감독 벨라 타르|출연 에리카 보크, 야노스 데르즈시|2012|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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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는 1889년 1월 3일, 시장에서 한 마부가 말을 채찍질하는 걸 본다. 그는 갑자기 길거리에서 넘어지기까지 하며 채찍질 당하는 말에게 다가가더니, 말에게 매달려 엉엉 울었다. 집으로 돌아간 니체는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10여 년을 정신이 나간 상태로 살다가 숨을 거뒀다. 벨라 타르 감독의 <토리노의 말>은 니체가 목격한 그 말, 그 마부의 행적을 뒤따른다.

흑백이다. 대사도 없다. 러닝타임이 146분인데, 롱테이크로 악명 높은 벨라 타르 감독답게 쇼트는 고작 30개. <토리노의 말>은 결코 쉬운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시대의 거장이라 불린 벨라 타르의 영화적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6일간의 반복되는 일상을 규칙적으로 담아낸 방식(쇼트가 30개인 것에도 이유가 있다)은 관객에게 ‘존재‘하는 것,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그 질문은 너무나 간결하고 그 해답은 지나치게 방대하기에, <토리노의 말>은 설명이 될 대사들을 의도적으로 덜어낸 건 아닐까.

토리노의 말

감독 벨라 타르

출연 에리카 보크, 야노스 데르즈시

개봉 201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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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