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창궐>이 사극 좀비물이란 장르를 열어젖혔다. 조선 말기, ‘야귀’라는 존재가 활개치면서 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생존기와 암투를 그린다. 좀비는 호러의 하위 장르 중 가장 대중적인 소재이다. 한국에서도 좀비 영화는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이제서야 사극 좀비물이 개봉한 걸까. 한국의 좀비 영화와 사극 좀비물을 돌이켜보자.

- 창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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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성훈
출연 현빈, 장동건
개봉 2018.10.25.
5분 만에 읽는 한국 좀비의 계보
한국 영화의 첫 좀비물은 1980년 개봉한 <괴시>로 알려져있다. <괴시>는 죽은 시체들이 살아나 인간을 공격한다는 좀비 장르의 기본 틀을 고스란히 한국 영화에 적용한 첫 영화였다. 물론 주인공은 중국인이고, 좀비가 등장한 이유가 한·미·중 합작으로 만든 초음파 송신기라는 다소 괴이한 설정이 관객들을 설득시켰을지 궁금하다. 거기다 <괴시>가 <렛 슬리핑 콥시즈 라이>(1974)의 스토리를 완전히 본뜬 표절작이니, 최초의 한국 좀비 영화란 타이틀도 조금 씁쓸하게 느껴진다.
2006년 유일한 작가의 공포소설 시리즈 ‘어느날 갑자기’를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4부작이 개봉했다. 그중 <어느날 갑자기 네번째 이야기 - 죽음의 숲>에서 오랜만에 좀비가 등장했다. 산으로 여행을 간 다섯 남녀들이 좀비를 만나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본 사람이라면, 혹은 시놉시스만 읽어도 샘 레이미 감독의 출세작 <이블데드>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알아챌 수 있다.
공포 영화는 대개 저예산으로도 제작 가능하다. 현재의 ‘좀비’라는 개념을 확립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도 그랬다. 한국에서도 좀비 영화는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보다 독립영화, 저예산 영화, 옴니버스 영화로 자주 제작됐다. <인류멸망보고서>의 ‘멋진 신세계’ 에피소드, <무서운 이야기>의 ‘앰뷸런스’ 에피소드가 그 예다. ‘멋진 신세계’는 당시 화젯거리였던 광우병을 접목시킨 다소 코믹한 톤으로 좀비를 소화했다면, ‘엠뷸런스’는 이미 좀비로 점령된 사회의 구급대원들을 통해 전통적인 공포를 묵직하게 그렸다.
2010년 개봉한 <이웃집 좀비>는 제목처럼 좀비를 전면으로 내세웠다. 이 영화 역시 여섯 편의 단편을 엮은 옴니버스다. 2천만 원으로 제작진이 십시일반한 작품이라 다소 엉성하지만, 여섯 편의 단편으로 장르의 한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좀비로 풀어낸 로맨스나 가족 드라마는 구태의연한 스토리를 좀비란 소재로 참신하게 들려주고, 도입부와 에필로그는 저예산 속에서 실험적인 연출을 멈추지 않으려는 감독의 마음마저 느껴진다.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새벽의 저주>, <나는 전설이다>, <월드워Z> 등 외국 좀비 영화들은 꾸준히 흥행했다. 하지만 한국 영화에 좀비 자리가 없던 시절, 그 자리를 만들어준 건 2016년 개봉한 <부산행>이었다. 애니메이션 연출을 하던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란 불안감을 완전히 불식시키며 천만 관객, 심지어 2016년 최다 관객에 등극했다. <부산행>의 흥행은 다양한 좀비 영화 제작 소식의 신호탄이 됐다.
최초 사극 좀비물은 <창궐>이 아녔다?
<창궐>보다 먼저 최초의 사극 좀비 영화가 될 뻔한 작품이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야차>. 류승완 감독이 2006년경 준비하고 있었던 <야차>는 통일신라 시대에 좀비가 등장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당시 기획은 통일 신라 직후 당나라와 신라의 국경에서 펼쳐질 공포 영화였다. 또 사람을 잡아먹는 시체 ‘좀비’와 불교에서 전해지는 반신반귀의 식인귀 ‘야차’를 적당히 혼합시킨 존재가 등장할 예정이었다.
만일 <야차>가 제작됐다면, <창궐>보다 더 신기한 영화였을 것이다. 영화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통일신라라는 배경, 액션으로 이름을 알린 류승완 감독의 공포 영화, 거기에 야차라는 새로운 설정의 좀비까지. 하지만 <야차>는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 제작이 취소됐고 최초의 사극 좀비물이란 타이틀은 10여 년이 흐룬 후 <창궐>에게 돌아갔다.
<창궐>의 뒤를 이을 <킹덤>, <반도>
국내에 상륙한 넷플릭스는 2017년 3월, 조선 좀비물 <킹덤>을 발표했다. <시그널>로 독보적인 장르를 개척한 김은희 작가와 <터널>, <끝까지 간다>로 궁지에 몰린 인간상을 탁월하게 그린 김성훈 감독이 프로젝트의 수장으로 발탁됐다. 캐스팅은 배두나, 주지훈, 류승룡. 2017년 10월 경 촬영에 들어갔다가 미술 스태프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2018년 중순 공개 예정이었으나 12월 경으로 변경됐다. 아직 공개 직전임에도 현재 시즌 2 제작이 확정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10월 말 심의 결과 당당히(?)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아 화끈한 좀비물이 될 것임을 알렸다.
<창궐>과 <킹덤>은 많은 분들이 혼동하고 있다. 둘 다 조선시대 배경의 좀비물에 하필 연출자 이름도 똑같으니 헷갈릴 만도 하다. 하지만 <창궐>은 처음부터 영화로, <킹덤>은 드라마로 기획된 작품이니 전혀 다른 작품으로 생각하는 게 맞다.
아직 멀었지만, <킹덤>이 공개되고 나면 영화 <반도>의 소식이 들릴 듯하다. <반도>는 <부산행> 연상호 감독의 신작으로 <부산행>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다. 현재 강동원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는 것 말고는 정확히 공개된 바는 거의 없다. 2019년 크랭크인 할 예정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