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악전고투였다. <원더풀 데이즈>는 그 악전고투를 상징하는 애니메이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국산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몇 단계 올릴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제작됐지만 그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애니메이션. 하지만 마냥 폄하하기에는 영상미에서 분명 의미 있는 성취를 거둔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원더풀 데이즈>는 서기 2142년, 핵전쟁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오염된 환경 속에서 그나마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인공도시 ‘에코반’과 난민들의 정착지인 ‘마르’의 대립과 암투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영화에 담긴 영상과 이미지의 세계는 국산 애니메이션의 악전고투 역사 속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부실한 시나리오는 관객의 발길을 극장으로 돌리는데 실패했다. 전국 관객 22만 명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원더풀 데이즈>는 가능성만을 남겨두고 다시 악전고투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가능성만을 품고 허무하게 끝나버린 <원더풀 데이즈> 안에서 음악만은 다른 영역에 있었다. 주제가 ‘비상’을 비롯해 원일이 만든 스코어는 <원더풀 데이즈>의 실패와는 달리 성공에 가까웠다. 결국 영화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영화음악의 운명이 있지만 <원더풀 데이즈>의 음악은 홀로 세워 얘기할 만했고 기억의 소멸 속에서도 음악만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음악을 맡은 원일의 이력과 배경은 사운드트랙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국악을 공부했지만 대중음악의 영역에도 가끔씩 몸을 담았다. 장영규, 백현진과 함께 어어부 프로젝트의 초기 멤버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어어부 프로젝트를 나와서는 ‘푸리’나 ‘바람곶’ 같은 실험적인 프로젝트에 몸담았고, 국악계에선 최고의 자리라 할 수 있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일했다. 지금은 국립극장의 중요한 행사 가운데 하나인 여우락 페스티벌과 지리산 화엄음악제에서 펼쳐지는 화엄음악제의 예술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원더풀 데이즈>의 사운드트랙 안에는 이런 원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 두루 담겨있다.
영화를 연출한 김무생 감독은 “음악이 영화의 영혼이 될 것”이라 말했다. 건조하고 쓸쓸한 이미지의 세계 속에서 음악이 영화에 온기를 더해줄 거라 믿었다. 원일의 유일한 독집 [Asura]를 듣고 자신이 상상하고 있는 소리의 이미지를 표현해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원일은 김무생 감독의 의도에 확실하게 부합했다.
김무생 감독은 ‘에스닉(ethnic)’하면서 한편으론 ‘컨템포러리(contemporary)’한 음악을 만들어주었으면 한다는 까다로운 바람을 전했지만 원일은 실제 민속적이면서 현대적인 음악을 만들어냈다. 원일의 이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오페라 아리아 같은 음악을 만드는 한편으로 우리 소리의 구음 같은 효과도 나게 했다. 체코까지 날아가 교향악단의 연주를 담으면서 또 한편으론 전자음악의 반복음으로 심장을 함께 뛰게 했다.
원일이 만든 스코어 사이에 있는 노래 ‘비상’은 나오는 순간 주위를 환기시킨다. 강현민이 만들고 유앤미 블루 출신의 이승열이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의 재등장을 알리는 이 멋진 곡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쓸쓸한 이미지의 영화를 대변한다. 대중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멋진 록 싱글이 그렇게 <원더풀 데이즈> 사운드트랙 안에 담겼다.
김무생 감독은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한곡에 기쁨과 슬픔, 과거와 미래가 다 담긴, 에스닉하면서도 컨템포러리한 음악. 말잔치지 이게 어디 설명인가”라며 자신의 요구가 큰 욕심이라는 것을 내비쳤다. 그리곤 덧붙였다. “그런데 원일 씨는 알아들었다.” 사운드트랙은 정재일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Wonderful Days Theme Ⅲ’로 마무리된다. ‘Aria’와 ‘Wonderful Days Theme Ⅲ’를 이어 들으며 김무생 감독의 말에 수긍했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