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 / <플로렌스>의 메릴 스트립

'사상 최악의 소프라노'로 불린 실존인물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를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영화 <플로렌스>가 8월 24일 개봉한다. 드넓은 스펙트럼과 깊은 연기력을 자랑하는 메릴 스트립은 <줄리 & 줄리아>(2009)의 줄리아 차일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의 안나 윈투어, <서프레저트>(2015)의 에멀린 팽크허스트 등 수많은 실존인물들을 연기한 바 있다. 특히 <철의 여인>(2012)의 마가렛 대처는 연기력뿐만 아니라 대처와의 똑닮은 외모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오늘 씨네플레이는 싱크로율 100%를 넘보는 실존인물의 연기 레전드들을 모아봤다.


<간디>
(Gandhi, 1982)

모한다스 간디 & 벤 킹슬리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신으로 손꼽히는 인물인 간디를 그린 영화 <간디>는, 그를 연기할 배우를 찾는 것부터 난항을 겪었다. 안소니 홉킨스, 존 허트, 더스틴 호프먼 등 수많은 배우들이 후보로 거론됐지만 결정은 계속 유보되었다.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건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인도계 무명 배우 벤 킹슬리였다. 캐스팅에 대한 반응은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뜨거웠다. 인도 촬영 당시, 지역의 노인들이 분장한 벤 킹슬리를 보고 그 비슷한 모습에 간디의 유령이라고 말하거나 엎드려 예를 표하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다고. 1982년 <간디>가 대중에게 공개된 이래 벤 킹슬리의 간디는 역대 최고의 배우/실존인물 싱크로율을 자랑하고 있다. 벤 킹슬리는 첫 영화 주연작 <간디>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링컨>
(Lincoln, 2012)

에이브러햄 링컨 & 다니엘 데이 루이스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과 미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의 만남. 스티븐 스필버그는 10년 넘게 제작에 공들인 끝에 <링컨>을 내놓았다. 링컨을 연기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모습은 보자마자 곧장 그를 떠올릴 만큼 비슷한 생김새를 자랑하지만, 본래는 이 역할은 리암 니슨이 맡기로 돼 있었다. 그가 자신이 점점 나이들어간다는 것을 이유로 하차하고, 스필버그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실존인물에 대한 부담을 이유로  정중하게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를 설득해내 완벽에 가까운 링컨을 창조해냈다. '영국 배우'인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모습뿐만 아니라 느리지만 강직한 말투와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완벽히 구현하며, <나의 왼발>(1989), <데어 윌 비 블러드>(2007)에 이어 세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링컨> VOD 보기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My Week with Marilyn, 2011)

마릴린 먼로 & 미셸 윌리엄스

인류 최고의 섹시스타 마릴린 먼로를 연기한다는 것. 여배우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하지만, 그만큼 부담도 막중한 역할이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의 미셸 윌리엄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맡았던 그 어떤 역할보다도 부담이 컸어요. 결국 제작진에게 여권을 맡겼죠. 언제라도 도망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먼로의 육감적인 몸매를 만들기 위해 체중을 늘려, 자는 시간까지 보정 속옷을 입고 생활했다. 양쪽 무릎을 묶고 걷는 연습을 반복했고, 앉으나 서나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자세를 유지하며 먼로의 동작을 체화했다. 고된 과정 끝에 미셸 윌리엄스는 화려한 풍모만큼이나 불안한 심리까지  모두 담은 여자 마릴린 먼로를 재현할 수 있었다.


<채플린>
(Chaplin, 1992)

찰리 채플린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2007년 <아이언맨>을 만나기 전까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대표작은 <채플린>이었다. <간디>를 연출한 리차드 아텐보로는 3년간의 고심 끝에 1980년대 중반 데뷔해 할리우드 청춘스타들 중 하나로 인기를 누리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채플린 역으로 선발했다. 파격적인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감독이기 전에 배우로 활동했던 리차드 아텐보로의 혜안이 돋보이는 캐스팅이었다. 이전까진 그저 잘나가던 스타였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채플린을 연기하면서 난생 처음 열정을 품고 연기에 임했다고 회고한다. 그는 채플린 특유의 얼굴과 버릇까지 세세하게 모사했을 뿐만 아니라, 채플린의 장기인 아크로바틱 액션까지 직접 소화해냈다. 채플린이 되기 위해 그의 취미인 테니스를 배우고, 포크를 들어올리는 동작까지 연습했던 집념이 낳은 성과였다.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밥 딜런 & 케이트 블란쳇

대중음악사 전반에 뻗어 있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밥 딜런의 개인사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실험적인 이미지와 단단한 드라마로 이름을 알린 토드 헤인즈 감독은, 밥 딜런이란 인물이 상당 부분 미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영화의 형식으로 삼았다. 총 여섯 명의 배우가 밥 딜런을 연기하는 <아임 낫 데어>에서 높은 싱크로율, 아니 유일하게 그와 비슷한 외모를 자랑하는 건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주드(영화 속에서 밥 딜런이란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뿐이다. 역사에 각인된 밥 딜런의 가장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그 누구도 아닌 케이트 블란쳇에게 맡겼다는 점은, 데뷔 이래 줄곧 젠더에 대한 문제를 고민해온 퀴어 시네아스트인 토드 헤인즈의 뚜렷한 인장이라 할 만하다. <아임 낫 데어> VOD 보기


<라 비 앙 로즈>
(La Vie en rose, 2007)

에디트 피아프 & 마리옹 코티아르

<라 비 앙 로즈>는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따라간다. 올리비에 다한 감독은 애초부터 마리옹 코티아르를 떠올리고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실존인물을 연기한 많은 배우들이 해당 인물의 외모와 어느 정도 유사한 것과 달리, 마리옹 코티아르는 에디트 피아프와 거의 닮지 않았다. 하지만  <라 비 앙 로즈>의 마리옹 코티아르는 분명 에디트 피아프의 현현처럼 보인다. 이마 위의 헤어라인을 뒤로 밀고, 눈썹을 모두 깎아  다시 그린 후, 촬영 때마다 메이크업으로 5시간을 써서 얻어낸 모습이다. 그녀의 공은 비슷한 외모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리옹 코티아르는 아직 가수가 되기 전부터 술과 마약에 절어 생의 벼랑 끝에 선 48세까지, 에디트 피아프의 복잡다단한 세월 순간순간을 매번 미묘하게 다르게 보여주었다. 아카데미를 비롯한 2007년 즈음 거의 모든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은 바로 마리옹 코티아르의 몫이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