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마이클 마이어스가 돌아온다. 40년만의 귀환이다. 1978년 존 카펜터 손에서 태어난 <할로윈>은 30만 달러로 제작돼 전 세계적으로 7천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기록하며 슬래셔의 전설이 되었다. 이후 8편의 속편과 2편의 리부트작을 내놓은 이 호러 시리즈는 저예산 호러의 명가인 블룸하우스와 손잡고 새롭게 단장했다. 사실 시리즈 내내 세계관이 이상하게 꼬이는 바람에 어디서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을 텐데, 제작진은 아예 사그리 전작들을 무시하고 78년 원작에서 바로 이어지는 타임라인을 선택하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따라 외전에 가까웠던 3편을 제외하고 2편과 4-6편으로 이어지는 로리의 딸 제이미가 등장하는 설정도 사라지고, 2편과 7-8편으로 이어지는 상황도 아니며, 롭 좀비가 리부트한 세팅도 배제된 채, 40년 만에 처음 마이클 마이어스가 탈옥하는 시점으로 이야기가 재편됐다.

<할로윈>(2018) 이전의 시리즈들. 이번 <할로윈>은 1편을 제외하곤 모조리 ‘없었던 일’로 취급한다

압도적인 흥행과 평가의 2018 할로윈
제이미 리 커티스와 카일 리처드. 두 사람은 <할로윈>(1978)에 함께 출연했다

북미에선 무려 첫 주 3일 만에 7750만 달러라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는데, 10월 개봉 성적으론 8천만 달러의 <베놈>에 이어 두 번째이자, <할로윈> 시리즈 사상 최고 수익인 동시에, 슬래셔 호러 사상 최고 오프닝 수익에, R등급 호러에서도 <그것>에 이어 두 번째 오프닝 수익을 기록했고, 55살 이상의 여성이 주연한 영화로 최고 수익을 올린 작품이 되었다. 2주차 주말에도 1위를 기록하며 장기 흥행을 짐작케 한 터라 블룸하우스 최고 흥행작인 <겟 아웃>의 1억 7600만 달러에도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정도 반향을 불러올 것이란 기대감은 어느 정도 감지됐다. 원작자인 존 카펜터와 원조 스크림 퀸 제이미 리 커티스 그리고 원조 살인마(이자 감독이고 각본가이며 카펜터의 친구이기도 한) 닉 캐슬을 모두 불러온 것은 물론, 인디영화계에서 인정받았던 데이빗 고든 그린을 영입해 연출과 각본을 맡긴 것이 주요했다.

‘몬도’사가 디자인한 <할로윈>(1978) 포스터

시사회와 각종 영화제에서 사전 공개된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원작의 예우를 담으면서도 시대적 상황에 맞게 변화된 모습을 보인 최고의 속편이자, 기존 슬래셔의 문법을 영리하게 반격하는 작품이란 극찬이 줄이어졌다. 사실 <할로윈>이 슬래셔의 효시는 아니다. 이전에 마리오 바바의 <블러드 베이>나 <블랙 크리스마스>, 토비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 등이 70년대 초부터 꾸준히 만들어져 왔다. 하지만 <할로윈>은 이 모든 요소들을 종합해 하나의 전형을 완성시켰고, 이후 만들어진 <13일의 금요일>이나 <나이트메어>, <스크림> 등을 위시한 거의 모든 슬래셔들은 이 모범사례를 충실히 따랐다. <할로윈>은 모던 호러의 기착점이자 슬래셔의 완성형으로, 지금까지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물론 호러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테마를 가진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호러 영화 음악 사상 최강의 테마
존 카펜터 감독

존 카펜터 감독 자신이 직접 작곡한 이 불멸의 테마는 5/4박자의 혼합박자로 이뤄진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신디 사운드로, 비록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심포닉 스코어는 아니지만, 불세출의 마에스트로 버나드 허먼과 엔니오 모리꼬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피력하고 있다. 현악기가 들려주는 높은 음색이나 베이스가 가진 중저음의 톤 등 특정 악기들의 기본적인 특성을 잘 활용할 줄 알았던 그들의 원칙을 <할로윈>의 신디 사운드에서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거기에 당시 유행한 <엑소시스트>에서 마이크 올드필드의 ‘Tubular Bells’나 <써스페리아 2>(원제: 딥 레드)에서 음악을 맡은 고블린 스타일까지 영향을 받으며 그는 단 3일 만에 이 혁명적인 스코어를 완성시켰다. 이미 앞서 <다크 스타>와 <분노의 13번가>에서도 예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음악을 만든 바 있기에 존 카펜터에게 이건 자연스럽고도 필수불가결한 작업이었다.

악보를 쓰거나, 볼 줄 몰랐지만 음대 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음악적 소양을 발휘한 그는 대학 시절부터 아마추어 밴드 활동을 했고, 자신이 참여한 단편에서도 음악을 맡곤 했다. <다크 스타>에서부터 <화성의 유령들>까지 쭉 일관되게 신디 사운드를 고수하며 여러 전자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정작 그는 이 악기가 많은 소리들을 다룰 수 있게 해서 사용할 뿐이지 신디사이저 자체에 대한 흥미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할로윈>의 영향으로(물론 동시에 예산적인 측면도 고려되었겠지만) 80년대 슬래셔의 두 축인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 시리즈는 물론 여러 호러 영화들에서도 신디 사운드가 적극 활용되었고, 2000년대 이후 만들어진 작품들에서도 장르적 기시감과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이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카피하곤 한다. 2014년 인상적이었던 복고풍 호러 <팔로우>나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존 카펜터가 작곡한 <할로윈>(1978)의 테마곡

감독이 아닌 영화음악가로서의 귀환
대니 럭스가 작곡한 <할로윈 8 - 부활> OST 커버 아트

존 카펜터는 1편에서 3편까지 직접 <할로윈>의 음악을 맡았으며, 4에서 6편까지는 카펜터에게 기술적 도움을 줬던 동료이자 <뉴욕 탈출>과 <빅 트러블> 등 여러 편의 영화에서 같이 작업했던 알란 하워스가 음악을 이어갔다. 20주년 기념작으로 만들어진 7편에서는 브라이언 싱어의 편집자이자 영화음악가로 잘 알려진 존 오트만이 맡아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심포닉 사운드를 구현했으며, 8편은 TV에서 주로 활약하는 대니 럭스가 그 기조를 이어받아 시리즈를 매조지었다. 롭 좀비가 리메이크한 두 편에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존 윅>으로 잘 알려진 타일러 베이츠가 더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사운드로 임팩트를 던진 바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시리즈 내내 카펜터가 직조해낸 섬뜩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테마의 아우라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규칙적인 리듬과 차가운 신디의 질감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긴장과 공포는 오히려 단조로운 원 스타일에 가까워질수록 더 강력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블룸하우스 버전의 이번 <할로윈>에서 가장 공을 들인 건 바로 영화음악가 존 카펜터였다. 제작자 제이슨 블룸과 데이빗 고든 그린 감독은 다른 작곡가들이 흉내 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오리지널 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존 카펜터는 그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며 기꺼이 ‘양치기’가 되겠다고 자처했다. 무려 1982년 <할로윈 3> 이후 36년 만에 시리즈 음악가로 복귀였다. 재밌게도 카펜터는 2010년 연출한 <더 워드>를 끝으로 뒤늦게 음악 활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는 뭘 해야 될지 묻는 배우들이나 기다리는 스탭들, 편집실 가는 일과 보류 중인 개봉날짜 등이 없는 이 작업에 대해 재밌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십여 장이 넘는 사운드트랙을 세상에 내놓은 그이지만 2015년 2월 첫 스튜디오 데뷔 앨범 <Lost Themes>를 발표했고, 다음 해엔 두 번째 앨범 <Lost Themes II>를 내놓으며, 할로윈 즈음엔 음악가로서 첫 투어마저 가졌다. 그리고 그 투어활동은 작년과 올해에도 계속된다.

<Lost Themes> / <Lost Themes II> 커버 아트

시점의 변화가 가져온 끈질긴 생명력의 테마
(왼쪽부터)코디 카펜터, 존 카펜터, 다니엘 데이비스

자신의 아들인 코디 카펜터와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킹크스’의 멤버인 데이브 데이비스의 아들이자 카펜터의 대자(代子)이기도 한 다니엘 데이비스와 함께 작업한 이들 앨범은 프로그레시브 락과 일렉트로닉 경계 어딘가에서 복고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건 고스란히 이번 <할로윈>에서도 이어진다. 멜로트론과 무그, 롤랜드 주노, 데이브 스미스 OB-6, 롤랜드 시스템 1과 8, 그리고 활을 쓴 기타나 각종 페달 등 여러 악기들을 동원하면서 물량적으론 오리지널에 비해 더 풍족한 조건을 갖췄지만, 원작이 가진 정신과 매력을 재현하며 이번 속편만의 새로움도 부여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78년도 스코어가 소름 끼치도록 다가왔던 가해자 관점에서의 사운드였다면, 이번 18년도 스코어는 오랜 시간 반격을 준비해온 피해자 시점에서의 사운드를 펼쳐 보인다. 같은 공포와 긴장을 품고 있는 음악이지만 이 시점의 변화가 던지는 질감의 차이는 대단히 크고 효과적으로 다가온다.

<할로윈>

78년도 <할로윈>의 몇몇 장면들이 새롭게 변주되며 피해자였던 로리에게 의미를 부여하듯, 존 카펜터의 빈티지한 사운드 역시 로리의 사투를 응원하며 단죄의 음악으로 결연한 심정과 피폐해진 심리 상태를 대변한다. 40년간 이어진 이 테마의 끈질긴 생명력은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는 마이클 마이어스를 빗댄 것이 아닌, 괴물과 싸우고 가족을 지키며 성장해가는 로리와 닮은 건지 모른다. 


그리고 이스터 에그 하나
<할로윈> OST 커버 아트

데이빗 고든 그린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존 카펜터를 위해 깜작 선물을 준비해뒀다고 밝혔다. 노래 판권을 살 형편이 안 돼 제이미 리 커티스와 카펜터가 직접 애드립으로 지은 노래를 이번 영화에서 다시 활용해 삽입한 것이다. 1978년도 느낌으로 컨트리 송 느낌 나게 밴드가 부르는 이 노래는 소년과 아버지가 자동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영화를 보던 존 카펜터가 “잠깐만... 이거 내가 만든 노래잖아!” 하며 뻥 터졌다고.

할로윈

감독 데이빗 고든 그린

출연 주디 그리어, 제이미 리 커티스

개봉 20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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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감독 존 카펜터

출연 도널드 플레젠스, 제이미 리 커티스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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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