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편리한 게 참 많아졌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못하는 게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도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하며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있다. 이번주 ‘무비알쓸신잡’에서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들을 정리해봤다.


크리스토퍼 놀란

크리스토퍼 놀란(<인터스텔라> 촬영 당시)

일반 관객도 잘 알 만큼 크리스토퍼 놀란은 현재 아날로그 제작 방식의 최전방에 있는 감독이다. 디지털 대신 필름으로 촬영하는 건 기본이다. CG 대신 실물을 촬영하는 걸 선호하는 그는 <인터스텔라>의 방대한 옥수수밭, <인셉션>의 뱅글뱅글 돌아가는 세트,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배트카까지 실제로 만들어서 촬영한 바 있다. 영화마다 일화가 너무 많아 매번 화제일 정도. 그동안 영화를 잘 만든 덕분에 다른 감독들에 비해 제작 권한이 굉장히 커서 자신의 작업 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인터스텔라>의 옥수수 밭 /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오토바이 시연

최근작 <덩케르크>에서도 그의 미학은 유효하다. 수많은 군인들을 CG로 넣는 대신, 지역 주민들을 엑스트라로 고용하고 판자에 군인 그림을 그려 세워놓는 등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했다. 특히 아이맥스 촬영의 선두주자답게 비행기에 아이맥스 카메라를 달아 촬영했다. 아이맥스 카메라는 일반 카메라보다 무겁고 크기도 큰 탓에 결국 비행기 개조까지 강행해야 했다고. 놀란 감독의 철두철미한 연출과 기획, 그리고 무조건 현장을 지키는 의지에 현장 스태프들도 혀를 내두르며 그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고.

<덩케르크> 촬영장. 왼쪽 사진을 봉을 잡고 있고, 오른쪽 사진에 맨 앞 우측이 놀란 감독
덩케르크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톰 하디, 킬리언 머피, 케네스 브래너, 마크 라이런스, 해리 스타일스, 핀 화이트헤드, 아뉴린 바나드, 톰 글린 카니, 잭 로던, 배리 케오간

개봉 2017.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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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매튜 맥커너히, 앤 해서웨이, 마이클 케인, 제시카 차스테인

개봉 2014.11.06. / 2016.01.14.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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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

폴 토마스 앤더슨(<인히어런트 바이스> 촬영 당시)

간단히 말하자면 ‘필름의 수호자’. 장편 데뷔작 <리노의 도박사>부터 최근작 <팬텀 스레드>까지. 8편의 장편 영화를 모두 35mm 필름으로 촬영했다. 그래서 작품이 끝날 때마다 ‘필름’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의 말을 옮기자면 “처음 영화를 만들 때부터 이걸 써왔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또 “필름 촬영은 모든 걸 쉽게 망칠 수 있기에 긴장감이 있지만 그 스릴 때문에 더 아름다워 보인다”며 필름 특유의 미학을 언급했다. 다만 결코 ‘안티 디지털’인 건 아니라고 신신당부했다. <부기 나이트>나 <매그놀리아>의 롱테이크를 떠올려보면 이 감독의 연출력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경탄이 나온다.

<인히어런트 바이스> 마틴 숏과 폴 토마스 앤더슨

여기서 필름 촬영이 왜 특별한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런 말이 있다. 필름으로 촬영을 시작하면,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누르고 30초마다 500원을 땅에 던지는 거라고. 그만큼 제작료가 쑥쑥 올라간다는 거다. 또 과거 필름 촬영은 촬영 직후 바로 모니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촬영 감독의 능력과 권한이 극대화된다. 지금이야 모니터가 가능하긴 하지만. 메모리 카드만 갈아끼우면 되는 디지털 촬영과 달리, 필름 촬영은 필름을 통째로 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인화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린다.

팬텀 스레드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빅키 크리엡스

개봉 2018.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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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 나이트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마크 월버그, 줄리안 무어, 돈 치들, 헤더 그레이엄, 루이스 구즈만, 필립 베이커 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토마스 제인, 리키 제이, 윌리암 H. 머시, 알프리드 몰리나, 니콜 아리 파커, 존 C. 라일리, 버트 레이놀즈, 로버트 리젤리, 멜로라 월터스

개봉 199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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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쿠엔틴 타란티노(<헤이트풀8> 촬영 당시)

그의 영화가 늘 참신한 맛이 있어 잊곤 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는 “필름으로 찍지 못하면 영화 연출을 관두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 고전적인 필름광이다. 그가 연출한 모든 영화는 필름으로 촬영했고, 최근작 <헤이트풀8>은 65mm 필름으로 촬영하고 70mm 필름으로 상영하기도 했다. 그가 유일하게 디지털 영화를 손댄 건 친구 로버트 로드니게즈의 <씬시티> 객원 연출뿐이다. 후반 작업이 손쉬운 디지털 촬영을 선호하는 로드니게스의 권유로 딱 한 시퀀스를 연출했다. 그러나 그 뒤에도 필름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걸 보면 디지털이 영 손에 맞지 않은 모양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촬영장
<헤이트풀8>의 쿠엔틴 타란티노와 촬영감독 로버트 리처드슨(맨 오른쪽)
헤이트풀8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사무엘 L. 잭슨, 커트 러셀, 제니퍼 제이슨 리, 월튼 고긴스, 데미안 비쉬어, 팀 로스, 마이클 매드슨, 브루스 던, 채닝 테이텀

개봉 2016.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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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시티

감독 프랭크 밀러, 로버트 로드리게즈,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브루스 윌리스, 미키 루크, 제시카 알바, 클라이브 오웬, 닉 스탈, 파워스 부스, 룻거 하우어, 일라이저 우드, 로사리오 도슨, 베니시오 델 토로, 제이미 킹, 데본 아오키, 브리트니 머피, 마이클 클락 던칸, 칼라 구기노, 알렉시스 브레델, 조쉬 하트넷

개봉 200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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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링클레이터

리차드 링클레이터(<비포 선라이즈> 촬영 당시)

<비포> 삼부작으로 유명한 리차드 링클레이터는 2015년 이후 디지털 촬영으로 전향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이름은 ‘필름으로 가장 긴 시절을 촬영한 감독’으로 기억해둘 만하다. 한 소년의 성장기를 실제로 12년간 촬영한 <보이후드>는 35mm 필름으로 찍었으니까. 첫 데뷔작 <슬래커> 전, <독서로 경작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이란 8mm 필름 장편 영화를 촬영했다. 2001년 <테잎>이란 옴니버스 영화에서 진짜 DV 테이프로 영화를 만들기도. 2011년 <버니>부터 디지털 촬영으로 본거지를 옮기기 전, 이렇게 매체를 사용했으니 ‘가장 다양한 포맷을 사용한 감독’으로 봐도 될 듯하다.

<테잎> 촬영 현장(링클레이터 감독은 없다) / <나와 오손 웰스> 촬영장
보이후드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엘라 콜트레인, 에단 호크, 패트리샤 아퀘트, 로렐라이 링크레이터

개봉 201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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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래커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리처드 링클레이터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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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미언 셔젤

데이미언 셔젤과 라이너스 산드그렌 촬영감독(<퍼스트맨> 촬영 당시)

이 감독들의 뒤를 이을 ‘필름 키드’라면 데이미언 셔젤이 있다. 데뷔작 <위플래쉬>를 제외하고 <라라랜드>, <퍼스트맨> 모두 필름으로 촬영했다. 특히 두 영화 모두 16mm를 섞어 특정 장면을 더욱 부각시키는 영리함도 보여줬다. 또 가급적 CG 사용을 절제하는 것도 아날로그적이다. <위플래시>나 <라라랜드>나 배우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했고, <라라랜드>에서 아름다운 하늘을 담고자 매직아워(해가 완전히 지기 직전의 시간)에 촬영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퍼스트맨>에서도 NASA에서 실세로 사용한 훈련기구에 라이언 고슬링을 태우고 뱅글뱅글 돌리고, 낙하산에 태워서 착륙 장면을 찍는 등 여지없는 악취미(?)로 생동감을 잡아냈다.

카메라 감독을 콕 찌르는 사람이 데이미언 셔젤 감독.
<퍼스트맨> 메이킹 필름. 2분 45초부터 라이언 고슬링의 고난이 시작된다.
라라랜드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엠마 스톤, 라이언 고슬링

개봉 2016.12.07. / 2017.12.08.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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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맨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라이언 고슬링, 클레어 포이

개봉 20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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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 공드리

미셸 공드리(왼쪽, <무드 인디고> 촬영 당시)

앞선 감독들이 ‘아날로그’라면 미셸 공드리는 ‘수작업’ 정도가 어울린다. 미국에서 제작한 작품과 프랑스에서 제작한 작품들을 보면 확연히 달라 보인다. <수면의 과학>의 꿈 장면이나, <무드 인디고>의 장면 대부분에서 핸드메이드 아트를 느낄 수 있다. 비디오 대여점의 모든 비디오에서 내용물을 날리면서 직원들이 수작업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연출한 걸 보면, 수작업에 애정이 많은 감독의 마음이 느껴진다. 최근 드라마 <키딩>을 제작·연출했는데, 여기서도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원신 원컷이 인상적이다.

드라마 <키딩>의 메이킹 필름
실제로 구름 모형을 띄우고 (<무드 인디고> 촬영 현장)
영화 속 투명 차를 위해 차 하나를 싹 다 개조했다(<<무드 인디고> 메이킹 필름)
<무드 인디고> 촬영장의 미셸 공드리(맨오른쪽)
수면의 과학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샤를로뜨 갱스부르

개봉 2006.12.21. / 2018.01.11.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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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카인드 리와인드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잭 블랙, 모스 데프

개봉 200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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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