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놈의 창조자 만화가 토드 맥팔레인에 대한 세 번째 글이다. 지난 글은 위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2년 이미지 코믹스의 창업이라는 도전이 초반부터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토드 맥팔레인과 동료들에게는 그 동안 그들이 누려왔던 것을 훨씬 능가하는 부와 유명세가 돌아왔다. 90년대 초반, 토드 맥팔레인과 동료들은 명실공히 만화계의 슈퍼스타였다. 그들의 인기는 실제로 락 스타가 누릴 만한 인기에 버금갔다. 짐 리의 기억에 의하면, 코믹콘 행사장에 이미지 창업 멤버들이 한 차를 타고 나타났을 때 팬들이 마치 좀비처럼차창 유리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수십분 동안 운전이 불가능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993~1994년은 이미지 코믹스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폰>, <영블러드>, <와일드캣츠> 등의 책들은 항상 만화 판매 부수 집계 차트 10위권 안에 있었고 <스폰> 같은 경우는 전통적인 탑 셀러들인 <엑스맨>이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1, 2위 다툼을 할 정도로 잘 팔렸다.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수입이 마블 코믹스나 DC 코믹스 등 메이저 출판사의 10배 정도 되었기에 메인 작가들뿐만 아니라 어시스턴트에게 돌아가는 수입도 많았다. 토드 맥팔레인도 이 시기에 그렉 카퓰로라는 출중한 실력의 어시스턴트를 고용해서 <스폰>의 그림 작업을 격호간으로 맡겼는데 그렉 카퓰로는 이후 DC 코믹스의 최정상 작가로 성장하게 된다. 어시스턴트들도 억대 연봉을 받게 되고, 많게는 책 한 권에 1억 가까운 수입을 받게 되자 1~2개월만 일하고 스포츠카를 구입 후 그만두는 어시스턴트도 생기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다.
 
회사가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 데도 토드 맥팔레인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사업 확장 기회를 모색했다. 이후 그의 인터뷰에 의하면 사업상 추후 있을 수 있는 위험성을 헤지하기 위해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준비하려 했다고 한다. 통찰력 있는 사업가적 면모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이런 생각은 이후 혜안으로 판명나게 된다.

'스폰' 액션 피겨
토드 맥팔레인이 처음으로 만화 외에 눈을 돌리게 된 분야는 액션 피겨 시장이다. <스폰> 만화 등장인물들이 10~20대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떠오르자 여러 완구 회사들이 그에게 접근하였다. 토드 맥팔레인은 그 중 <바비>, <히맨> 등으로 유명한 마텔 사와 계약을 맺고 <스폰> 액션피겨 라인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런데 마텔 사에서 만들어 온 테스트 샘플들을 본 토드 맥팔레인은 품질에 실망하였다. 뛰어난 세부 묘사와 다양한 색감이 특장점이었던 <스폰> 만화의 특징들을 전혀 살리지 못한 그저 그런 밋밋한 수준의 피겨들이었던 것이다.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액션 피겨들은 80년대 <지아이조> 완구들의 도색 수준이나 디테일에 머물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토드 맥팔레인은 마텔과의 라이선스 계약을 취소하고, 이미지 코믹스를 창업했던 때의 마음으로 자신이 직접 사업을 벌여 보기로 한다. 그의 목표는 현재 기술로 가능한 한 가장 원작 캐릭터의 모습에 가까운 액션 피겨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에 따른 단가 상승은 일단 고려하지 않기로 했고, 회사 규모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중소업체 수준으로 최대한 작게 시작하기로 했다.

이렇게 1994<맥팔레인 토이즈>가 창업하게 되고, <스폰> 시리즈 1 액션 피겨들이 출시되었는데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토드 맥팔레인이 의도했던 대로 피겨들의 원형은 당시 기준으로 완구보다는 스태츄에 가까울 정도로 세부 묘사가 뛰어났고, 부분 도색 포인트는 여타 업체의 제품들과 비교해 5~6배에 달했다. 가격은 기존 액션 피겨들에 비해 1.5배 정도 되었지만 품질 면에서 지금까지 시장에 없던 새로운 수준의 제품을 선보인 것이다.

일단 작고 조용하게 사업을 시작하려던 토드 맥팔레인의 예상과는 달리 완구 업계 유통 업자들이 그에게 달려들었고, 실제 완구 판매량은 그의 최초 예상량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어서 높은 단가에도 불구하고 첫 해에 이미 큰 흑자를 남길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www.spawn.com이라는 웹 페이지를 개설해서, 경쟁 회사들과는 달리 앞으로 출시된 제품의 개발 과정과 목업 사진 등을 상세히 올려 구매자들과 소통하고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현재는 모든 완구 회사들이 하고 있는 관행을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토드 맥팔레인이었던 것이다.

맥팔레인 토이즈는 90년대 후반 <스폰> 뿐만 아니라 각종 유명한 영화 캐릭터들이나 락 밴드 멤버들을 라이선스 계약 하 액션 피겨들로 출시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제품들은 <스폰> 시리즈보다 훨씬 더 정교하였고 완구보다는 장식용 스태츄에 가까운 제품들이었다. 출시 시점부터 이미 성인 컬렉터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이었고 심지어는 많은 제품들에 대상 연령 15세 이상표기가 되어 있었다. 이 때부터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맥팔레인 토이즈 제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90년대 말~2000년대 초 본격적으로 시작된 성인들의 토이 컬렉팅 붐에 맥팔레인 토이즈가 크게 일조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대한 디테일을 살린 성인 취향의 완구가 시장에서 먹힌다는 것이 입증되자 사이드쇼 토이즈 (현 사이드쇼 컬렉터블스)’ 등의 업체들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현재 핫 토이스로 대표되는 성인 대상 컬렉터블 완구의 시초는 맥팔레인 토이즈인 것이다.

토드 맥팔레인
토드 맥팔레인은 미디어의 힘을 일찍이부터 알아봤던 사람이다. 맥팔레인 토이즈에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 선수들과 라이선스를 맺고 선수들의 액션 피겨를 만들려 했을 때, 구단주들과 사업가들은 야구도 잘 모르는 무슨 만화가 나부랑이가라는 싸늘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청소년기에 MLB 입단을 꿈꾸던 야구부 출신이었던 토드 맥팔레인에게는 억울한 반응이었겠지만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토드 맥팔레인은 야구공 컬렉션을 시작하게 된다. 각종 비싼 홈런볼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마크 맥과이어가 친 70호 홈런볼을 35억에 가까운 비용에 구입해서 당시 야구공 구입가 신기록을 달성했고 (이 뉴스는 당시 우리 나라 일간지들에서도 기사화하였다) 만화 팬들만 아니라 야구 팬들에게도 토드 맥팔레인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연히 야구계의 큰 손으로 통하게 되어 각종 라이선스 계약도 수월하게 체결되었다. 이를 두고 토드 맥팔레인은 사람들은 당시 35억을 들여 야구공을 산 내가 정신나간 사람이라 했지만, 35억을 투자해서 300억이 넘는 수익을 봤으니 남는 장사가 아닌가라고 하였다.
<스폰>

1997년에는 <스폰>의 영화화에 집중하여 마이클 자이 화이트 주연의 영화 <스폰>이 개봉하였다. 흑인이 주인공으로 나온 최초의 슈퍼히어로 영화로 기록되었고 기대보다 저조한 수익을 올리긴 했으나 이후 컬트 영화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015년부터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어서 2018년에 촬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토드 맥팔레인의 행적을 보면 필자는 자꾸 개미와 배짱이 우화가 생각난다. 잘 나갈 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꾸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그의 노력은 90년대 말 빛을 발하게 된다. 영원히 성장할 것만 같았던 만화 시장은 미국 내 80%의 만화 가게와 유통업자들이 도산했던 만화 시장 버블 붕괴와 함께 대규모로 위축되었고, 마블 코믹스는 각종 메이저 캐릭터들의 판권을 영화 스튜디오들에 팔았으며, 이미지 코믹스 멤버들은 뿔뿔히 흩어져서 일부는 마블 코믹스로, 일부는 DC 코믹스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업을 다각화했던 토드 맥팔레인은 이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이미지 코믹스의 오너쉽을 유지함과 동시에 사업을 계속 순항시켜 나갈 수 있었다. 이미지 코믹스는 이후 로버트 커크만을 영입,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워킹 데드>, <사가> 등의 작품들을 히트시켜며 아직도 순항 중이다. 게다가 초심을 잃지 않고 독립 만화 성향들의 작품들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어, 로버트 커크만 같은 꿈이 큰 작가들의 요람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세상에서 부인과 딸만 있으면 되고, 그 외의 것들은 자신에게 큰 의미가 없다고 하는 토드 맥팔레인. 그의 페르소나와 같은 스폰의 부인 이름도 자신의 부인 완다에서 이름을 따 온 것이라 한다. 이제 곧 환갑의 나이에 접어드는 그의 추후 행적이 어떨 지 기대된다.


최원서 / 그래픽 노블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