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갤러리> 메인 예고편

다큐멘터리의 거장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2014년 작 <내셔널 갤러리>가 8월 25일 개봉했다. 제목 그대로, 영국 최초의 국립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의 이모저모를 180분 동안 빼곡하게 담고 있다. 잠깐, 80분이 아니라 180분이라고? 끄덕끄덕. <내셔널 갤러리>는 갤러리와 거기에 전시되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사람들 등 내셔널 갤러리에서 벌어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일들을 3시간에 걸쳐 풀어놓는다. 하지만 <내셔널 갤러리>의 역할은 비단 ‘나열’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가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독보적인 시선이 확연하다. 이번 주 ‘주목! 이 영화’는, '미술관 다큐멘터리' 하면 작품의 세부적인 이미지와 함께 감독의 단정한 내레이션이 그림에 대한 소개를 조곤조곤 읊는 영상부터 떠올릴 관객들을 위한 가이드다.


내셔널 갤러리?

내셔널 갤러리는 영국 런던의 중심가 트라팔가 광장에 위치한 국립미술관이다. 1824년에 문을 연 미술관은 13세기 중반부터 1990년까지 2300여 점의 회화 작품들이 시대별로 정리되어 전시되고 있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연간 약 480만 명)하는 관광 명소 중 하나다. 유럽의 다른 국립미술관에 비해 공간이 그리 크지 않지만, 유럽 미술사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시기의 작품들을 고루 소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 링크로 들어가면 온라인으로 내셔널 갤러리를 체험할 수 있다. 직접 미술관을 방문할 사람들뿐만 아니라, 극장에서 <내셔널 갤러리>를 감상할 이들에게도 쏠쏠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감독 프레드릭 와이즈먼
내셔널 갤러리에 앉아 있는 프레드릭 와이즈먼

미국의 다큐멘터리 거장 프레드릭 와이즈먼. 그는 1967년 <티티컷 풍자극>을 내놓은 이래 현재까지 현역으로서 왕성한 다큐멘터리 연출을 계속해오고 있다.
   
감독의 주관을 철저히 배재한 채 카메라의 절대적인 객관성을 믿는 ‘다이렉트 시네마’를 대표하는 그는 수십 년 동안 학교, 병원, 군대, 교도소 등과 같은 공간을 줄기차게 ‘관찰’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다큐멘터리에는 관찰하는 대상들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는 과정이나 관객의 집중을 끌어들이기 좋을 격정적인 사건을 찾기 어렵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발레단 ‘파리 국립오페라 발레단’의 오랫동안 꽁꽁 감춰져 있었던 내부를 들여다본 <라 당스>(2009)와 파리의 저명한 아트섹슈얼쇼 클럽 ‘크레이지 호스’를 바라본 <크레이지 호스>(2011)가 국내에 개봉한 바 있다.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철저히 이성적인 시선을 예습하기에 좋은 작품들이다.



명작들로 누리는
눈과 뇌의 호사
홀바인 <대사들>

미술관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만큼 <내셔널 갤러리>는 유럽 회화의 걸작들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진품을 눈앞에서 마주할 때의 감각에 비할 바 아니지만, 프레드릭 와이즈먼과 오랫동안 작업한 촬영감독 존 데이비의 카메라를 따라가며 미술관을 채운 아름다운 그림들의 아우라를 추체험하기에는 충분하다. 작품의 전신이나 그림을 이루는 세세한 결을 나열해 보여주는 데에 더해, 관객의 얼굴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그들이 보고 있는 그 그림이 무엇인지도 바로 다음 숏으로 배치하는 방식도 취한다.

루벤스 <삼손과 데릴라>

호사를 누리는 건 안구뿐만이 아니다. 영화에는 도슨트가 작품을 설명하는 대목들이 꽤 자주 등장한다. 감독은 작품에 얽힌 객관적인,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도슨트 개인의 의견까지도 자세히 귀 기울여 듣는다. 이를테면,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작품 <삼손과 데릴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도슨트가 직접 삼손을 배신하는 데릴라의 미묘한 표정에 대해 자유롭게 자기 견해를 덧붙이는 식이다.

미술관 내부에서 이뤄지는 ‘가려진’ 대표 업무인 미술품 복원 과정을 볼 수 있는 것 역시 <내셔널 갤러리>의 또 다른 장점이다. 마모된 곳을 수정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이어, 수정 작업을 거친 작품을 전문가가 아주 상세하게 평하는 대목은 낯선 전문용어가 오감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관객들의 집중을 붙드는 힘이 있다.


작품보다는 사람

  에디터 개인적으로 <내셔널 갤러리>에서 기억에 남는 건, 벽에 걸린 ‘작품’보다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미술관 이곳저곳을 채우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인상은 영화가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등장하는 청소부의 숏에서 비롯됐다. 작품과 그것을 보는 관객들의 시선이 활발하게 교차되고 있는 가운데, 느닷없이 청소기의 소음과 함께 청소부가 미술관 내부를 정리하는 모습이 짤막하게 나타난다.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를 기꺼이 중단시키고 미술관 안의 다양한 사람을 비추려는 의지가 엿보인달까. 그리고 이어지는 건, 미술관 관계자들이 운영 방식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다.


이처럼 <내셔널 갤러리>의 거의 모든 대목에는, 다 빈치, 세잔, 고흐, 모네 터너,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등이 그린 걸작들과 함께, 그와 관련한 노동 혹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꼭 등장한다. 그들은 그림을 관람하고, 그림을 해설하고, 그림을 보존·복원하고, 미술관의 운영을 고민하고, 미술관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누드모델로서 포즈를 취하고, 미술관 건물에 환경보호를 외치는 현수막을 내건다.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50년에 걸친 방대한 필모그래피가, 특정한 ‘공간’을 테마로 삼되 그 장소의 특징이나 가치에 관심을 두기보다 거기서 생활하고 노동하는 인간에 집중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내셔널 갤러리>의 의미는 보다 또렷해진다.
 

  마지막 신이 특히 인상적이다. 어두운 전시 공간에 남녀 무용수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꽤 격렬한 동작의 안무를 선보인다. 그들의 뒤로 커다란 그림이 두 점 걸려 있지만, 가운데 고정된 카메라는 그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채 가만히 두 사람의 동작을 긴 호흡으로 담는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무용수들이 헐떡이는 소리를 듣는다. 작품에 시선을 던지기보다 그 앞에서 춤을 추는 ‘사람’을 찍겠다는, 그들의 거친 숨소리마저 붙들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확연하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