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의 구조 속에서 존엄을 지키며 살아남은 여성
엄마는 14년 만에 찾아온 아들을 담담하고 서늘하게 대한다. 엄마는 계속 송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버렸다”라는 아들과 인식 차이가 있었지만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아들에게 돈을 쥐어주고 양복을 사주는데, 이는 그가 지금껏 남편과 아들을 대해온 방식이다.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해 탈북했고, 마침내 돈을 벌게 되었을 때 그는 새로 맺은 가족에게 돈을 보냈다. 그는 죄의식을 강요하는 남편과 아들에게 “내 덕에 편하게 살지 않느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이는 ‘가정에 충실하지 않다’라는 죄의식에 시달리는 수많은 워킹우먼들이 참조해야 할 대목이다.
남편이 황 사장의 머리를 내려쳤을 때, 엄마는 제 손으로 살인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남편을 따라가지 않고 새 길을 떠난다. 손에 피를 묻힌 채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함을 직감했기 때문이리라. 이는 그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고 행위와 책임의 주체임을 말해준다. 이후 그는 남한 자본주의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다. 말투, 패션 등에서 현지화에 성공하고, 유흥업에 종사하되 착취의 상태에 놓이지 않는다. 그는 바의 ‘새끼마담’으로 같은 업소에서 ‘기도’ 일을 하는 남자와 동거 중인데, 이는 과거 황 사장에게 종속되어 착취당하던 관계와는 차이가 있다. 엄마는 죽어가는 남편을 만나러 중국에 간다. 그는 15년 만에 만난 시부모나 남편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로 대할 뿐 원한과 애증의 감정을 섞지 않는다. 그는 “젠첸을 다시 보면 미워할 것 같다”라는 말과 함께 종이 한장을 남기고, 먼발치에서 아들을 보고 간다. 종이는 그가 아들에게 일기장을 줄 때 찢어놓았던 첫장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죽은 뒤, 엄마의 송금통장과 엄마가 남긴 일기의 첫장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