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용 촬영감독(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촬영에 비중을 크게 두는 에너가 카메리마쥬(Energa Camerimage) 시상식에서 한국의 김지용 촬영감독이 <남한산성>으로 최고상 황금개구리상을 받았다. 1993년 설립된 이래 야누즈 카민스키, 로드리고 프리에토 등 이름난 촬영감독들이 역대 카메리마쥬의 황금개구리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 결과는 아시아 영화로는 최초의 그랑프리상 수상이다. 개최국인 폴란드의 영화 <콜드 >(리스자르드 렌크제스키) 비롯해 <로마>, <퍼스트맨> 등의 쟁쟁한 작품들과 겨뤄 쟁취한 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김지용 촬영감독이 담당했던 주옥같은 영화 속 장면들을 모아봤다.


달콤한 인생

김지용 촬영감독은 데뷔작으로 일생일대의 은인 김지운 감독을 만난다. 당시 장편영화 경험이 없던 신인 촬영감독을 장편 상업영화에 발탁한 경우는 흔치 않다. 김지운은 <장화, 홍련>을 함께한 이모개 감독과 스케줄 문제로 재회하지 못했고, 류성희 미술감독의 추천으로 김지용 촬영감독을 만났다. 가장 달콤했던 정점에서 추락이 시작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달콤한 인생>으로 김지용 촬영감독과 김지운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조직 세계를 다룬 누아르 영화이기 때문에 육탄전은 물론이고, 총격전과 카액션 신까지 모두 담아야 했다. 감각적인 영상을 위해 김지용 촬영감독은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과거 조명일을 해본 경험 덕분인지 빛과 색을 예민하게 쓸 줄 알았고, 콘트라스트가 강조돼 한층 비장함이 실린 <달콤한 인생>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달콤한 인생

감독 김지운

출연 이병헌, 김영철, 신민아

개봉 200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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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는 <지구를 지켜라!>로 한국의 컬트 팬들을 집결시킨 장준환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다. 다섯 명의 범죄 일당에게 유괴돼 아들처럼 길러진 아이 화이(여진구)가 주인공. 자라온 배경 탓인지 화이의 눈에는 괴물의 환영이 보여 그를 괴롭게 만든다. 다섯 아빠가 여느 때처럼 벌여 놓은 범죄 현장에서 어느 날 화이는 그 조차 괴물이 될 것을 강요받는데.

김지용 촬영감독은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 폭발하는 화이의 감정 속 미세한 파동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선량하게 자란 화이에게 내 안의 괴물과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압박해 오는 순간, 끓어오르는 화이의 분노는 등 뒤로 비춘 햇살과 겹쳐진다. 무엇보다 가장 극적인 감정을 분출하던 배우 여진구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김지용의 카메라가 훌륭히 담아냈다.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감독 장준환

출연 김윤석, 여진구, 조진웅, 장현성, 김성균, 박해준

개봉 2013.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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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원

데뷔작 <남자사용설명서>로 화제가 됐던 이원석 감독이 왕실의 재단사 이야기인 <상의원>에서 김지용 촬영감독과 함께 했다. 궐 밖에서 옷 잘 짓기로 소문난 이공진(고수)이 왕비의 옷을 만들라는 명을 받들어 궁에 입궐하면서, 왕비(박신혜)와의 묘한 긴장을 빚어낸다. 신분에 따라 천차만별로 존재했던 조선시대 의복의 재현에 공을 들였던 영화 특성상, 알록달록한 색감과 고풍스러운 자수를 보기 좋게 화면에 담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원석 감독과 김지용 촬영감독은 아래쪽으로 풍성하게 늘어뜨린 한복의 미를 살리기 위해 가로로 긴 2.35:1비율의 화면이 아닌, 1.85:1 비율을 택했다. 한복의 아래쪽을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했던 의상에 드러난 카메라의 경탄 어린 시선을 볼 수 있다. 역시나 빛을 잘 활용한 김지용 촬영감독의 디테일로 <상의원>이 옷과 감정에 무게를 둔 사극 영화라는 점이 확인됐다.

상의원

감독 이원석

출연 한석규, 고수, 박신혜, 유연석, 마동석

개봉 201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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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최상의 조합을 보여주던 김지운 감독과 재회. 옴니버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의 협업 이후, 김지운과 김지용은 다시 현대 사극 <밀정>으로 만난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일본의 억압에 대항하던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을 둘러싼 이야기로,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와 의열단 리더 김우진(공유)이 속내를 숨긴 채 가까워지는 긴장감이 주를 이룬다.

김지운 감독을 따라다니는 스타일리시라는 수식은 김지용 촬영감독과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재단된 슈트처럼 스타일리시한 영상미는 <밀정>에서도 어김없이 재현된다. <밀정>의 진중한 서사를 실어 나르는 화면은 김지운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도 마찬가지로, 차갑고 건조한 누아르의 분위기에 당대의 멋까지 그대로 품고 있었다. 덕분에 극중 시대 상황에 금세 관객들을 이동시키는 것은 물론, 독립투사들의 투지와 긴박감을 그대로 전할 수 있었다.

밀정

감독 김지운

출연 송강호, 공유

개봉 201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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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이블

말랑말랑한 감성의 소유자 김종관 감독의 로맨스 영화 <더 테이블>의 촬영도 김지용 감독이 맡았다. 하나의 카페, 하나의 테이블에 하루간 머물다 간 네 개의 인연을 펼쳐놓은 이 드라마는 극 중 캐릭터들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담아내려는 시도가 필요했다.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임수정. 주인공을 맡은 네 명의 배우들은 김지용의 카메라 속에서 생동감을 얻는다.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상황을 주요하게 다루는 만큼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 시선과 손끝에 실린 감정 하나하나까지 담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김지용 촬영감독은 과감하게 배경보다도 인물 그 자체에 집중했다. 관객들이 <더 테이블> 속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에 온 신경을 곤두세울 수 있었던 이유다.

더 테이블

감독 김종관

출연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임수정

개봉 2017.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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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남한산성>은 김지용 촬영감독에게 최고의 촬영상을 안겨준 작품. <음란서생>, <상의원>, <밀정>을 지나 네 번째 사극이었다. 조선의 치욕적 역사로 남은 인조의 삼전도 굴욕 사건을 소재로 한 <남한산성>은 영화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때는 1636년 병자호란. 청나라의 공격을 감당키 어려웠던 인조(박해일)의 번민과 함께, 두 충성스러운 신하의 첨예한 의견 대립이 영화의 주를 이룬다.

청의 치욕스러운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의 대립은 계속됐다. 신하들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듯 프레임은 깔끔히 정돈돼 있고, 속단할 수 없던 상황의 고민이 담긴 눈빛은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 애매하다. 그 사이를 메우는 하얀 설경과 전시 상황. 이처럼 어떤 맥락 위에 존재했던 카메라야말로 김지용 촬영감독을 지금의 순간에 이르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카메리마쥬 시상식의 데이비드 그로프만 심사위원장은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영상의 대서사시라며 <남한산성>을 극찬했다. 김지용 촬영감독은 촬영감독에게 이 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기쁨이자 최고의 상이라며 영화제 동안 마주친 많은 관객의 엄청난 열광과 격려로 큰 힘을 얻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남한산성

감독 황동혁

출연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개봉 201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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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심미성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