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개봉예정인 <머니 몬스터>와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배우가 감독으로서 메가폰을 든 작품이라는 것. 해외에서는 이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비롯해 멜 깁슨, 벤 애플렉, 벤 스틸러, 줄리 델피, 마티유 아말릭 등 많은 배우들이 감독으로서 활발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아쉽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도, 그들의 작품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게 사실이다. 감독으로 데뷔한 한국 배우들의 활약상을 정리해봤다.
하정우
왕성한 배우 활동과 함께 독특한 화풍의 그림들을 내건 전시회까지 연 하정우. 그의 부지런한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2013년 ‘감독’으로서 데뷔작 <롤러코스터>까지 내놓았다. 욕쟁이 캐릭터로 한류스타가 된 배우 마준규(정경호)가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 코미디다. 평소 이른바 ‘하정우 사단’이라 불리는 동료배우들과 함께 출연해온 하정우는 자신의 연출작 <롤러코스터>에서 그들을 대거 투입해 남다른 케미스트리를 보여줬다. 순수제작비 6억9천만원에 이를 웃도는 홍보비용이 투입된 <롤러코스터>는 27만 명을 동원해 결과적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불과 1년 만에 새로운 연출작 <허삼관>을 선보였다.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연출과 시나리오는 물론 직접 주인공 허삼관 역까지 도맡아 다양한 재능을 뽐냈다. 100만 명에 살짝 못 미치는 관객수를 기록해 이 작품 역시 흥행에는 실패했다.
방은진
방은진은 감독으로 데뷔한 배우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태백산맥>(1994)의 외서댁 역으로 데뷔한 배우 방은진은 영화 <301 302>(1995)와 <수취인불명>(2001), 드라마 <바보 같은 사랑>(2000) 등을 거치며 자기 색깔을 뚜렷하게 자랑하는 여배우의 위치를 점해왔다. 2004년 단편 <파출부, 아니다>로 감독의 출사표를 내민 방은진은 그 다음해 엄정화 주연의 스릴러 <오로라공주>를 발표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인정받으며 성공적으로 감독 신고식을 마쳤다. 가수와 배우를 겸직하던 엄정화는 아무래도 가수로서 더 인지도가 높았지만, <오로라공주>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이며 배우로서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다질 수 있었다. 방은진 감독은 히라시노 게이노의 베스트셀러 <용의자X의 헌신>을 원작으로 한 두 번째 장편 <용의자X>를 내놓기까지 7년 사이엔 두 편의 단편을 만들기도 했다. 최근작은 전도연의 명연이 돋보이는 <집으로 가는 길>이다.
이경영
“한국영화는 이경영이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로 나눌 수 있다”는 농담이 돌 정도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경영. 30대 이전 세대들에겐 아마 낯설겠지만, 이경영의 90년대는 지금보다 훨씬 화려했다. 명실공히 그는 박중훈과 함께 (아직 한석규가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던) 9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무비스타였다. 장르와 감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주인공을 연기한 그는 1996년 연출, 각본, 주연을 겸한 ‘액션 판타지’ <귀천도>를 발표했다. OST에도 수록된 김민종의 노래 ‘귀천도애’(“하늘이여 너도 나를 보며 울고 있구나 난 이렇게도 웃고 있는데~”라는 후렴부!)를 내세워 야심차게 프로모션 했지만, 개봉 당시 비평이나 흥행 면에서 완전 실패했다. 현재 네이버영화 페이지 20자평엔 이 작품을 치켜세우는 코멘트가 꽤 보이긴 하지만. 제대로 개봉되지 못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02년엔 두 번째 연출작 <몽중인>도 내놓았다.
박중훈
박중훈은 1986년 <깜보>로 데뷔(김혜수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해 이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작품들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렸다. <투캅스>(1993)를 기점으로 선보인 코미디 연기는 그의 전매특허였다. 감독직을 맡았던 배우들이 주로 자신의 황금기를 보내는 가운데 연출작을 발표했던 것과 달리, 박중훈은 오랜 시간이 지나 활동 경력 27년차에 첫 작품 <톱스타>를 만들었다. 한때 배우를 꿈꿨던 매니저 태식(엄태웅)이 톱스타 원준(김민준) 대신 누명으로 쓴 뒤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라디오스타>(2006)의 시나리오를 쓴 최석환 작가와 함께 작업한 <톱스타>는 베테랑 배우가 쓴 배우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0만 명이 손익분기점이었던 영화는 불과 17만 명을 동원해 흥행에서 참패했다.
유지태
종영을 앞둔 드라마 <굿 와이프>로 인기몰이 중인 배우 유지태 역시 한때 활발히 연출 활동을 펼쳤다. <거울 속으로>, <내츄럴 시티>, <올드보이> 무려 세 작품에 출연한 2003년, 40분짜리 단편 <자전거 소년>까지 연출했다. 해마다 두어 편씩 작품 활동을 하던 가운데도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나도 모르게>, <초대> 등 2년 마다 새로운 단편영화를 발표했다. <초대>는 (흔히 작가주의 영화로 분류되는) 크리스 마르케의 <라 제테>(1962)와 키에슬롭스키의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1988)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말할 정도로 야심차게 영화적인 시도를 선보인 작품으로 알려졌다. 2013년엔 드디어 첫 장편 <마이 라띠마>를 개봉시켰다. 불법체류자의 현실을 먹먹하게 그려냈다는 평과 소재로써 소비했다는 평이 공존하는 가운데, 7172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는 데 그쳤다. 유지태 감독은 <마이 라띠마>로 도빌 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구혜선
배우, 소설가, 가수, 화가... 이 모든 수식어를 거느리는 구혜선의 직함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감독이다. 2008년 <유쾌한 도우미>부터 최근작 <다우더>(2014)까지, 단편 셋에 장편 셋, 연출도 겸하는 배우들 가운데 단연 가장 활발하게 연출 활동을 자랑하고 있다. 이는 구혜선이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기에 가능한 행보였을 것이다. 오랜 친구인 서현진(<또 오해영>의 그녀!)을 배우로 기용한 첫 장편 <요술>을 지나, 곧 조승우, 남상미, 류덕환을 캐스팅한 두 번째 장편 <복숭아나무>를 연출했지만 관객수는 3만명에 그쳤다. 대중의 관심보다 언론과 평론가의 반응은 더 싸늘했다. ‘과욕’과 ‘치기’ 같은 키워드가 리뷰에 붙어다녔다. 직접 주연까지 맡은 <다우더>(2014) 이후 차기작 소식은 들리지 않는 상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