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민은 불미스런 사건을 겪은 뒤 이사를 가는데, 그 집은 전보다 많이 낡았다. 안전해지려 이사하지만 실은 안전에 취약한 공간으로 옮겨갈 뿐이다.
영화적으로 공간에 대한 변화를 어떻게 줄 것인가 고민했다. 경민은 더 나은 환경을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금의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돌고 돌 뿐이라는 걸, 공간의 변화로도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폐호텔 역시 침대가 놓인 원룸과 다를 바 없다. 호텔 방을 탈출하려고 나오면 원룸의 복도와 비슷한 복도가 이어지고, 경민은 ‘정신차려, 여기서 나가야 돼’라는 말을 반복하며 나선형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 내려간다. 그리고 다시 들어간 방은 사방이 막혀 있다. 마지막에 장롱이 쓰러지는 장면은 경민이 더 좁은 공간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극대화한 표현이다. 후반부에선 <양들의 침묵>(1991)의 느낌을 참고했다. 레퍼런스 영화가 <양들의 침묵>이었는데, 사실 이 영화야말로 관찰자적 남성의 시선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양들의 침묵> 외에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가 있나.
작품 준비하던 당시 데이비드 핀처의 드라마 <마인드헌터>를 재밌게 보고 있었다. 이 작품의 차가운 감정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된 걸까 고민했다. 핀처 영화는 굉장히 정석적인데, 그러면서도 스타일리시한 구석이 있다. 중간에 삽입된 몇몇 스타일리시한 장면이 영화 전체를 스타일리시하게 만든다. <마인드헌터>를 보면서 숏의 사이즈나 사운드의 활용 같은 걸 참고했다. <도어락>에선 초·중반까지는 공간감을 주는 광각렌즈를 사용해 찍고, 이후 망원렌즈 사용을 늘려나갔다. 중간중간 빠른 카메라 무빙을 주기도 했다.
영화 초반 혼자 사는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지점을 잘 포착해서 보여준다. 실제로 혼자 사는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서 공포를 느끼는지 따로 조사를 했나. 이와 관련해 도움을 받은 것이 있다면.
물론 자료 조사를 많이 했다. <SBS 스페셜-불안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다큐멘터리도 도움이 됐다. 분명 체감의 정도는 다르지만, 나 역시 혼자 살던 때 영화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밖에서 집 현관문을 열려고 한 적이 있는데, 영화에서 경민이 그러는 것처럼 집에 아무도 없는 척 불을 끄고 말았다. 아내 이언희 감독도 도움을 많이 줬다. 영화를 만드는 동료 감독으로서, 내게 연출자의 시선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다룰 때는 카메라의 시선과 연출자의 시선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하더라.
김기정(조복래) 캐릭터를 통해선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자의 피해의식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가해자 남성 캐릭터를 통해 여성 혐오의 이슈도 얘기하고 싶었나. 가해자 캐릭터에는 어떤 특징을 부여하고 싶었나.
결국은 소통이 단절된 사회가 양산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범인은 자신이 원하는 여성상에 경민을 끼워 맞춘 뒤 일방적으로 집착한다. 거기에 쌍방향 소통은 없다. 기정이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톤으로 그려지던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장르적 허용을 넓혀간다. 페호텔에 갇힌 경민이 범인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의 경우 자극적으로 묘사된 측면도 있는데.
그걸 장르적 허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생각보다 자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내 딴에는 자극적이거나 잔인한 표현은 많이 배제하려 했다. 만약 카메라가 범인의 시선으로 상황을 보여줬다면 훨씬 더 관객이 불쾌했을 것이다. 사지절단 장면에서도 직접적 표현은 일부러 피했다. 스릴러나 공포가 무섭지 않으면 그건 실패한 거라 생각한다. 장르영화를 즐기러 온 관객에게 충분한 공포와 스릴을 줘야 할 책임도 있는 거니까.
앞서 공효진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한 사연을 들려줬는데, 어떤 점에서 공효진 배우가 적임자라 생각하고 캐스팅했나.
투자·배급사에서 원한 것도 있지만, 왜 공효진이어야 하나, 왜 공효진일까, 스스로도 답을 구할 필
요가 있었다. 배우 공효진의 장점은 디테일이 좋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다는 거다. 무엇보다 공효진이라는 배우 자체로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는 지점이 있다. 우리와 동떨어진 세계에 사는 배우가 아니라 옆집 언니, 옆집 동생 같은 느낌을 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한 장점이 <도어락>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작 <내 연애의 기억>도 스릴러가 가미된 로맨틱 코미디였다. 스릴러와 공포 장르를 좋아하나.
좋아한다. 원래 공포영화로 데뷔하려 했다. <여고괴담> 시리즈로. (웃음) 차가운 학원 공포물을 만들려 했는데, 여러 이유로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조금은 엉뚱하게 <꽃미남 연쇄 테러 사건>으로 데뷔를 하게 됐다.
정통 호러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나. 더불어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잘 만든 공포영화는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진짜 무서운 건 외부의 귀신이 아니다. <도어락>에서 경민의 캐릭터를 일관되게 따라간 것도 이 인물이 느끼는 공포, 이 인물의 내면을 더 깊숙이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아침에 출근해서 동료들과 같이 몸풀기 율동을 할 때, 경민이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멍한 상태에서 동작을 따라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그 장면을 영화에서 꼭 살리고 싶었다. 다같이 춤을 추지만 모호한 상태로 동작을 따라하는 장면이 경민의 심리 상태를 함축한다고 봤다. 호러는 장황한 대사가 아니라 인상적 이미지로 심리를 묘사하는 게 가능한 장르인 것 같다. 차기작으로 써놓은 시나리오에도 호러와 코미디의 요소가 섞여 있는데, 기본적으로 하이브리드 장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는 모르겠다. 준비 중인 시나리오가 있다고 하면, 연출 의뢰가 안 들어올 것 같기도 하고. 언제나 열려 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