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부터 마블 코믹스의 베스트셀러는 <엑스맨> 시리즈였다. 1963년에 스탠 리와 잭 커비에 의해 탄생했지만, 스파이더맨이나 헐크 등 다른 마블 코믹스의 인기 타이틀들에 비해 인기 면에서 밀렸던 <엑스맨>은 1970년대 초반이 되자 새로운 스토리도 만들어지지 못하고 예전 스토리들을 재출간하는 형식으로 이름만 유지하는 초라한 상태였다.
이러한 <엑스맨>을 살려낸 사람은 크리스 클레어몬트와 존 번의 콤비였다. 이들은 1974년 엑스맨의 멤버들을 전면 교체하는 승부수를 두면서 ‘완전히 새로운, 완전히 다른’ 엑스맨 시리즈의 연재를 시작하였다. 내용이나 그림 둘 다 흠 잡을 데 없는 수준 높은 연재로 <엑스맨>의 인기는 그 때부터 급상승했고, 70년대 중후반 ‘다크 피닉스 사가’ 연재 당시에 절정에 달했다. 그리고 <엑스맨>은 일단 절정에 다다른 후 다시 내려오지 않으며, 30년간 마블 코믹스의 최고 효자 상품으로 자리했다.
30주년 특집으로 공개된 시리즈
1993년, <엑스맨>은 출간 30주년을 맞았다. 크리스 클레어몬트는 1991년에 엑스맨의 집필을 그만두고 스콧 롭델, 파비안 니시자 등의 신세대 작가들이 엑스맨의 메인 집필진이 된 상태였다. 이 신세대 작가들은 30주년 기념 기획 단계가 되자 상당한 중압감을 느꼈다. 30주년 특집으로 발간될 스토리는, 그 이름에 걸맞게 장대한 스토리여야 하고 크리스 클레어몬트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어야 하며, 나아가서 그들이 마블 코믹스의 플래그쉽 타이틀을 이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30주년 기념 크로스오버 기획은 당시 발간되고 있던 엑스맨 관련 타이틀들인 <엑스맨>, <언캐니 엑스맨>, <케이블>, <엑스칼리버>, <울버린>, <엑스포스>를 전부 아우르는 6부작 크로스오버로 기획되었다. 그림은 당시 떠오르는 신인들이었던 앤디와 아담 큐버트 형제, 그렉 카퓰로, 조 케사다, 존 로미타 주니어가 담당하기로 하였다.
스토리는 이전 대형 크로스오버 작품들인 ‘다크 피닉스 사가’나 ‘엑스큐셔너의 노래’ 등과 유사한 스케일로, 대신 더 간결하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 이 시리즈는 ‘엑스맨: 페이탈 어트랙션스’(X-Men: Fatal Attactions)로 명명됐다.
‘엑스맨: 페이탈 어트랙션스’의 내용은?
1권에서는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불길한 전운만을 느낄 수 있다. 매그니토의 추종 세력인 애콜라이츠가 엑스맨의 파생 팀인 '엑스팩터'의 기지를 습격하는데, 애콜라이츠의 리더 파비안 코르테즈가 매그니토의 아들 퀵실버에게 매그니토의 후계자가 되어 애콜라이츠의 리더가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다. 매그니토의 친아들이지만 엑스맨 소속으로 그와 적대하고 있었던 퀵실버는 제안을 거절한다. 당시 연재 스토리상 매그니토는 엑스맨과의 전투 후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2권에서는 매그니토의 오른 팔 역할을 하던 부하 엑소더스가 엑스맨의 또 하나의 파생 팀 '엑스포스'와 팀 리더 케이블이 기지로 삼고 있던 매그니토의 옛 기지 '아발론'을 떠나라 제안한다. 대신 케이블의 예전 기지였던 '그레이말킨'을 돌려 주겠다는 조건이었다. 1권의 내용과 같이 매그니토의 복귀의 전조가 되는 제안인데, 케이블은 매그니토의 귀환을 예견하여 이 제안을 거부하고 '엑스포스' 멤버들을 다른 곳으로 순간이동시킴과 동시에 '아발론'을 자폭시키려 한다. 하지만 이 때 매그니토가 기지에 등장, 상대가 안 될 정도의 강력한 힘에 의해 케이블의 기계 몸은 완전히 파괴되고 케이블은 목숨만 다행히 건지게 된다.
3권에서 드디어 엑스맨의 메인 팀과 매그니토의 정면 충돌이 시작된다. 엑스맨 멤버 콜로서스(영화 <데드풀>과 <데드풀 2>에도 등장)의 친동생 일리아나 라스푸틴의 장례식에 매그니토가 애콜라이츠 부하들을 거느리고 찾아와 엑스맨과 프로페서 엑스에게 "아발론에 상주하고 있는 모든 인류를 없앨 것이니 당장 떠나게 하라" 라고 경고한다. 엑스맨과 매그니토 간의 무력적 충돌은 벌어지지 않지만, 동생의 죽음으로 엑스맨과 프로페서 엑스맨에 환멸감을 느낀 콜로서스가 매그니토의 편에 서기로 하고, 그와 함께 떠난다.
4권에서 프로페서 엑스는 지구의 인류를 매그니토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UN과 공조하여, 지구 전체를 감싸는 자기장을 발동시킨다. 이에 분개한 매그니토는 지구 전체에 EMP 쇼크웨이브를 전파하여 지구의 모든 전자 기기들을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프로페서 X는 매그니토를 급습하기로 하고 시아 (Shi'ar) 기술을 응용해 만든 엑소스켈러턴 수트를 착용하고 울버린을 포함한 5명의 엑스맨 타격부대를 구성하여 매그니토가 있는 아발론으로 간다.
원래는 아발론 기지만을 작동불능 상태로 만들고 빠져나올 계획이었지만, 엑스맨들은 그 곳에서 매그니토와 충돌하게 된다. 울버린이 매그니토를 가격, 큰 열상을 남기는데 이에 분노한 매그니토는 자력을 이용하여 울버린의 골격에 코팅되어 있던 아다만티움을 뽑아 버려 울버린을 빈사 상태로 만든다.
울버린의 끔찍한 상태를 본 프로페서 X는 자제력을 상실하고 정신 능력을 사용, 매그니토의 의식과 기억을 삭제해 버리고 매그니토는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 이 급작스런 일들이 3페이지 남짓 스토리 분량 내에서 순식간에 벌어진다.
5권은 생사의 기로에 놓인 울버린과 엑스맨 팀의 아발론 탈출, 그리고 지구로의 귀환 과정을 그린다. 엑스맨의 비행정 블랙버드는 탈출 과정에서 심하게 손상되고 엑스맨은 전멸 위협에 놓이나 의식을 되찾은 울버린이 진 그레이와 엑스맨을 구한다. 지구로 돌아온 울버린은 재활 치료에 들어가나 예전같은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회복 과정에서 울버린의 손에서 돌출되는 갈퀴가 실제로 본인의 골격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힘이 약해진 울버린은 팀에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엑스맨을 떠난다.
6권은 사실 없어도 스토리에 지장이 없는 권인데, 프로페서 엑스가 콜로서스가 떠난 것이 '엑스큐셔너의 노래' 스토리에서 입은 머리의 둔상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를 치료하고 콜로서스는 엑스맨 팀에 복귀한다.
울버린이 엑스맨을 떠난 것 외에도 이 스토리는 추후의 스토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프로페서 엑스와 매그니토의 정신이 일시적으로 접촉했던 것이 추후에 영향을 미쳐, 프로페서 엑스와 매그니토의 정신이 혼합된 형태의 초강력 빌런인 '온슬로트'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6부작은 여러 면에서 30주년 기념작으로 합격점을 줄 만 하다. 일단 표지가 눈길을 확 잡아 끄는데, 6권의 디자인을 하나로 통일하였고, 홀로그램 카드가 매 권 표지에 부착되어 있는, 현재 기준으로도 매우 호화로운 판형이다. 30주년답게 뒷면에도 통상적인 광고 대신 전면 표지와 이어지는 그림을 넣은 디자인을 택했다. 만화책 수집 붐이 일던 90년대 중반 컬렉터들의 요구 사항을 완벽히 충족한 수집물이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스토리가 언젠가 온전히 영화화되었으면 되는 바람이다. 울버린의 몸에서 아다만티움을 끄집어내는 장면은, 내용 자체는 다르지만 만화책과 비슷한 구도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에서 매그니토 (마이클 파스벤더)와 울버린(휴 잭맨)의 대결 장면에서 오마쥬된 적이 있다. 울버린의 갈퀴가 골격이라는 것도 같은 영화에서 표현되었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타노스와의 최종 대결 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추후에 폭스에 판권이 있는 엑스맨 유니버스까지 마블 스튜디오에 반환되게 된다면, 꼭 이 스토리를 큰 화면에서 제대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원서 / 그래픽 노블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