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미라이> 포스터

애니메이션 감독 호소다 마모루가 2018년 12월 26일, <미래의 미라이>를 들고 한국에 방문했다. 10월 부산영화제에 이어 2018년에만 두 번이나 내한해 한국 관객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보낸 호소다 마모루 감독. <미래의 미라이>는 4살 소년 쿤(카미시라이시 모카)이 동생 미라이가 생긴 이후 미래에서 온 미라이(쿠로키 하루)를 만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

씨네플레이는 12월 27일,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만났다. 그는 “원래 산책도 하려고 했는데, 너무 추워서 관뒀다”는 너스레로 입을 열었다. 내한 직후 관객과의 만남, 기자간담회 등 빠듯한 시간을 보냈을 텐데 지친 기색도 없이 그의 온화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과 함께 <미래의 미라이>, 그리고 그의 애니메이션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미래의 미라이> GV 현장

어제(26일) GV를 했다고 들었다. 관객들을 만난 소감을 듣고 싶다.

많은 분들이 환영을 해주시고. 좋은 질문도 많이 해주셨다. 특히 영화의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해주셔서 굉장히 보람된 시간이었다. 이번 작품뿐만 아니라 이전 작품들까지 관통하는 ‘가족’에 대한 의미를 물어봐 주신 질문이 기억에 남았다. 한국 분들이 환영해주셔서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괴물의 아이>에 이어 홀로 각본 작업을 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두 가지 이유다. <미래의 미라이>는 제 아내와 자녀, <늑대아이>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델로 했다. 제 사적인 부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걸 제3자에게 각본을 맡긴다는 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혼자 각본 작업하는 건 모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각본가들은 장르 영화에 특화된 사람들이다. 요샌 영화의 표현을 확장해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각본가들에게 맡기게 되면 틀에 얽매이는 것 같아 혼자 작업을 하는 게 좋았던 거 같다.

그동안처럼 장르 영화라면 여전히 각본가들은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혁신적인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영화가 장르 영화가 아니니까 우리가 직접 하는 게 낫다고 저와 프로듀서들이 판단했다.

<미래의 미라이>

이번 작품에선 주축이 되는 어른이 없다. 이야기를 진행시킬 때 어려운 점, 걱정거리는 없었나.

이번 영화는 4살짜리 아이의 리얼한 리액션을 그린 영화다. 어른이 보이는 리액션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4살짜리 아이가 어른처럼 리액션을 한다면 위화감이 들것이다. 그 아이가 어른인 척하는 느낌 받으니까. 아이들에겐 세상 모든 게 다 신기할 것이다. 놀랄 만한 일들 천지니까 놀랄만한 일에도 어른과 달리 놀라지 않는 게 실제 아이들이 보이는 리액션이라 생각했다. 그런 점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감안해서 만들었다.

기왕 3년이나 걸려서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었는데, 기존의 장르 영화처럼 아이들의 과장된 리액션을 보여주면 그런 건 너무 많이 봤으니 의미가 없다. 그거와는 다른 표현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이번 영화를 만든 의의가 이런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는 사람마다 의견은 다 다를 거란 것도 알고 있다. 아까 말한 혁신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건 그렇게 다양한 의견 속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는 것이니까. 갈등이 없으면 그건 도전이라고 부를 수 없고, 갈등이 있기 때문에 도전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미라이> 쿤의 가족들 설정화

<미래의 미라이>는 감독님이 육아생활을 하면서 떠올린 작품이다. 쿤과 미라이가 처음 만나는 장면 외에도 자식들에 대한 묘사를 넣은 장면이 있는가?

이번 영화는 꾸며낸 얘기가 아닌 실제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다. 대부분이 실제 이야기다. 전작 <괴물의 아이>가 환상적인, 거짓의 세계였다면 이번 영화는 가능한 한 실제 이야기를 담아서 그리고자 했다. 아이의 리액션이나 쿤이 강아지 흉내를 내는 것도 실제다. 극중 나오는 증조할아버지의 청혼 이야기도 실화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

주인공인 두 자녀분은 작품을 보고 나서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자신들을 모델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걸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내심 걱정했다. 영화를 보고 싫어하거나 화를 내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는 다른 아이들처럼 영화를 보고 재밌다고 했다. 와이프도 우리 남편이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는구나 새삼 알게 됐다고 했다.

미래의 미라이가 등장하는 장면들

미래의 미라이가 등장하는 장면은 공간이 독특하다. 감독님이 처음 그 공간들의 이미지를 떠올린 계기가 궁금하다.

윳코가 사람이 되는 장면의 배경인 정원은 실제로 런던에 있는 장소다. 그런 배경들이 신비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있는 곳을 차용했다. 큰 도쿄 역으로 나오는 장소도 파리의 여러 역을 엮어서 디자인을 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란 곳도 처음엔 역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그것도 고려해서 작품에 넣었다.

이번 작품에서 특별히 공들인 장면을 뽑자면?

증조할아버지 장면이다. 제 작품에서 전쟁 직후 풍경을 처음 그린다.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속에서 전쟁이 배경으로 나오는 걸 생각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체험을 그리는 와중에 나오는 식으로 등장시켰다. 그런 면에서 시도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영화 클라이막스에서 제비가 날아가는 장면이 있다. 왜 하필 제비인가?

제비는 특이하게도 사람들이 사는 집 처마 밑에 집을 짓는 새다. 그래서 가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새가 아닐까 생각해서 차용하게 됐다. 쿤이 좋아하는 신칸센의 이름이자 쿤이 미라이에게 붙여주려 했던 이름이 ‘츠바메’(제비)인 것도 있고.

<미래의 미라이> 쿤(왼쪽)과 그의 가족이 키우는 개 ‘윳코’

원래 일본 하면 고양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감독님 작품에선 고양이보다 개가 주로 등장한다. 원래 개를 좋아하는 편인가?

<미래의 미라이> 속 윳코는 실제로 키우는 강아지다. 과거 <디지몬> 시리즈 당시엔 고양이를 밀었었다. 키우는 고양이도 있었고. 결혼하고 처가댁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있었는데, 길고양이 출신이라 좀 폭력적이었다. 그때 좀 싫어졌다.

한편으론 <미래의 미라이>가 한 번도 내 동생이지 못한 오빠, 누이를 위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사실 남매 영화지만 저는 외동이다.(웃음) 첫째는 둘째가 오기 전까지 외동의 삶을 살다가 둘째가 태어나면서 형제가 있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거다. 평생 외동인 저는 경험하지 못할 세계라 형제를 가진 인생은 어떨지 간접적으로 체험하고자 만든 마음도 있다. 이 영화 속에선 여동생이 오빠보다 나이가 많지 않은가. 그건 누구도 경험해본 적 없는 이야기라 그려볼 수 있겠다 싶어서 이런 설정을 잡았다.

<미래의 미라이>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쿄 역

지하 신칸센 장면은 감독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비주얼이라고 느꼈다. 특히 낡은 신칸센과 목소리를 쓰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의도가 궁금하다.

이 영화를 만들고 ‘철도덕후’가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전엔 관심이 없었다. 아이가 기차 장난감을 좋아하고, 아이가 가진 책을 보니까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넣어봤다.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느낀 게 전철이란 게 알면 알수록 단순한 기계가 아닌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영화엔 신칸센 역에서 ‘너는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 이런 아이덴티티에 관한 장면이 있다. 제가 봤을 때 이런 전철들은 은퇴를 하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잃는 망령 같은 존재가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 자신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요상한 존재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글렌 킨(왼쪽), 그가 준비 중인 애니메이션 작업물 (출처=글렌 킨 트위터)

지금 본인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애니메이터나 영화 인물이 있다면?

얼마 전 LA에 갔다가 만나 뵌 글렌 킨이란 애니메이터다. 디즈니의 전설적인 애니메이터로 <인어공주>, <타잔>, <포카혼타스>, <라푼젤>의 주인공을 그리신 분이다. 디즈니 퇴사 후 넷플릭스와 <오버 더 문>을 만들고 계신다. 옛날부터 동경하는 분이다 최근에 작업실에 방문해 직접 만나 얘기도 나눠서 영광스럽다.(호소다 감독은 스마트폰으로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아서 보여줬다) 2020년쯤에 굉장히 좋은 작품이 나올 거 같으니 봐주십사 한다.(웃음)

감독님의 영화는 늘 등장인물의 미소, 그리고 다시 등장하는 제목이 엔딩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을 해보겠다.(웃음) 마지막에 웃는 얼굴로 끝나는 건, 작품 속의 과제들이 해결이 됐다는 표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작품이 끝나기도 한다. 저는 마지막에 문제가 해결돼서 관객들이 마음 편하게 돌아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의미에서 미소를 집어넣는다.

<썸머워즈>의 마지막 장면


호소다 마모루 감독

그의 영화 속 미소들처럼,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따듯한 미소로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했다. 인터뷰를 마치자,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그에게서 그의 작품만큼 온화하고 평화로운, 그러면서 에너지가 활기차게 넘실거리는 심성을 읽을 수 있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다섯 번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는 오는 1월 16일 개봉한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 사진제공 = 얼리버드픽쳐스